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는 스산한 십일월 말의 날씨다. 차를 나누며 얘기하기 위해 이웃의 선배 변호사 사무실로 놀러갔다. 젊은 변호사들이 몇 명 그 사무실에 놀러와 있었다. 변호사란 직업도 이제 대를 잇는 것 같았다. 선배 변호사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었다. 나도 사위가 변호사가 되어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자식세대가 되는 젊은 변호사들과 차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경험을 얘기해 준다. 그 자리에 시인변호사인 박 선배가 나와 있었다. 한복차림에 길게 자란 백발에 흰 눈썹을 가진 그는 항상 은자 같은 조용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자리의 제일 어른인 선배 변호사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교회의 종치기를 하면서 평생 동화를 쓴 권정생씨가 자기가 받았던 인세를 세상에 바치고 떠나면서 유언으로 그 관리를 여기 계시는 박 변호사에게 맡겼어요. 변호사로서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목사나 신부 같은 종교인들도 있는데 세상에서 도둑놈이라고 욕을 먹은 변호사에게 맡기도록 했으니까 말이죠.”

그런 믿음은 변호사로서 최고의 명예라는 생각이다. 그는 변호사로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가 아니었다. 어떤 자리를 차지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면서 어린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길들여졌느냐가 삶에서 보석같이 귀중한 게 아닐까. 박 변호사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방에서 서너 권의 책을 다탁(茶卓) 위에 올려놓았다. 동인(同人)들이 함께 모여 만든 시집이었다. 그는 새로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시집을 내게 주었다. 박 변호사의 본질은 시인인 것 같았다. 남쪽 끝의 섬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고 자랐다. 대학시절 같은 대학에 다니던 아름다운 불문과 여학생이었던 분이 우연히 내게 박 변호사의 청년시절을 이렇게 묘사해 주었다.

“하얀 얼굴에 검고 짙은 눈썹을 가진 문학을 하는 아름다운 청년이었어요.”

그 시인은 어느 날 시위 군중들의 맨 앞쪽에서 군인들이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총성이 울리고 옆 사람에게서 피가 튀었다. 이건 아니었다. 회사원이었던 그는 뒤늦게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삶의 행위들로 살아있는 시를 써나갔다. 잔잔한 강물 같은 그의 속에는 촛불이 빛을 밝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비를 뿜어내는 것 같은 그 작고 환한 불의 실체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의 영혼에 접속한 본질적인 것 같았다.

이제 인생 칠십 고개를 올라가는 그는 오래된 차처럼 나사에서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고 덜컹거리는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럴수록 그의 영혼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생기 있게 피어나는 풀같이 싱싱하다. 일생을 검소하게 살면서 추위에도 향을 잃지 않는 매화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망나니 재벌 3세가 대형로펌의 신임변호사 열 명을 앞에 놓고 모욕을 주고 뺨을 때리고 여성변호사는 머리채를 쥐고 흔든 사실이 보도되는 걸 봤다. 피해를 봤으면서도 대형로펌은 쉬쉬했다. 법의 창녀가 되는 변호사들이 더러 겪는 일이다. 그들에게 난초 같은 시인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출처] 재벌3세에게 구겨진 변호사들에게|작성자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