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잔치상이 아니라 제사상 차리는 것 같아 보인다. 4월27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도 친북 일색이다. 메뉴 작성하느라 잔머리깨나 굴린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회담 당일 만찬메뉴를 소개하며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의 뜻을 담아 준비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 해역에서 잡히는 민어와 해삼으로 만든 '민어해삼 편수', 문재인 대통령의 영어 표기인 MOON의 한글 의미인 달(月)과 발음이 같은 부산의 '달고기', 윤이상의 고향 통영의 문어로 만든 '문어냉채', 소고기는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간 서산농장의 '한우숯불구이', 그리고 옥류관 냉면 등도 거론됐다. 건배주(酒)로는 '두견주'와 '문배술'이라고 소개했다. 음식과 술 모두의 선정에 친북냄새가 풀풀 나고 식재료 선정이 김정은을 하대하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오리농법 봉하쌀보다는 경기도 이천쌀이 진상품이고 문어는 남해안 문어가 물러서 맛이 없는 대신 동해안 문어가 특산품이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기리며 메뉴를 정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은 초미의 관심사인 북핵 문제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다루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음식 전시회를 준비하는 듯하다. 죽은 사람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잔치상이 아니라 제사상 차리는 것같아 보인다.

통일을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이야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지 않는가? 김대중과 노무현은 국민이 뽑아 준 대통령이었으니까 그렇다 치자. 윤이상은 그의 과거행적 때문에 고향인 통영에서마저 반대가 많은 상징적 김일성주의자가 아닌가? 윤이상이 통일을 위해 일한 것보다는 김일성에게 충성 맹세하고 유학생 가족들을 평양으로 유인해 가서 한 가정을 파탄시킨 장본인이 아닌가? 통일운동 하면 문익환도 있고 황석영도 있고 김일성이 통일의 꽃이라고 극찬한 임수경도 있지 않은가? 이들이 빠지면 섭섭해하지 않을까?

회담장에 걸어 놓았던 한라산 그림을 금강산으로 바꾸어 단 것도 그렇다. 건배주인 '두견주'는 그 원료가 진달래꽃잎과 찹쌀이다. 진달래꽃을 두견화(杜鵑花)라 부른다. 두견은 일명 뻐꾸기과에 속하는 새로 '접동새'라고도 한다. 북한의 국화는 '목련'이지만 한때 김일성이 북한의 국화(國花)로 진달래꽃을 생각할 만큼 좋아한 꽃이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 하는 김소월의 詩도 있듯이 북한에 많은 꽃이다.

'문배술'도 지금은 국내 명주가 되었지만 원래 고향은 평안도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저녁밥상에 오를 메뉴까지도 친북 일색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정은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 하지만 간(肝)까지 빼줄 듯한 모양새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는가?

건배주만 하더라도 그렇다. 텁텁한 막걸리면 어떻고 소주면 어떤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때도 막걸리가 나오지 않았던가? 김정은이 평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냉면은 왜 들고 나오는가? 음식은 원래 전통그대로 조리하는 것이 일품이지 사람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요란하게 생색을 내는 것은 오히려 음식맛을 떨어뜨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