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홍범도가 본 홍범도'가 정답이다

육군사관학교 경내의 홍범도 장군 흉상(胸像)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여론이 분분하다. 윤석열 정부와 육군사관학교와 동창회측은 이전을 추진하고 있고 광복회와 민주당 등은 반대하고 있다. 이전 추진측은 홍범도 흉상이 육군사관학교 경내에 있는 것은 홍범도의 경력이 국군의 요람인 '육군사관학교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복회 등의 주장은 홍범도에 대한 왜곡이란 지적이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나남 이병주는 장편 대하소설 '山河'에서 "역사가 태양에 바래이면 정사(正史)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神話)가 된다"고 했다. 여기서 하나 덧붙이면 "역사가 정상배와 사이비들의 입을 거치면 조작(造作)이 된다. 역사왜곡과 가짜역사가 된다"고 하겠다.

홍범도에 대한 자료도 마찬가지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이 쓴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는 특유의 감성적인 필체로 독자의 손을 잡아끌고 있다. 소설가 방현석의 '범도'는 소설보다 파란만장한 홍범도의 생애를 박진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중앙일보 2023.9.8 신준봉의 칼럼 '홍범도는 죄가 있다?없다!' 인용). "평생 독립운동 때아닌 좌경시비, 자유시 참변 가담 두고 의견 갈려, 육사흉상 후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은 한국경제신문 기명칼럼 '선량한 역사가 있다는 착각'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볼셰비키가 항일 무장세력을 처리한 뒤 일본군은 시베리아에서 퇴각하기로 밀약했고 레닌이 조선독립을 원했다는 건 헛소리"라고 지적했다.

명쾌한 내용의 판결문 같은 칼럼 한 편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2023년 9월6일자 동아일보논설위원 송평인이 쓴 기명칼럼 '홍범도가 본 홍범도'는 홍범도에 대한 인물탐구를 간단명료하게 내놓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소련서 나온 자료 보기 전까지 홍범도를 아는 체 말아야 한다. 그의 自意識은 소련을 새 조국으로 삼은 빨치산이었다. 한인 무장해제에 가담했고 강제이주에도 불만이 없었다. 문재인이 한 도발을 바로잡는 것을 도발이라고 해선 안된다"고 강력하게 지적했다.

송평인 논설위원의 주장 근거는 홍범도가 직접 쓴 이력서와 자술서이다. 1932년 홍범도가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과 특혜를 받기 위해 제출한 이력서와 소련측 질문 항목에 맞춰 응답한 자료의 내용이다. 홍범도는 자신의 삶을 한번은 자유롭게, 또 한번은 형식에 맞춰 요약해 제출했다. 이같은 자료는 1993년 동아일보가 대우그룹과 공동기획하여 거금을 주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홍범도가 1921년 레닌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간 것은 그해 6월 자유시에서 한인부대 사이에발생한 유혈사태를 보고하기 위함이라고 썼다. 단순히 한인대표 56명 중의 한 명이 아니라 자유시 사변은 외견상 러시아 군대가 앞장섰지만 한인부대끼리 싸운 유혈사태임을 밝히고 있다. 홍범도는 자유시 사변 3개월 전에 무장해제를 주도한 칼란다리시빌리 부대의 한인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됐음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자유시 사변 후 재판위원을 맡고 레닌으로부터 권총과 금화(金貨)를 포상으로 받은 사실이 설명된다. 홍범도가 포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강제로 무장해제된 사할린 부대원 2명으로부터 암살될 뻔한 사실은 홍범도를 향한 원한이 팽배했음을 입증하고 있다…(중략)

홍범도에 대한 국내 연구자는 1~2명에 불과하다.홍범도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다…(중략) 홍범도는 1919년부터 1920년까지 빨치산 부대를 거느렸다고 썼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는 1920년 6월과 10월의 일이다. 두 전투에 임할 때 홍범도의 자의식(自意識)은 독립군이 아니라 빨치산이었다…(중략)

1927년 홍범도의 소련 공산당 가입은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이다. 1919년부터 그의 자의식 속의 새로운 조국은 소련이었다…(중략)…봉오동, 청산리 전투는 무장투쟁의 여명으로 착각한 황혼이었다. 일본군의 반격으로 간도의 조선인들은 무고한 학살을 당하고 독립군은 땅끝까지 쫒겨갔다. 무장해제에 응한 쪽은 영원히 총을 빼앗겼고 무장해제를 거부한 뒤 만주로 돌아온 쪽은 지리멸렬했다. 독립군이 마음놓고 숨쉴 땅은 한 자락도 없었는데도 이종찬 광복회장은 나라를 잃은 적이 없고 따라서 건국이 뭔 말이냐는 헛소리를 광복절 기념사에서 늘어 놓았다…(중략)>

송평인은 "홍범도를 지옥에나 꺼지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신조의 사나이였다. 다만 대한민국 현충원은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국방부는 더 아니고, 육사는 더욱더 아니다. 再造山河 운운하며 이념의 도발을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도발을 바로잡아 원상대로 되돌리는 걸 똑같이 도발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언제 정신을 차릴 것인가?"라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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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든타임즈 2023-09-09 오전 6:32

    "測水深昧人心(측수심매인심), 물 속 깊이는 알아도 사람의 마음속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말이있다. 節槪와 信條가 굳건한 사람이 있지만, 바탕이 低級하여 태도가 자주 바뀌는 사람도 있다. 그러기에 사람을 판단하려면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洪範圖'나 '鄭律成'이나 '李應魯'나 '尹伊桑' 등과 이 者들을 庇護하는 사람들을 파악할 때는 마찬가지로 살펴 봐야 한다. 무엇을 했던 사람인가. 특히 마지막의 생각과 행동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휴전국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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