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가 5. 16, 유신의 상처에 대해 사과한 것은 역사 평가라는 학문적 사안(事案)이 아니라 대선국면의 정쟁이었다. 야권 또는 범좌파가 한 건 한 것이고, 박근혜 후보가 한 방 먹은 것이다. 그 뿐이다.
이 문제를 그런 정쟁적 시각에서 볼 때 문제는 무엇일까? 박근혜 후보가 계속 수세만 하며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기간 전부터 박근혜 후보는 상대방의 이슈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6. 15 선언과 10. 4 선언 수용, 도로(徒勞)에 그친 광폭행보, 5. 16과 유신에 대한 사과... 모두가 따라가거나 밀리거나 한 것이지 공세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치 투쟁을 이렇게 하는 것인가? 그야, 복지나 경제민주화는 시대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치자. 그러나 역사인식 문제는 왜 수세적으로 상대방이 설정한 프레임에 갇혀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 비(非)좌파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상대방의 잘못되고 헛된 역사인식을 공격할 거리가 지천인데도 왜 그런 것은 한 마디도 못한 채 밤낮 궁색하게 코너로 밀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칭 ‘진보’라는 이름의 세력과 싸우면 젊은 층의 인기를 잃는 등, 결국은 손해다 하는 계산이 있는 모양인데, 이런 ‘자신 없고 실력 없는’ 자세가 실은 우리사회 어른 층에 널리 퍼져 있다. 우리사회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 없고 실력 없는’ 어른들 때문이다.
걸핏하면 “그러면 젊은 층이 싫어해요...” 하는 말들을 곧잘 한다. 오늘(9/24)도 TV조선의 시사 프로 ‘판’에서 여자 아나운서인지 진행자인지가 김동길 박사를 앞에 두고 박근혜 사과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에 그런 말을 했다. 젊은 층이 무슨 염라대왕인가? 젊은 층이 무슨 판관인가? 매사 젊은 층 구미에 맞는 언행을 해야 하는가? 젊은 층이 이 사회의 지적(知的) 도덕적 문화적 기준이자 표준인가? 그들이 그럴 만한 지식과 지성과 판단력과 균형감각과 교양의 두께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고 늙은이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늙은 주책바가지, 늙은 욕심쟁이들도 ‘엉덩이 뿔’ 젊은이, ‘골비니스트’ 젊은이 못지않게 많다. 그래서 “그러면 고결한 노인층과 탁월한 젊은 층이 싫어해요” 해야지 왜 “젊은 층이 싫어해요” 하는가?
박근혜도 문재인도 안철수도 모두가 교육을 망각하고 있다. 어른이라면 마땅히 젊은 층에 대한 어른으로서의 교육자적인 자신감과 자존의식과 실력의 우위(優位)를 과시하진 못할망정, 그저 주눅이 들어 아첨 일색이다. 말춤을 추고 꼭지점 춤을 추고... 가관이다.
무엇이든 밀려서 하면 우습게 된다.
류근일 2012/9/24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