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萬事가 이유가 있어도 자살할 이유는 없다고 한다. 저렇게 쉽게 자살을 했으니 이 죽음이야말로 가벼운 죽음이고 하등의 소용이 없는 죽음이다.
중국에서 제일 위대한 역사가를 꼽으라면 단연 西漢시기의 사학자 사마천(司馬遷:BC 145年~BC 90年)이다. 사마천은 어릴 적 궁정의 역사 기록관인 태사령(太史令)으로 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史學을 좋아 하였다. 아버지의 유언(遺言)도 나라에 史書가 없으니 반드시 일생의 정력을 바쳐 중국의 사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BC 104년, 아버지가 죽은 후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중국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으니 이 책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읽는 중국 3000년의 역사(황제에서 한나라 시대까지)를 기록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史書인 사기(史記)이다.

그런데 중대한 변고가 생겼다. BC 99년, 사마천의 절친한 친구인 이릉(李陵)이란 장군이 적과 싸우다가 적에게 투항했는데 사마천은 곧 임금에게 이릉을 용서해 달라고 구명신을 쓴 것이다. 이에 대로(大怒)한 임금은 사마천을 궁형(弓刑- 고환을 거세하는 형벌)에 처하고 그 동안 쓴 모든 원고를 몰수하여 불태웠다.

사마천은 유배를 받아 머나먼 변방지구로 내쫓겼다. 이때의 사마천의 심정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자. 원고와 자료들은 몽땅 몰수당했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유언은 실현할 바 없고 사서의 집필은 엄두도 못낼 것이며 남자로서 고환도 적출당했으니 가정도 후대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되었다. 이제 살아서 무엇하는가? 이것이 사마천을 괴롭히는 유일한 문제였다. 처음에는 사마천도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드디어 답을 찾았다. '人固有一死,或重於泰山,或輕於鴻毛'(무릇 사람은 다 죽는다. 죽음 중에는 태산처럼 거룩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도 있다). 사마천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또 한번 <史記>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BC 91년 드디어 <史記>를 끝내고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사기를 다 쓰고 심만의족하여 세상을 떠난 사마천의 죽음이야말로 태산처럼 거룩한 죽음이다.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의 죽음이야말로 겨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泰山重의 죽음이다. 일본 지하철에서 일본인의 생명을 구하고 사망한 한국유학생 이수현님, 세월호 참사 때 자신의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한 단원고 최혜정 선생님과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님의 죽음이야말로 위대하고 거룩한 죽음이다. 이들의 영웅업적은 앞으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귀감이 될 것이고 우리 겨례가 천년만년 발전해 나갈 정신적인 바탕이 될 것이다.

엊그제 성완종이란 기업인이 자신이 뇌물을 준 정치인들의 이름과 준 돈의 액수를 기억에 근거해 제멋대로 적은 메모지를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면서 너무너무 억울해 하던 나머지 자살한 모양이다.

<<…이 개자식들아 벼슬이 되었으면 의리를 지켜야지 내가 준 돈이 공짜란 말인가? 지금 나의 회사가 불법을 저질러 수사선상에 올라 풍전등화가 됐는데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이럴 때 구원의 손 내밀어 줘야 마땅한 것 아니야? 아무리 냉형동물이로서니 이렇게 무정할 수가 있어? 이 나쁜 자식들아. 내가 수십 년 얼마나 그 이까운 돈을 많이 뿌렸는데 돈을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무죄로 덮어 달라는 것인데 이렇게 시침 뚝 따고 그것도 안해줘? 이 벼락을 백번 맞아도 씨원치 않을 놈들……>>

억울해서 자살한 모양인데 억울하면 더욱 살아서 싸워야지 자살은 왜 하는가? 이 세상에 萬事가 이유가 있어도 자살할 이유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저렇게 쉽게 자살을 했으니 이 죽음이야 말로 가벼운 죽음이고 하등의 소용이 없는 죽음이다. 이제 얼마 못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지워질 죽음이기도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