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짖지 않는 개들

선량(選良)이면 선량답게 놀아야지 사행성 도박(賭博) ‘바다이야기’가 광풍(狂風)처럼 몰아쳐서 국민의 고통과 피해가 속출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다.
“도둑이 들려고 하니 개도 짖지 않더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지적한 ‘개’는 누구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보좌적(補佐的) 역할을 하는 내각과 사정기관, 비서진, 집권 여당의 당료(黨僚)와 국회의원 등일 것이다. 이들 무리가 제대로 역할을 해줘야 대통령은 원활하게 국정(國政)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들 집단이 권력과 금력을 노려 대통령의 귀와 눈을 어둡게 하고 아부, 아첨만 한다면 대통령은 멍텅구리 벽창호가 되고 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솔직한 고백대로 사행성 도박 ‘바다이야기’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데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으면서 방지대책도 세우지 않고 실천하지도 않았다면 그것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탄한 “짖지 않은 개”일 것이다. 오늘의 대통령인 문재인도 노무현 정권하에서 서슬 퍼런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이란 막강한 권좌에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 치안판사 ‘클레멘테 라베토’는 이웃집 개가 밤마다 시끄럽게 짖어대자 짖지 못하게 해달라는 민원성 재판에서 “개는 짖을 존재적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치안판사가 판시한 개는 동물적 존재로서의 개일 것이다. 개가 짖는 것은 자기 보호본능이다. 자기에게 접근하는 다른 동물들에 대한 경고요, 알림일 것이다. 개가 짖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심신이 불편해서 만사가 귀찮을 때, 그리고 고깃덩어리를 뜯어먹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다.

미디어경영학에서는 매체와 인간을 개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워치독(Watch Dog)’이 그것이다. 언론학자들은 신문, 방송 등 미디어 매체들의 기능과 역할을 ‘사회감시기능’ 즉 ‘감시견(監視犬)’이라고 말한다. 국가통치수반인 대통령에게도 ‘감시견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된 기구와 직책이 있다. 내각의 각료(閣僚)와 국정원, 검찰, 경찰, 대통령비서실, 국세청 등 행정부가 있고 입법부인 국회와 법 집행을 하는 사법부 등도 있다. 이른바 삼권이 분립(分立)하여 국가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통치행위는 속된 표현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국정이 ‘개판’이 되면 피해는 국민이 본다. 통치자가 무능할 때 이런 난세(亂世)의 징후가 전염병처럼 창궐(猖獗)한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권력의 계곡에서 계곡주(溪谷酒)나 마시며 기고만장하고 낮은 벼슬아치들은 국민을 괴롭히는 오리(汚吏)가 되어 기생충처럼 우글거리게 된다. 공직자는 무릇 공익(公益)에 충실해야 하거늘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국민 가슴에 염장이나 지르고 사익(私益)에 눈이 어두워져 깨춤 추는 전·현직 장관들의 모습이 바로 난세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처자식 자랑하는 팔불출(八不出)의 못난 애비와 자식 자랑 늘어놓는 추한 어미의 궁상맞고 구질구질한 천박한 추태가 신성한 국방의무를 제대로 마친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나아가 국민의 마음까지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가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란 자들도 ‘의사 안중근’과 ‘청백리이자 명재상인 황희 영의정’의 빛나는 행적(行跡)에다 오물을 퍼붓는 행패(行悖)를 부리고도 있다.

특히 홍영표 의원은 ‘쿠데타 세력이 국회에 입성했다’는 해괴한 주장도 했다. ‘김일성 장학생들이 국회와 사법부, 청와대에 치고 들어갔다’는 시중의 여론은 들어본 바가 있어도 쿠데타 세력이 국회에 입성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망언이다. 국회의원 가운데는 여당에도 김병주같은 장군 출신들이 있다. 내편이면 괜찮고, 반대편이면 쿠데타 세력이란 말인가? 참 어이없는 횡설수설이요 수준낮은 망발이다.

선량(選良)이면 선량답게 놀아야지, 어디 할 짓이 없어 일개 지저분한 장관의 호위무사(護衛武士) 노릇이나 하며 미치광이처럼 지껄이고 돌아다니는가? 참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불한당(不汗黨)들이요, 정상배(政商輩)들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감시견(社會的監視犬)들이 스스로의 역할과 사명을 잊어버리고 정신병자처럼 놀아나는 것은 국가나 국민에 대한 충복(忠僕)의 자세가 아니다. 통치자에 대한 충성도 아니다. 고깃덩어리를 놓고 물고 뜯는 ‘개들의 싸움질’이나 다름없다. 반란(叛亂)이요, 역모(逆謀)다.

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몇 가지 덧붙인다. 지구상에는 약 500여 종의 개들이 있다. 영국의 애견가클럽은 수렵견(狩獵犬)인 하운드(Hound), 실용견인 유틸리티(Utility), 조렵견인 건독(GunDog), 테리어(Terrier), 사역견인 워킹(Working), 애완견인 토이독(ToyDog)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개 중에는 충견(忠犬)도 있고 똥개(糞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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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丁 2020-09-18 오전 6:40

    국회의원을 善良이라고 한 말은 대체 어떤놈이 만든 말인가. 개만도 못한 노무시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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