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기관 감사원은 중립기관 KBS의 사장 정연주에 대해 해임을 요구했다. 매서운 꽃샘바람 탓에 산수유 한 송이 꽃가지에 매달리지 못했던 새 정부와 헌 방송의 '적과의 동침' 밀월 기간 100일에 덤으로 50일도 훌쩍 넘겨, 감사원은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을 들어, 주차장 역주행 출근으로 좌파방송독립만세를 관철했던 정연주에 대해 해임을 요구했다. 이에 두 아들을 군대 안 가는 미국 시민으로 키운 아버지는 한겨레서 갈고 닦은 창을 바로 해임 요구 종이조각에 찔러 넣었다. 창끝 좌우에는 '독립성과 공정성'이라고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할 때만 인용하는 외국 기자들의 성명을 들먹이며, 한겨레는 정연주의 철면피 얼굴에 작은 생채기라도 생길까 알록달록 방패를 들고 즉시 뒤따랐다. 석 달간의 촛불집회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던 정권교체가 사실상은 정권유지에 지나지 않다고 키득키득 웃고 있는 민주당도 가만있을 리 없다. 민심을 업고 정신적인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는 자부심에 민주당은 빙긋이 웃으며 당당히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라는 방패를 들고 정연주의 창을 에워쌌다. 새 방송통신위원장의 독립성과 공정성 주장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정연주가 발탁된 이유나 최시중이 발탁된 이유나 정권창출의 결정적 순간에 선진민주 사회에서라면 중립의 표본이어야 할 신문사 또는 여론조사기관에서 각각 '공정한' 보도와 '객관적인' 조사로 부동표를 눈에 띄지 않게 한쪽으로 쏠리게 한 공이 혁혁한 것이었으므로 제1야당의 정연주 방패 역할은 양심에 조금도 꿀릴 게 없다. 

 금성철벽은 열두 겹 해자에 열두 자 너비의 외성, 열두 자 너비의 내성, 즐비한 열둘의 열두 척 망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안쪽 지하 벙커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을 남조선 총독쯤으로 아는 핵폭탄 장군이 들어 있다. 외성, 내성, 망루에 해당하는 것이 미디어 포커스 팬이요, PD수첩 팬이다. 탄핵반대 중계방송과 독재자 고발 다큐멘터리, 친일파 청산 프로, 제국주의의 음모 파헤치기 프로, 민주투사 누명 벗기기 프로, 빨치산 휴먼 드라마, 신자유주의 성토 좌담 등에 가슴이 후련해지거나 눈물이 쏟아진 적 있는 국민들이다. 이들 해자와 외성과 내성과 망루는 더 이상 친북좌파의 전용물이 아니다. 보수층에도 여당에도 두텁게 깔려 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이념을 포기하고 실용을 택했기 때문에 순교자적 이념으로 중무장한 정연주와 그 아이들(kids)을 당할 수 없다. 단지, 절대 승복하지 않을 정연주를 쫓아내는 정도밖에 못할 것이다. KBS를 BBC나 NHK로 만들려면, 양비론(兩非論) 또는 양시론(兩是論)의 실용주의로는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연주의 노림수 또는 그 노림수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2004탄핵규탄민심 또는 2008촛불민심의 지속이다. 친북좌파의 결집이다. 둘째는 연방제통일이 되면 괴벨스 훈장을 받고 고려연방국의 방송총책이 되는 것이다. 든든한 방패와 권력대포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금성철벽이 아니라면, 정연주는 해임무효의 창을 던지기는커녕 동네슈퍼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하루종일 문고리를 잡고 꿈에 나타나 아들을 격려하는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쳐다보며 바들바들 떨 것이다.                  (2008.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