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북한체제는 보장해 주고 한국의 안보는 그 토대를 무너뜨린 배신(背信)과 배역(背逆)의 현장이었다.

한마디로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다. 한미동맹의 든든한 맹주(盟主)인 트럼프는 미북 정상회담 접촉단계부터 말이 많고 큰소리치더니만 정작 회담장에서 보여 준 그의 언행은 실망 그 자체였다. 자식 같은 김정은을 만난 것이 ‘반갑다’는 표현 정도를 넘어 “영광”이라고 떠벌린 그 자체가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외교적 수사(修辭)치고는 지나친 아부처럼 보인 것이었다.

공동합의문의 4개 핵심내용은 속된 말로 ‘앙꼬 빠진 찐빵’이었다.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등은 그동안 “미북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의 비핵화’이며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즉 CVID”라고 앵무새처럼 주장해왔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애매한 내용으로 포장했다.

기자회견도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두 정상이 함께 기자들 앞에서 그 내용을 확인 설명하는 것이 외교관례인데도 기자들 앞에 나서서 평가를 받아야 할 김정은을 도망치게 해주고 트럼프 혼자 나서서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았다.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나서려면 기자들 앞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해야 함에도 트럼프가 대역(代役)을 하며 위기를 모면하게 해줬다. 특히 트럼프는 공동합의문에 포함시키지 않은 한국안보관련 핵심사항까지 공개하며 우리의 안보토대(安保土臺)를 뒤흔들어 놓았다.

트럼프는 비핵화 한 마디 하지 않은 김정은에게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란 선물을 안겨줬다.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는 가시적(可視的)조치를 한 것이다. 그것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혈맹관계가 돈으로 연결될 문제인가? 안보를 위해 투자되는 경비는 쓸데없이 돈만 낭비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화와 자유와 인간의 생명수호란 인류공통의 숭고한 목표달성을 위해 투자되는 것이다. “주한미군도 미국으로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한미 군사훈련과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북한이 기회 있을 때마다 물고 늘어진 한국안보의 핵심사항이고 한반도 안전판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이같이 중차대한 한미동맹의 결정체를 트럼프가 김정은 앞에서 가볍게 거론했다면 동맹국에 대한 배신이요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들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선동할 것이다.

공동합의문 발표 이후 국내외 언론은
1) CVID 없이 한미훈련중단
2) 값비싼 전쟁게임 중단이란 이적행위
3) 언젠간 주한미군 미국으로 돌아오기 원한다
4) 미국, CVID 숱하게 외치더니 2005년 9·19성명서(모든 핵포기 명시)보다 후퇴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모든 자유를 갖기 위해 공개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을 가볍게 내뱉었다. 북한은 핵포기 카드를 주한미군 철수카드와 흥정거리로 내놓을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것이 언론의 예리한 시각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허풍선이었고 안보를 돈과 직결시키는 장사꾼 같다는 인상을 한국민들에게 심어 줬다. 김정은은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 푸틴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가며 적국인 미국을 요리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누구와 손잡고 대한민국의 운명을 헤쳐 나갈 것인가? 남·북·미 3국 관계의 운전자론을 강조한 문 대통령은 그 운전석 자리를 김정은에게 빼앗긴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