"김훈이는 작은 기사라도 수십 장 파지를 내면서 고민해. 내가 신문사를 그만둔 건 김훈이를 보고 콤플렉스를 느꼈던 면이 있어.”


소설가 김 훈
메이저 일간지의 사회부장을 했던 분과 자주 만난다. 교회에서 만난 그는 언론사에서 정부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통령의 정무비서관을 거쳐 차관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칠십대 중반을 넘긴 그는 내게 언론인으로 지나온 인생을 고해성사하듯이 솔직히 털어놓곤 했다. 그는 사회부장을 할 당시의 내면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데스크 노릇을 하면서 밑에 있던 기자인 김훈과 임철순에게 원고지 한두 매짜리 코너를 맡겼어. 그런데 두 사람이 젊어서부터 워낙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내가 오히려 데스크를 볼 능력이 없는 거야. 김훈을 보고 현장에 가서 보고 기사를 써 오라고 하면 감정이 푹 배어 있게 쓰는 거야. 속으로 탁월한 재주라고 감탄했지. 김훈이는 문장에 목숨을 건 것 같았어. 작은 기사 하나를 쓰는데도 파지가 엄청났어. 내가 김훈이를 정치부로 추천을 했어. 당시 우리 신문이 정치면이 약했지. 정치기사는 인간을 쓰는 건데 김훈이 쓰면 당장 조선일보 정치부를 능가할 것 같았던 말이야. 그런데 정치부에서는 그 능력을 몰라보더군. 김훈이를 데리고 있어 보니까 스트레이트 기사까지도 그냥 쓰지 않아. 글 한 줄도 나름대로의 의미 없는 함부로 하지 않는 거야. 컬럼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신문 독자들은 제목만 읽고 버려. 그런데도 김훈이는 작은 기사라도 수십 장 파지를 내면서 고민해. 단순히 말이나 문장만을 다듬으려는 건 아니었어. 내가 신문사를 그만둔 건 김훈이를 보고 콤플렉스를 느꼈던 면이 있어.”

몇 년 전 이천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 이문열 씨의 집을 방문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여러 시간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도중에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발표했을 때였어요. 문화부 기자였던 김훈씨가 찾아와서 소설의 현장을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를 가서 같이 돌았죠. 나중에 그 사람이 쓴 기사를 보고 놀랐어요. 정말 잘 썼어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것 같았어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남의 글을 칭찬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대가(大家)인 이문열씨는 서슴없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 소설가 김훈의 책들을 사다가 정독했다. 문외한으로서의 평가지만 그는 문장에 목숨을 건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한 가을 창을 통해 보는 것 같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의 연필 끝에서 자연과 인간이 다시 창조되어 나오고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작가 가와바타 야쓰나리의 ‘설국(雪國)’을 볼 때 느낀 감동과 비슷했다고 할까. 어떻게 이렇게 예술적인 아름다운 문학적 묘사가 있을까 하고 감탄을 했었다. 이미 저세상으로 간 소설계의 원로 정을병씨는 살아있을 때 자주 만나던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일본을 보면 문장에 평생 목숨을 걸고 외길로 가는 작가들이 많아요. 그래야 진짜 문학의 장인(匠人)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풍토는 그런 장인 기질보다는 기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이름을 내려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되면 진짜 좋은 작가나 작품이 나오기 힘들게 되죠. 우리 문단에도 이름보다 문장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자꾸 배출되어야 합니다.”

우뚝 선 한 사람의 작가가 여러 문인지망생들의 마음에 순수한 문학인생의 촛불을 붙여 줬으면 좋겠다.









[출처] 소설가 김훈|작성자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