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흘러간 시간 속에 있지 않고 옛 노래 속에 있었다. 부드러운 5월의 밤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의 야산 비탈 공장의 일층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뒤에는 ‘9988힐링 콘서트’라고 쓴 글씨가 보였다. 간소한 무대 앞의 백여 개의 플라스틱 의자에는 오육십대의 남녀들이 앞에 도시락과 캔맥주를 놓고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대에는 기타를 멘 노인이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안경 뒤에서 양쪽 눈매가 처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70년대 유명하던 남성 듀엣 ‘사월과 오월’의 백순진씨였다.

그를 보면서 나의 기억은 금세 대학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춘천의 호반에서 밤을 지새고 난 친구들은 기타를 치면서 ‘화’라는 노래를 열심히 불러댔다. 가슴이 촉촉이 젖어드는 노래였다. 남한강 물이 파랗게 흘러가는 옆을 시외버스를 타고 갈 때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장미’라는 노래에서 한여름의 상큼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청춘은 흘러간 시간 속에 있지 않고 옛 노래 속에 있었다. 시간의 바다 속에서 이십대의 모습 그대로 있을 것 같았던 가수가 노인의 모습으로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조용하고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혼자서 밥을 먹고 라면을 끓여 먹어도 저는 지금도 이 기타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여러분도 나이를 드셨지만 지금이라도 이 기타를 배우세요. 섹스폰은 반주기도 있어야 하고 짐이 많아요. 그렇지만 기타는 간단해요. 첼로를 배우려는 분도 있지만 오케스트라나 그런 데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기타는 그렇지 않아요. 기타는 늙어서 여러분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음악은 저녁놀이 지는 인생 후반부의 색깔과 질감을 깊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방문해서 공연을 하는 걸 봤습니다. 이미 팔십대의 노인인데도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연을 하더라구요. 저도 앞으로 백세가 되어도 세 시간 공연을 계속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기타 줄을 퉁기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린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변두리 야산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장 안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돈 벌어서 단 한 푼도 저승에 가지고 가지 못하는데 그걸 꿍쳐 가지고 있어서 뭐하겠어? 나는 노년의 가수나 뜨지는 못했지만 끼가 있는 가수들에게 이렇게 무대를 제공하면서 친구들을 불러 노년을 즐길 거야.”

그는 공장 일층을 갤러리로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장애소년들도 후원하고 있었다. 그 친구와의 중학시절 어느날이 떠올랐다. 재즈 연주를 듣고 싶어 화신백화점 위에 있는 화신 살롱이나 미도파 백화점의 미도파 살롱을 몰래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도 했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커피 한 잔 주면서 연주를 들을 수 있었지만 학생신분이 걸려서 쫓겨 나왔었다. 친구는 늙어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하는 공장무대의 기획자가 된 거다. 멀리 가까이서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봄날 밤의 멋진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