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보다… <작은 일, 작은 성취>

큼직한 방 안에 노숙자들이 꽉 들어차 의자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벽 가운데에 걸려 있는 커다란 텔레비젼 화면에서 출연자들이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의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는 알 수 없는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떠돌았다. 그 방 구석에서 한 여성이 노숙자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다. 나무의자에 앉은 노숙자의 뒷통수 부분에 그녀의 손에 들린 반짝거리는 가위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떡진 노숙자의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여성 미용사는 시간을 내서 고정적으로 그곳으로 와서 봉사를 한다고 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미용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기억 우물의 깊은 곳에 있던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의 남자 미용사를 떠올렸다. 나의 머리를 깎으면서 그가 말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미용학원에 등록했어요. 공부보다 훨씬 재미 있었죠. 열심히 기술을 익혔죠. 저는 좋았지만 남들이 한심하게 보고 무시하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저는 개의치 않고 미용사 자격증을 얻고 바로 취직이 됐죠.”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하느냐, 세상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그는 미용사의 일에 대해 말을 계속했다.

“미용실에 들어올 때 촌스러워 보이던 사람이 세련된 모습으로 변하는 걸 보면 마음이 흐뭇했어요. 각국의 미용잡지를 가져다 놓고 헤어스타일을 익혔죠. 여성들의 얼굴형과 머리형태를 공책에 그리고 또 그려가면서 공부했어요. 일요일도 쉬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도 괜찮았어요. 조금 더 다른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싶었어요. 신나게 일할 때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멋있는 헤어스타일이 나오더라구요. 누나는 공부를 미용기술 배우듯 했으면 대학도 가고 출세했을 거라고 해요.”

그는 자기의 기술과 직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기술 숙련과 동시에 견뎌내야 하는 인간 고락이었다. 그걸 감정노동이라고도 표현하는 것 같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손님은 내가 손대는 부분마다 일일이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을 했어요. 서비스업인데 그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죠. 그 결과로 미운 머리가 나왔을 때는 눈물이 쑥 빠지도록 혼이 나고 욕을 먹었어요. 미용사라는 게 일보다 손님 비위 맞추기가 훨씬 힘들어요. 진상 손님이 참 많아요. 머리하는 동안 내내 재산 자랑하다가 돈을 낼 때는 깎는 얌체도 많아요. 미용실 몇 번 오고는 돈을 꿔달라는 사기꾼도 있어요. 이제는 말 몇 마디 건네면 그 여자의 속까지 보는 경지에 왔어요.”

그가 마지막에 덧붙였다.

“오시는 분 중에는 정말 그릇이 큰 좋은 분도 있었어요. 한번은 내가 가위질을 하다가 손님의 귀를 썰었어요. 피가 뚝뚝 떨어졌죠. 내가 놀라서 어쩔 줄 몰랐어요. 그 손님이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면서 귀에 탈지면을 대고 지혈시켰어요. 그리고 저를 용서했어요.”

머리를 깎는 짧은 순간의 대화 속에는 인생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소년 시절부터 세상의 시선을 눈치보며 자유로운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인간이란 남이 어떻게 볼까를 의식해 평생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생 동안 위선의 탈을 쓰고 사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일이 놀이가 된다. 놀이로 하는 것이 그 일을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일의 과정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나 진상손님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갈고 닦아주는 사포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돌이켜 보면 나도 변호사를 하면서 그들 때문에 일터가 수행터가 되고 노동이 기도가 되기도 했다. 노숙자 시설의 구석에서 봉사를 하는 여성 미용사는 그 악취들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천사가 되면 그분이 악취를 향기로 바꾸어 주는 것일까. 국가와 민족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보다 미용사의 작은 일 작은 성취가 더 돋보이고 의미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