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말 대신에 ‘내공(乃公)’이라 썼던 이유. 지난 10월 30일에 탈장 수술을 받아 11월 1일에 퇴원했고 탈장 수술 후기란 글을 써올렸었다. 입원 한번 했던 적이 없는데 난생 처음 수술을 받으려니 무척 두려웠다. 그런 마음과 주변 사정이 겹쳐서 수술 날짜가 몇 번 미루어졌다. 추석이 끼어 있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나의 아이들은 결혼하여 모두 다른 지역에서 산다. 그래서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추석이면 애들도 올 텐데 내공(乃公, 아버지)이 없으면 서운할 테고 또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될 텐데 싶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서 수술하기로 했다.”

어제 산책을 하다가 통술집에서 자주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다. 그가 나의 수술 후기를 읽었는지, 웃으면서 “아재. 그냥 ‘아버지’라 하면 될 걸 왜 “내공(乃公. 아버지)”이라 썼오?“ 했다 내가 저렇게 쓰면서도 사람들이 틀림없이 웃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옳은 표현이라 자신하고 그렇게 썼다. 그 이유를 말하겠다. 간단하다.

크리스챤은 지극히 높은 분을 향해 ”하느님 아버지“라 한다. 최고의 권위자를 ‘아버지’라 하는 것이다. 아버지란 말엔 그런 의미가 들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남(다른 인격체)의 아버지로서 나는 아버지의 역할을 다 하는가. 그렇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저기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은 이렇다.

“아버지의 역할을 나름대로 했다.” 또는 “아버지의 역할을 반(半)도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버지의 역할을 다 했는가란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는데 자식의 입장에선 오죽 섭섭할까? 그럴 텐데 어찌 대 놓고 ”내가 너희들 아버지이다“는 말을 하겠는가. 또 다른 의미에서는, 아버지라 하든 말든 아버지임에는 변함이 없는 일인데 굳이 아버지라 말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나아가 최고의 권위가 담긴 ‘아버지’란 말을 나와는 관계도 없는, 또는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이 읽는 글에서 내가 어찌 나 스스로를 일러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버지란 말 대신에 ‘내공(乃公)’이라 말했던 바다.

앞사람들이 쓰던 말을 가만히 보면, 언어를 절제감 있게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언어 예절을 지켰음도 알 수 있다. 요사이 같이, 언어를 입에서 쉽게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 쓰지 않았음 또한 느낄 수 있다. 한자 생활의 영향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지금보다는 고품질로 살았을 것이다. 특히 타인에게 자기를 이를 때는 겸손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임금은 신하가 듣는 데서 스스로를 ‘임금’입네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스스로를 ‘아버지’입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아버지' 대신에 쓰던 말이 내공(乃公)이다. 다른 뜻은 없다.

요사이는 대놓고 "우리 아버지 아니다."고 말한다. 올해 7월 2일자 조선일보에 "로또 당첨되고도 고독사한 남성…자녀는 '서류로만 아버지'."란 기사가 있었고, 작년엔 "그는 생물학적 아버지이지 우리 아버지 아니다."고 말한 기사도 있었다. 요사이 아버지 노릇하기가 꽤나 힘들어졌다. 이는 극단적 경우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위상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