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자 동아일보 45판 5면 종합면에 나온 박병대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관련 기사부터 소개한다.
<…특히 박 전 대법관 구속영장을 기각한 임민성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가족관계'를 기각 사유에 포함시켰다. 박 전 대법관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어머니가 문에 기대어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의문이망'(倚門而望)을 언급하며 93세 노모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기각으로 7일 오전 1시15분경 의왕시구치소에서 석방된 박 전 대법관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판부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박목월의 詩 '윤사월'이 떠올랐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 눈먼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인간 본연의 근원적 애수를 노래한 시인 박목월은 눈이 멀어 자연의 아름다운 봄풍경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의 답답한 마음을 꾀꼬리 울음소리에 대치(代置)시켜 기다림의 심경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다림은 희망인 동시에 답답하고 불안함을 함께 하고 있다.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도 시력(視力)이 좋지 않은 93세의 노모(老母)가 있다. 박병대가 영장심사 판사에게 "법조계 선배로 보지 말고 법리대로 판단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은 보도된 바 있다. 박병대가 마음에 걸린 것은 자신이 구속되고 안되고는 법대로 처리하면 되지만 만일 자식의 불행한 모습을 전해듣고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애틋한 모정(母情)이 박병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으로 보인다. 노모에 대한 박병대의 효심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병대의 노모나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의 기다림에 대한 인간의 순수함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영장담당 판사가 박병대의 지극한 효심을 제대로 살펴 영장기각 사유에 포함시켰다면 그 판사는 판사이기 전 제대로 된 인간 심성을 가진 훌륭한 판관(判官)으로서의 양심과 성정(性情)을 가졌다고 보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박병대의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이었던 L 선생으로부터 소년 박병대君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병대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창락초등학교에 다녔다. 총명하고 똑똑한 소년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박군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사업에 실패해서 충북 단양으로 이사를 가게 됐으니 전학(轉學) 절차를 부탁하더란 것이다.
단양에서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박병대가 중학교에 다닐 처지가 되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목공소(木工所)를 운영하는 어떤 독지가가 학비를 대어 줄 테니 중학교에 입학하라고 하더란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박병대가 또 고등학교 입학도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독지가가 이번에는 서울 유학을 권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간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그래서 박병대는 서울 중구 만리동 산중턱의 H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낮에는 어느 회사 사동(使童)으로 일하며 사무실에서 잠자고 밤에는 공부하는 문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고생한 보람 있어 재수(再修)하여 서울대학교 법학과 76학번으로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사법시험에도 합격, 연수원 12기로 판사가 되고 대전지방법원장, 대법관, 대법원 행정처장 등의 법관 경력을 쌓았다. 동기 가운데는 문재인 대통령도 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이 사법농단, 사법거래와 같은 날조된 신조어(新造語)의 혐의를 받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서울대 법대 76학번 동기들이 영장담당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고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명망받던 한 법관이 하루아침에 피의자로 전락되고 구속영장 심사를 받아야만 하는 오늘의 이 무시무시한 권력의 칼날이 언제 무디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박병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고향 사람들에게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칭송과 함께 지금도 흙수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되고 있다. 박병대는 노모에 대해서는 효자요, 형제간에는 우애극진한 버팀목이다. 자신을 길러 준 은인(恩人)에겐 부모를 모시는 마음으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은사 L선생이 필자에 들려 준 박병대 인생 스토리다.
은사(恩師) L 선생이 들려준 박병대 前 대법관의 '흙수저' 시절
- 문무대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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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0, 16:38
강남 좌파 들이 싫어할 삶을 산 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