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敬老의 날’(9월15일) 3연휴가 시작된 지난 토요일(9월13일), 동경 도심에 있는 유서 깊은 히비야공회당(日比谷公會堂)에서 북한에 납북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올해야말로 결과를 내자! 국민大집회”)가 개최되었다.  주말과 연휴가 겹쳤으나, 3시간에 걸친 이 집회에 전국에서 1,800여명이 참석하였다.

이 ‘국민대회’는 납치피해자 가족회, 拉北者 구출운동 NGO단체들, 납치피해자 구출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납치 피해자 구출을 위한 전국지방자치단체장 모임, 지방자치체 의원 모임 등이 초당파적으로 공동 주최, 정부가 참여하며 연 2회 정도 개최된다.

  지난 토요일의 대회에는, 拉北 일본인 구출운동을 통해 총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아베 (安倍 晋三)총리를 비롯하여, 납치담당 大臣(장관) 등 관련업무 책임자들은 물론, 공산당과 사민당을 제외한 3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도 참석하였다. 아베 총리는 준비된 원고를 읽지 않고, 대북제재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이 49개국 정상 들에게 납북 일본인 구출 협력을 요청했음과 일북 교섭에서 “행동 對 행동”을 강조하는 4分 정도의 인사말을 하고 퇴장하였다.

  야마따니 에리꼬(山谷 에리子)납치문제 담당 대신은, 납북자 등이 귀국 시 지원대책과 관련하여 노후대책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일북간 이면접촉에 대한 아베 정권의 노력과 기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야마따니 대신은 對北 단파방송 강화 방침도 표명하였다.

  지방자치체장 및 지방의원들은 납북자 등이 귀국 시 수용, 지원 태세를 강조하여 열띤 호응을 받았다. 물론, 참석자들이 모두 아베 정권의 최근의 대북 접촉자세와 과정을 지지,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기간 북측을 관찰, 혹은 직접 접촉했던 인사들은 북측의 간악성을 지적, 아베 정권의 정치적 타협을 견제하였다. 지금 평양을 방문중인 조총련의장 허종만 일행(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의 일본 재입국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었다.

  이날 대회에서 청중으로부터 가장 열렬한 박수를 받은 이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자세로, 아베 정권의 위태로운 對北 행보를 강력히 견제한 前 납치문제담당대신 나까야마 쿄고(中山 恭子) 참의원이었다.

  일본사회의 납북자 구출운동에서는 특히 여성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납북자 문제에 대한 일본사회의 관심이 여기까지 높아지게 된 데에는, 13세 때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된 요꼬다 메구미의 모친인 요꾜다 사끼에 씨, 납북자문제를 초기부터 정력적으로 지원해온 저널리스트 사꾸라이 요시꼬, 납북자 구출운동에서 정부 관계자로서 가장 국민적 신뢰를 받았던 나까야마 쿄꼬 참의원 등의 존재가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납북자들과 탈북자 문제에 무관심한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일본에서 납북자 구출운동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애국운동이 되었다. 일본당국도 처음에는 (한국정부와 마찬가지로) 납북자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외무성 간부들도 평양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을 겁내고 피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일본외교의 우선순위, 기준을 바꾼 것이 납북자 구출운동이다. 역사적으로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 존재였던 백성이, 정부가 보호 구출해야 할 존재로 바뀐 것이, 바로 국민운동을 통해서이다. 국민운동이 정부의 정책 목표와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음을 입증한 역사적 사례가 납북자 구출운동인 것이다.

   아울러, 납북자 문제는, 일본이 동서냉전-한반도 냉전의 戰場임을 일본사회가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납북자문제가 부상되지 않았다면 상당히 이전에 일북 수교가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납북자 문제는 한국(6공화국)과 일본의 대립, 결별을 촉발시킨 결정적 요인의 하나이다. 서울올림픽 후 급격히 좌경화하는 한국을 보는 일본의 불편한 심기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이 납북자 문제를 둘러싼 양국정부간 갈등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일본인 납치공작의 실행범인 신광수를 '비전향 장기수'라고 하면서 김일에게 돌려보낸 것, 노무현 정권이 일본에게 ‘6자회담’에서 납북자문제를 거론치 말도록 요구한 것은, 한국에 대한 씻기 어려운 불쾌감과 불신을 남겼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과거사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일본을 추궁하면서, 현재 진행형인 납북자 문제와 탈북자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과 중국을 추궁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2006년에 북한인권법을 만든 일본으로서는 한국정부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보여진다.

  히비야공회당에서는 바로 한달 전에, 올해도 재일민단의 광복절69주년 행사가 개최되었다. 민단은 8.15행사를 오로지 광복(해방)으로만 기념한다. 민단 조직은 8.15를 한 번도 건국절로 부른 적이 없고, 북한동포 해방을 위해 궐기한 적도 없고, 납북자 구출을 결의한 적이 없다. 자력으로 식민통치를 극복한 것도 아닌 광복절을 습관적으로 기념할 뿐이다. 지금의 在日民團은, 6.25전쟁 시 학도의용군으로 자원 참전하고,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결사 반대했던 빛나는 전통을 이은 애국단체가 아니다. 그저 여야 의원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여 연간 수십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타먹는 “생활인단체”일뿐이다.

  민단은 ‘해방’이 공짜였던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듯이, ‘建國’도 저절로 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건국과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고마움과 감격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그림, 비전이 없다. 북한 해방, 통일도 남의 일로 생각한다. 아니, 무관심하다 보니 무식해져서 일본사회에서 존중 받지 못한다. 자존심도 부족하다. 무식하다 보니, 종북의 元祖인 조총련을 동족으로서 화해 교류의 상대로 말하는 자들이 많다. 시차가 없어서 그런지, 서울에나 동경에나 배부른 돼지 같은 한국인이 많은 점이 똑 같다. (2014.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