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정체성과 본질을 버리면 사라지는 게 자연 이법(理法)이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체급 무시, 2대 2도 가능…복싱의 이유 있는 변신》

내용인즉 WBA(세계복싱협회)가 정규 복싱선수와 아닌 선수와의 경기를 주선하는가 하면 체중을 무시한 경기도 붙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레슬링처럼 2:2의 경기도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복싱이 젊은 세대를 끌어들여 최고 격투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던 20세기의 인기를 되찾으려는 노력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신문은 썼다 어리석은 짓이다. 인기를 되찾으려는 노력이야 곱지만 남의 흉내를 내어 인기를 되찾는 것은 남의 인기이지 자기 인기가 아니다. 그래서야 인기가 찾아지지도 않는다. 망해 버린 프로레슬링이 하던 짓을 따라 하겠다니 무모하다는 말 말곤 더 할 말이 없다. 저렇게 하면 깜짝쇼는 되겠지만 계속적으로 그러면 WBA가 도태될 것이다.

신문은 또 (저렇게 변화하면) 새로운 복싱 팬이 유입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런 변화를 복싱계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고도 썼다. 구경꾼이 하는 말은 구경꾼의 말일 뿐이다. 작사도방(作舍道傍)이란 말도 있거니와 “목수가 많으면 집을 못 짓는다.”는 말도 있다. 타인이 하자는 대로 하면 ‘자기’를 잃는다.

문제는 복싱의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는 쪽의 주장은 신문이 단 한 줄만 썼다는 점이다. 곧 이렇게, “재미가 우선시되면서 복싱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비판도 있다.” 이어서 이런 말도 하긴 했다. “체급 차이를 무시한 경기를 하다가 선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옳은 말이다. 안 그래도 복싱 경기 중에 사망사고가 더러 생기는데 신장 차이가 20㎝, 체중 차이가 30㎏인 두 사람의 경기 그것도 정규 복싱선수와 쇼맨 같은 복싱人을 싸우게 하면 하나는 죽게 된다. 진짜로 경기를 한다면 말이다. 설혹 진짜 경기를 하더라도 관중이 진짜 경기로 여기겠나. 신뢰성 없는 경기에 두 번 보러 오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프로 레슬링도 망했다. 유명 프로 레슬러가 "프로 레슬링은 쑈다"는 고백을 하자, 쑈인가 아닌가 긴가민가하던 관객이 발길을 딱 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 복싱이 프로 레슬링이 망했던 길을 걸으려 한다. 장자의 꿈 속에 나비가 됐는지 나비의 꿈 속에 장자가 됐는지를 몰랐다면 장자와 나비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음을 잊었다는 말이다. 자기 정체성과 본질을 버리면 사라지는 게 자연 이법이다.

우리가 운동을 할 땐 아마튜어리즘에 충실했지만 그래도 프로 복싱 구경은 했다. 그때는 WBA(세계복싱협회) WBC(세계복싱평의회) 두 개뿐이었는데 우리가 운동을 그만둘 때쯤 IBF(국제복싱연맹)이 생겼다. 이를 보고 우리들은 이렇게 말했다. “꼬시락이 제 살 뜯어 먹듯 하겠군.” 이 판에 또 WBO(세계복싱기구)가 나왔다. 그리고 복싱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전에 웹사이트용 ‘스위시(SWiSH)’가 유행했다. 파일 형식은 SWF였다. 배우기엔 힘들었지만 익히고 나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인기를 얻자 유사 제품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위시 회사는 도리어 스위시가 손에 익을 만하면 후속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다시 처음부터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이게 반복되어 스위시(SWiSH) 4탄이든가 5탄이든가까지를 출시했다. 일부분만 다르면 되는데 통째로 다르게 출시되니 어려운 것을 다시 배우기에 지친 나머지 나도 3탄 프로그램까지만 하다가 그만두었고, 스위시는 소비자의 외면 속에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반면에 지금도 건재한 포토샵은 여전히 포토샵이란 이름 아래, 새로운 기능을 서서히 추가해 나갈 뿐이다.

언제든가 조선일보에서 읽었는데 그 용어는 잊었다. 상품의 변화는 소비자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변화, 발전해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조선일보 오늘 기사 “카카오톡 개편 참사가 남긴 교훈.”도 이를 말하고 있다. 복싱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면 할수록 '정통'과 '본질'을 버리면 안 된다. WBA가 2:2의 경기를 주선하거나 체급 제한 없는 경기를 한다면 이미 복싱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것은 복싱이 아니라 복싱의 유사품이요 사이비이고 아류이며 변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