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가의 권력은 법의 가면을 쓴 폭력에 불과합니다. 김건희 특검의 수사를 받은 양평군 공무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특검에 처음 조사받는 날, 너무 힘들고 지치다. 이 세상을 등지고 싶다.’라는 절규로 시작하는 그가 남긴 메모에는. 강압과 회유에 지쳐 기억에 없는 진술을 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은 수모와 모멸감, 그로 인한 고통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소위 3특검은 입법 과정부터 수사 대상으로 삼은 여러 혐의에 대한 유죄의 예단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인지한 관련사건들까지 수사대상에 포함시켜 무리한 수사 확대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특검의 수사는 필연적으로 미리 결론을 가지고 그에 맞추어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행태를 보이게 되고 그러한 특검의 수사구조가 강압과 회유 등에 의해 자신의 기억과 다른 진술을 강요받은 성실한 공무원으로 하여금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아갔습니다.

강압은 없었고 통상의 절차에 따른 조사였다는 특검의 변명은 사태의 엄중함에 대한 무책임하고 한없이 가벼운 인식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결심을 할 만큼 고통을 주는 것쯤은 수사에서 통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별 일도 아닌데 고인이 지나게 민감한 반응을 보여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국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가의 권력은 법의 가면을 쓴 폭력에 불과합니다.

근대 형사사법의 역사는 국가권력 특히 수사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고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권력을 제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수사권력을 통제하는 검찰 제도였습니다.

길지 않은 우리 정치사에 검찰권이 남용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지만, 구더기가 싫다고 장독을 없앨 수는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검찰권 남용을 막겠다고 검찰 자체를 해체하여 수사권력에 대한 통제 기능마저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인권보다 정치권과 조직의 이익을 먼저 보았던 특검의 강압적 수사가 빚어낸 비극적 사례가 수사권력을 독점하게 될 통제받지 않는 경찰의 수사 과정 가운데 얼마나 되풀이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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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법원의 동료였고 최근 법조인 최고의 영예인 천고법치문화상을 수상한 강민구 변호사가 양평군 공무원을 죽음으로 몰고간 특검의 수사행태에 대하여 쓴 페북 글을 공유합니다.

●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그 10월의 진실 — 심야조사는 문명국가의 수치다!
(송백일기 2025.10.12.)

2018년 10월 중순,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2015~2017년 부산지방법원장 재임 시절 2년간 제 옆에서 예산 집행을 함께했던 이모 사무관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중앙지검 적폐청산 특별수사본부(한동훈 3차장 지휘)에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에 걸쳐 정신적 압박과 집요한 추궁을 받았다고 했다. “영장 없이는 더 이상 진술하지 않겠다”고 버텨 겨우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검찰이 던진 질문의 핵심은 이랬다. “강민구 부산법원장이 재직 중 판공비나 현금성 경비를 사적으로 쓴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 “한 건만이라도 인정하면 집에 보내주겠다.”

그때 나는 법원장 시절 대법원으로부터 매달 지급된 현금성 경비 100만 원(연 1,200만 원)을 단 한 푼의 사적 용도로 쓰지 않았다. 해당 금액은 법원 공식 예금 계좌에 입금해놓고, 수석부장과 공보관에게 각각 30만 원씩, 나 자신은 40만 원을 사용하며 모두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투명하게, 증빙서류까지 갖추어 집행했다. 그것이 국가 예산을 다루는 공직자의 최소한의 양심이자 책임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은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며, “한 건이라도 사적으로 쓴 게 있지 않느냐”고 12시간 동안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 사무관은 결국 “영장 없이 더 이상 감금 상태의 조사를 받을 수 없다”며 조사실을 뛰쳐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밤샘조사의 반인권성’을 고발하는 글을 써서 법원 내부 코트넷 전산망에 올렸다. 그 글은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대한민국 형사절차에서 ‘밤샘조사’와 ‘포토라인’이 폐지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자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나섰다. 그는 자신의 형사소송법 책에서조차 밤샘조사의 위법성과 비인권성을 인정해 놓고도, 내 글을 두고 “그 말을 할 자격이 강민구 판사에게는 없다”라며 비열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했다. 이에 나는 “치사한 겁박으로 진실을 덮으려 하지 말라”며 다시 글을 썼다. 그 글은 중앙일보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되며 전국적 논쟁으로 번졌다. 며칠 뒤 조국의 멘토이자 형사정책연구원장이었던 한인섭 교수가 “이 문제는 강민구 판사의 주장이 옳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제야 조국은 꼬리를 내렸다.

나는 그날의 글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오직 한 공직자의 절규, 12시간의 강압적 조사를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한 사무관의 전화에 분노하여, 인간으로서, 법조인으로서 써야만 했다. 그러나 조국은 이를 왜곡해 “용산고 동문 간의 정치적 비호(임종헌 차장과 선후배 사이)” 등으로 내몰았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공권력의 남용, 심야조사의 야만에 대한 나의 분노였을 뿐이다.

그리고 올해 10월 10일 새벽, 또 한 번 악몽 같은 일이 떠올랐다. 양평의 한 면장님이 특검의 무리한 수사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나는 새벽 5시, 잠옷 차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심야수사와 인권’에 관한 글을 다시 썼다. 그 글은 페이스북에 친구 한정으로 공개되었고, 누군가 이를 언론사에 제보해 보도가 되었다. 나는 이번에도 내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믿는다. 물리적 고문만이 고문이 아니다. 일몰 이후, 밤을 새워 사람의 정신을 짓누르는 조사 또한 인권을 짓밟는 폭력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명국가라면, 국가기관이 수사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말한다. 심야조사와 밤샘수사는 고문이다. 포토라인은 인격 살인이다.
검찰이건 특검이건, 경찰이든 스스로의 오만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결코 법치국가라 부를 수 없다.

야만국가가 아닌 문명국가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모든 수사기관은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강압적 행태를 성찰하라. 그것이 2018년의 그 10월, 내가 밤새워 썼던 글의 진정한 이유였고, 지금 다시 그 말을 꺼내는 이유다. 이제는, 배운 자들이 더 이상 불의를 침묵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