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바다 이야기(2/6)
"너희들, 잘 들어 두어야 하느니라. 지형, 지물, 안개, 사리, 조금 등에 대해 아는 것 있으면 꼭 알려 달라고 하더라."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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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즈믄해라 불린 거북의 한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350년 만에 왔는데, 밉든 곱든 강화도에 어이 안 들르겠습니까?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었지만,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로 한사코 말리는 걸 뿌리치고, 제주도에는 고구려의 후손 고씨가 많아서 다들 즈믄해 등의 '高'자를 보고 그가 제주도의 수호신으로 알았습니다. 신라의 한 위대한 왕이 동해에서 호국룡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등어리에 '高'씨를 뜻하는 '高'자 새겨진 거대한 거북을 보고는 돌고래들도 그 앞에서 재롱을 피웠답니다.
  
   그냥 허허 웃고 밤에 몰래 제주도 앞 바다를 빙 돌아서 색깔이 누리끼리한 바다로 갔습니다. 가다가 깜박 길을 잘못 들어 다도해로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전쟁이 붙었습니다. 귀를 꼭 막고 있는데도 새총 소리가 귀청을 찢었습니다. 연이어 콩볶듯 쏘아대는 게 얼이 다 빠졌습니다.
  
   뒤이어 그보다 더 큰 소리가 들려 그만 바닷속으로 푹 가라앉았습니다. 콰쾅!
  
   '이제 조선 사람 다 죽겠구나! 저네들은 전쟁을 저리 대비하지 않을까?'
  
   어찌 됐나 싶어 밤에 몰래 떠올라 두리두리 살펴보았더니, 시끄러운 조선말이 들렸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온통 이순신 장군 얘기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좌수사 어른만 따라가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어.'
   '좌수사 어른은, 신분이 천해서 종이나 다름없는 우리 수군들을 양반이나 똑같이 대해 주거든.'
   '맞아, 맞아. 그뿐인 줄 알아, 주무실 때 신도 안 벗고 잔대.'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거야.'
   '야, 전쟁 중에도 이래 잘 먹으니, 옛날보다 더 좋다야.'
   '야, 너들 날 존경해라. 아까 좌수사 어른이 내 어깨 두드리는 것 봤지?'
   '왜 그랬는데?'
   '내가 사천 전투에서 거긴 수심이 얕으니까,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알려 줬거든.'
   '야, 니가 어떻게 그걸 알았노?'
  '내 고향이 바로 거기 아이가? 거기서 맨날 빌거벗고 목욕하면서 전복도 따고 미역도 뜯었지비.'
  '그런데, 깜박 왜놈에 대한 분노가 지나쳐 앞장서서 너무 깊숙이 들어가신 거야. 그래서 좌수사 어른이 새총에 맞았잖아.'
   '오늘 마침 날 만나자마자 그걸 즉시 기억해 내시고 내 어깨를 두드린 거라고. 그러면서 뭐라셨는지 알아?'
   '뭔데? 뭔데?'
   '너희들, 잘 들어 두어야 하느니라. 지형, 지물, 안개, 사리, 조금 등에 대해 아는 것 있으면 꼭 알려 달라고 하더라.'
   '그래? 나도 내 고향 앞 바다에 대해선 잘 아는데. 당장 가 봐야지.'
   '나도! 나도!'
  
   듣던 중 그만 즈믄해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정말 고향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쑤욱!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앗!
  
   즈믄해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상상을 초월하는 거북이가 두 마리나 있었던 겁니다. 집채보다 더 큰, 작은 섬만한 거북이 두 마리!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거북이요 누구 못지 않게 오래 산 거북이라고 자신했던 자만심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조선에 이런 거북이 있는데, 자기는 고향을 원망하면서 지난 350년을 살았던 겁니다.
  
   콩알만해진 마음을 간신히 추슬러 거대한 두 마리 거북을 향해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게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두 분의 등에는 틀림없이 '高麗'가 날 때부터 씌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자기보다는 틀림없이 많을 거니까, '朝鮮'이란 글자는 틀림없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생각은 싹 달아났습니다. 오로지 그 거대한 거북에 대한 외경심뿐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는 더 놀랐습니다. 입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데, 그건 용의 얼굴에 용의 입이었습니다. 아하, 문무대왕이 호국룡이 되었다더니, 바로 저 분이구나. 그럼 한 분은 또 누굴까? 김유신 장군? 태조 무열왕? 고려 태조?
  
   거북에 대한 자부심이 가슴 가득 끓어올랐습니다. 자, 이제부터 거북의 시대이다! 상어야, 물럿거라! 고래야, 물럿거라!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거대한 거북 옆에는 굵은 다리가 여럿 달려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서도 이순신 장군 얘기가 새어 나왔습니다. 거기 뱃속에 사람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아니, 저 사람들을 통째로 잡아먹었단 말인가!
  
   이것 잘못하면 나도 한입에 잡아먹히겠구나! 위기에 대처하는 재주야 즈믄해를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즉시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멀찍이 난바다 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휴!
  
   다음 날 낮에 이것저것 쫄깃쫄깃한 조선의 물고기를 좀 잡아먹은 다음, 호기심이 동하여 고개만 살짝 내밀고 또 멀찍이서 쳐다보았습니다. 두 거북이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로소 머리가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저건 거북이 아닐 거다. 거북이라도 죽은 거북일 거다. 왜냐하면 산 거북이라면 멍청하게 저렇게 몸을 다 드러내놓고 한 자리에 저렇게 오래 있을 리가 없다.
  그 용머리도 이상했지만, 그 다리는 더 이상했다. 그건 아무래도 배 다리 같았다. 나무로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었으면 사람들이 밖에서 돌을 던지고 칼을 던지고 창을 던지고 활을 쏘고 몽둥이를 던지고 불을 던지고 야단났을 것이다. 사람이 잡아 먹혔다면, 사람이 어찌 그 뱃속에서 이순신 장군 얘기를 할까?
  맞아, 이건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나 마찬가지야--라던가, 뭐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
   --계속--
  
  
  
  
  
  
  
  
  
  
[ 2006-08-26, 16: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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