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신청을 한 다음 법원에 가서 판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세요. 보험회사를 속여 받은 돈을 다 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왔더니 상담실에 낯선 청년이 한 사람 앉아 있었다. 굳이 내게 법률상담을 하겠다는 사람이었다. 활동기를 넘긴 변호사인데도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왜 굳이 저에게 상담을 원하죠?”
나는 호기심으로 그가 오게 된 인연을 묻는다. 서초동의 지하철역이나 거리 곳곳에 자기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변호사 광고가 가득했다. 분장을 해서 사진을 찍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감미로운 말들을 써 놓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내게 올 이유가 없다.

“어머니가 아주 오래 전에 이혼사건을 맡기셨어요. 찾아가 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청년이 이름을 대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맡은 사건은 그 사람의 인생이 일부 나의 삶 속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따질 건 없었다. 따라와서 옆에서 지켜본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속으로 ‘휴’ 하고 한숨을 쉰다. 나름대로 조금 신용을 얻었던 것 같다. 의뢰인의 대부분은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왔다가 실망한 채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욕을 하기도 했다. 대가로 돈을 받는 직업이라 어떤 노고도 불평도 그 돈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임금을 주는 노동자에게 감사를 표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청년은 법원에서 보낸 서류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가 다른 공범들과 함께 고의적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편취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돈 천만 원을 돌려주라는 법원의 명령이었다. 신문의 사회면에서 더러 보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됐죠?”
“제가 시장 옷가게 점원으로 있는데 우연히 알게 된 형이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했어요. 차에 타고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요?”
“저녁에 시장으로 BMW가 왔더라구요. 그 차에 탔죠. 모르는 사람 세 명이 타고 있더라구요. 그 차가 강변도로를 가는데 옆 차가 끼어들기를 하니까 운전하던 사람이 브레이크를 밟고 그 바람에 뒤에서 오던 차가 추돌을 하게 됐죠. 차에 탔던 우리들이 피해자가 된 거예요. 며칠 후 보험회사 직원이 와서 백만 원을 줬어요. 그게 다예요. 돈 벌게 해 주겠다고 하던 형이 그 돈을 받아가면서 팁으로 십만 원을 줬어요. 그게 다예요.”

청년의 얼굴엔 잘못했다는 의식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차에 탈 때 사고가 날 줄 알았죠?”
“사실 짐작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다면 법적으로 보험 사기죄의 공범 맞네요.”
“그런가요?”

“원칙으로 치면 사기죄의 공범으로 징역을 살 수도 있고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어요.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적 있어요?”
“전혀 그런 적 없습니다.”

“운 좋게 법망에 걸리지 않았군요.”
그는 법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었다. 변호사의 눈으로 본 세상은 온통 죄의식이 마비된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데, 뭐 어때? 나쯤이야’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죽이고 있다. 변호사도 공범이었다. 죄를 죄라고 알려주지 않은 채 빠져나갈 방법만 강구해 주었다. 영업적 이익을 위해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걸 피했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청년이 내게 물었다.

“이의신청을 한 다음 법원에 가서 판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세요. 보험회사를 속여 받은 돈을 다 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굳이 비용 들이면서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요즈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미력하지만 정직이 뭔지를 일단 말해주고 있다. 내면에 들어있는 어떤 존재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나는 즉석에서 이의 신청서를 만들어 주고 그 안에 그가 가담한 내용을 정직하게 썼다. 행위를 한 만큼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였다. 그가 떠나기 직전이었다.

“본인의 행동이 어땠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의 속에 있던 양심이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의 신청서를 써 준 서기료(書記料)를 조금 받았다. 정직한 지식노동의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