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종착점은 사죄나 시신 수습이 아니라 책임자 처벌이다. 25일 공개된 북한의 통지문 한 장에 국민의 생명안전, 남북관계를 놓고 다시 남남갈등이 점화되더니 27일 북한 경고장 때문에 다시 요동치고 있다.

25일 편지를 통해 이번 사건 해결의 핵심인 가해자 처벌 문제를 공동조사와 시신 수습으로 일단 옮겨 놓은 북한은 27일 반성은커녕 시신을 찾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영해 침범’,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케 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추가 조사 의지를 표명한 우리 정부에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사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북한이 시신을 공동으로 찾아보자고 나올 대신 갑자기 영해 침범하지 말라는 강경으로 선회한 것은 지난 이틀간 달라져 가는 한국 내부의 흐름을 읽어 보고 좀 강경하게 나가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에 기초하고 있다.

24일 국방부의 대국민 첫 공식브리핑에서 사살 및 시신 훼손 사실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그러나 25일 북한 편지가 공개되면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가해 책임자 처벌 문제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시신 수습과 사건 공동조사와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로 옮겨 갔다.

25일 본인이 속해 있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여야의 대북규탄결의채택도 불발되었다. 외교부와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한 긴급 현안 질의도 여당 의원들은 김정은 사과 편지의 ‘이례적인 측면’에 맞추었고 본인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판문점에 내려와 ‘냉면쇼’로 한국에서 김정은의 호감도를 순간에 끌어 올리더니 얼마 안 되어 ‘냉면 목구멍’ 발언으로 혐오감이 들게 했다. 남북공동사무소를 폭파하여 그것이 김정은의 진 모습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공개된 친서들을 보니 문제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안타깝다’고 한다.

김정은의 행동 폭이 너무 커서 사람들은 어느 것이 김정은의 본 모습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과는 다르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달라져도 이만저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지난 시기 김일성이나 김정일에게서 볼 수 없었던 사실 즉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선택 폭이 대단히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북한은 강경과 온화의 큰 스펙트럼을 만들어 놓고 좌에서 우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

북한의 선택의 폭은 어떻게 이렇게 넓어졌을까? 왜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과연 김정은이 누가 말하는 것처럼 계몽군주일까? 스위스에서 유학했기 때문일까?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다른 점을 이해하는 것이 현 남북관계 주소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핵심이다. 30대 김정은은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도 견줄 수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러한 자신감의 근거는 바로 핵이다. 김정은은 핵무기가 있음으로 남북관계에서는 물론 국내 정치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수해, 태풍피해 복구에 전쟁용 쌀독을 연다고 전 세계에 공개했다.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일도 전쟁용 식량을 몇 번 풀었지만, 전쟁용 식량창고가 비었다는 사실이 미국과 한국에 알려질까 봐 극비에 붙였다. 김정은도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 ‘선물용’으로 주민들에게 전쟁용 전략미를 풀었으나 그때에도 극비에 붙였다.

그러나 이제는 핵무기가 있으니 누구도 북한에 끔쩍 못한다는 자신감을 바로 ‘전략예비식량’을 푼다는 것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휴전선 일대에서 항상 경계태세에 있어야 할 ‘전선의 부대’들을 마음대로 빼서 피해복구와 평양시, 삼지연시 건설 등 후방지역 깊숙이 이동시키고 있다. 공군이 거의 하늘을 비워 놓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있다. 한국을 향해서는 핵을 가지고 있는 전략 국가 군주지만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핵은 칼집에 넣어둔 채 '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기도하는 ’어버이 계몽군주‘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군 장성 진급·보직 신고식에서 "삼정검은 칼집 안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했는데 김정은은 이미 핵 보검 사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남북관계 초점은 우리 국가재산, 국민생명으로부터 이제는 영토 문제로 옮겨지고 있다. 과거 히틀러가 체코, 폴란드를 점령할 때나, 가깝게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 때도 재산, 생명을 유린한 후 영토 강점 순서를 밟았다. 일본인 재산 보호 명목으로 들어오고 사무라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황후를 불에 태워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마지막에는 영토까지 빼앗았다.

2차 대전 이후 재산, 생명, 영토 문제에서 마음대로 갑질을 할 수 있는 나라들은 세계에 핵보유국들밖에 없다. 핵무기 앞에서는 그 어떤 합리적인 논리나 국제법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금번 사태처리 과정을 보면 북한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 국민을 해상에서 6시간 동안 묶어놓고 끝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살해하였다.

북한에서 사람을 목적 달성의 수단, 소모품으로 여기는 행위가 이제는 남북관계로 옮겨지고 있다. 이번 일은 핵이 있으니 남북관계에서 아무 일이나 저질러도 징벌받지 않는 ‘영원한 갑’에 있다는 인식을 한국에 확고히 심어주려 하고 있다. 핵을 가지고 있는 군주가 핵이 없는 나라와 백성에게 사죄하는 일이 동서고금에 있었는가 식이다.

남북관계의 핵심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 국민을 우리 군이 지켜보는 수역에서 공개 총살했다. 북한은 다음 단계에서 이번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자면 남북이 NLL을 다시 그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히틀러나 일본제국주의가 썼던 재산, 생명, 영토 순서로 나올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아니, 물러서서도 안 된다.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맞서야 한다. 이번 사건의 종착점은 사죄나 屍身 수습이 아니라 책임자 처벌이다. 적어도 북한으로부터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약속이라도 받아내야 한다. 끝까지 우리의 이 단순한 요구를 관철할지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갈지가 향후 남북관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