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유학생 기술자 장학수와 북한 연구원이었던 나와의 일맥 상통 경험. 소련 기술자 장학수와 북한 연구원이었던 나와의 일맥 상통 경험

1990년 11월 탈북, 중국에서 체포 북송, 1991년 6월 재탈북한 후 중국 연변 체류시 그 적막한 속에서 유일한 낙은 KBS 방송을 듣는 것이었다. 그 중 라디오 드라마로 <붉은 별 아래서 청춘을 묻고>를 감동있게 들었다. 장덕수가 쓴 책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남한 출신으로 월북, 소련유학, 6·25전쟁 후 북한에 갔다가 1961년 소련으로 탈북하였던 분이다.

이 분이 쓴 모든 글에서 저와 너무나 일맥상통한 것들이 있어 적어 본다. 장덕수도 연구 기질이 있어 전공이 아닌 곳에 배치해도 어디서나 기술 발명들을 한다. 저 역시 북한 과학원에서 농업연구원이었지만 전공이 아닌 홍원수산사업소에 작업 동원 한 달 만에 33가지의 발명을 한다.

북한에서는 기술 혁신 및 창의 고안이라고 한다. 저의 발명으로 홍원수산사업소는 1년에 1만2천여 명의 노력이 절약된다. 수익금도 남한 돈으로 환산하면 340억 원에 해당한다. 하지만 잘한다는 칭찬 외에는 보수란 없다. 단지 홍원 수산사업소 기사장이 너무 맘에 든다고 이쁜 사업소 처녀 3명을 소개하며 결혼하고 함께 일하자는 것이 다였다. 홍원수산사업소는 평안남도의 수산물 즉 동태를 책임질 만큼 수만 명의 특급 기업소이다.

아래 장덕수가 소련 하리꼬브 트렉터 공장에서 느낀 바에 하나도 틀리지 않고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밀페된 공간에 지게차 매연이 자욱해 가스실 같다. 명태 냉동 부산물 냄새로 마치 송장이 있는 관 속과 같다. 유해 노동에 작업마저 중노동이다. 보수도 일한 만큼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이다.

한 달 임시 동원된 외지인인 제가 33가지 기술혁신을 한 것은 결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33가지 기술 혁신 하나 하나를 알고 보면 너무 간단한 것들이다. 그런데 평생 일하듯 하는 사업소 사람들은 왜 이것들이 눈에 안 보일까.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기술 혁신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작업 인원을 보장받는다.

만약 기술 혁신하면 이런 안정된 작업 인원을 보장받지 못한다. 한편 기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그걸 고치느라 오히려 고생뿐이다. 사람이 힘에 겨워도 그건 노동자들이지 간부가 힘든 것이 아니다. 작업 동원된 인원도 사업소가 노임을 지불하지 않기에 공짜 노동력이다. 따라서 33가지 기술 혁신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연구 그 자체보다는 현장 직장장의 음으로 양으로의 방해였다. 직장장이 왜 그렇게 방해하였는지는 나와 헤어질 때 위와 같이 실토하여 알게 되었다.

아래는 소련 유학생, 기술자 장덕수가 느낀 바들이다. 코멘트하면 소련의 1960년대 수준이 이런데 미국과 대적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심지어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그 한심하다는 남조선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고 소련 사람들과 공산권은 깨달았다. <공산주의는 공상주의! 사회주의는 사기주의!>

1. 종업원수가 1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 공장이었지만 상당히 혼잡스러웠고, 공정 상당수가 수동이고, 시설은 오히려 북한 공장보다도 열악해 보였다.
2. 공장 안에서는 숨도 쉬기 힘들었다. 환기가 안 되어 연기가 가득 차 있었고, 잠깐만 있어도 얼굴에 검댕이 묻었다. 한 시간 정도만 있어도 기침이 막 나고, 새까만 가래를 뱉어야 할 정도였다.
3. 이런데도 공장 높으신 분들은 공장 환경을 개선하거나 기계화 등에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노동자들이 규칙을 잘 안 지킨다고 변명하면서 일을 떠넘길 뿐이다.
4.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서 공장의 코크스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였음에도 인센티브는 월급의 5%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 옷 한 벌 살 정도의 돈이었는데, 이렇게 돈을 적게 주니 당연히 의욕이 나지 않았다.
5. 공장의 일부 물건은 일부러 불량품으로 방치되었는데, 일부러 불량품을 일정 정도 만들어놔야 코크스나 강재(鋼材) 등의 원재료를 더 많이 배정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역시 공산주의의 모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6. 노동자들도 근무환경 개선이나 공정 개선에 크게 관심이 없다. 어차피 의욕도 없는데 그런 거 해봤자 뭐하냐고, 달라질 게 없다며 체념하고 있는 것이었다.
7. 장학수 자신은 공장에서 꽤나 중요한 연구원 인력이었는데도 월급이 꼴랑 140루블이었는데, 이 정도면 정말 '굶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음. 이렇게 월급이 적으니 당연히 근로의욕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평함.
8. 노동자들은 근무중에 쌓인 스트레스나 피로를 거의 다 술을 퍼마시며 푸는 경향이 있었음. 보드카 등의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노래를 불러제끼는 것밖에는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