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가 가다니 아 슬프다>

그날 밤 그 자리에 둘이서 만났을 때
똑같은 그 순간에 똑같은 마음이
달빛에 젖은 채 밤새도록 즐거웠죠.
아~~그 밤이 꿈이었나. 비 오는데
두고두고 못다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아무리 불러도 그 자리는 비어있네
아~ 그날이 언제였나 비 오는데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 어이 달래라고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떠날 때는 말없이’의 가사이다. 나는 저 노래를 늘상 즐겨 부르는데 노래의 주인은 자기 노래처럼 말없이 가버렸구나. 가수 현미가 떠났다. 우리 곁에 더 못 있어야 할 나이도 아닌데 하늘이 성급히 불러서 데려갔구나. 어찌 하늘이 박정하지 않다고 하겠나.

그가 우리 곁에 있을 때도 그는 저쪽 하늘가에, 우리는 이쪽 하늘가에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그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에 기뻤는데 이제 그마저도 덧없게 되고 말았다. 바야흐로 떠나가고 나니 저 노래가 슬퍼져서 저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게 돼버렸다. 진정 가슴 찢는 슬픔은 남아서 살아야 하는 사람의 몫인가 보다.

현미는 은쟁반이었고 그의 노래는 옥구슬이었건만 이제 은쟁반도 옥구슬도 묻히고 버려지게 되었으니 인생 백년이 참으로 얄궂다. 그 이름도 아리따운 현미여.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시(始)와 종(終)을 천명에 맡길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 초로인생(草露人生)일망정 이 세상에 온 소풍 즐거웠다 합시다. 다음 生에서도 여전히 억만창생(億萬蒼生)에게 희망을 주고 위안을 베푸는 인기 가수를 하소서.

나의 방에 시절 음식을 약간 차려 놓고 한 잔 맑은 술을 올리오니 흠향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