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 예정이던 미북(美北)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북한이 보여 준 극도의 분노와 적대적 감정”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의 외무성 김계관 부상과 최선희가 개인성명을 통해 “일방적인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는 엄포성 발표를 한 데 대한 선제조치로 보여 진다. 김정은의 구질구질한 조건부 비핵화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조치로도 보인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두 번이나 만나고 나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의 김정은 배후조종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게 급전되자 당황한 쪽은 청와대이다. 한미정상회담을 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A 플러스’라고 칭찬까지 받으며 한껏 들떠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충격이다 보니 졸지에 당한 낭패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미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99.9%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까지 갈수도 있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공든 탑은 일단 무너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할 말이 있으면 전화나 편지로 하라”고 김정은에게 통보했으니 실낱같은 기대는 아직 남아 있지만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오늘의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 싼 남-북-미 3개국의 외교전망에 대해 “홍준표는 맞았고 청와대는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연상되기도 한다. 특히 웃긴 사람은 중앙일보 前 대기자 김영희 씨다. 김영희는 지난 4월29일 <중앙선데이> 29면 전면에 “홍준표는 미네르바의 부엉새를 너무 일찍 날리지 말라”라는 장문의 칼럼에서 홍 대표의 ‘위장평화 공세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담대하고 확실하며 돌아갈 때 다리를 태우고 싱가포르로 김정은이 갈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오면 평화배당금을 홍준표는 외면하지 말라고도 경고했다. 코리아프리미엄도 들먹이며 당파를 초월한 정치적 지향을 촉구하기도 했다. 재래식 이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희의 이 같은 속단과 성급함은 홍준표가 미네르바의 부엉새를 너무 일찍 날린 것이 아니라 김영희 자신이 미네르바의 부엉새를 너무 일찍 날린 것과 다름없다. 김영희는 김칫국을 너무 일찍 마신 것이다.

김영희의 환상과 착각은 국민을 현혹시켰고 중앙일보를 망신시켰다. 대기자의 칭호를 받는 원로 언론인이 시대의 흐름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제1야당 당수를 일방적으로 공격한 것은 대기자답지 못하다. 대기자가 아니라 말단기자(末端記者) 생각보다도 모자라는 지경이다. 노욕(老慾)이 지나쳐 노추(老醜)에 가까운 가벼움이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중대한 시국에 당리당략이나 이기적인 야욕으로 매사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 김정은의 불장난 앞에서 함부로 날뛰거나 일희일비해서도 안 된다. 냉철한 판단과 비판이 있어야 하고 진정한 나라사랑의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때이다. 국민을 기만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