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해수욕장이 있고 국립병원이 있고 문학이 살아 숨쉬던 가포(架浦) 개발 실패 사례. 가포(架浦)
마산에 국립마산병원이 있다. 국립마산병원은 1941년 일본 상이군인 요양소로 설립되었고, 1948년 한국 최초의 흉곽성형수술을 실시했으며 1949년 국립중앙결핵요양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온화한 신마산에서도 더 남쪽인 가포(架浦)에 있는 바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부드럽고 하늘은 주로 쾌청하고 산과 숲은 예나 지금이나 푸르르다. 일본군의 요양소가 있는 곳이라선지는 몰라도 이전부터 그 일대는 나뭇꾼이 얼씬도 하지 않은 덕분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폐결핵 유병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있다. 폐결핵은 소모성 질병이며 후진국형 질병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잘 걸렸고 이상하게도 글쟁이들이 심했다. 그래서 전국의 이름난 문인들이 국립마산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흔했다. 문인들이 입원해 있다 보니 문학소녀쯤 되는 여고생들이 문인들의 실물이 보고 싶은 나머지 병원 근처에 진을 치다시피 했고 용기 있는 학생은 면회를 신청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서로 가까워지고 연애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에피소드를 기록한 책이 그때는 베스트셀러였고 그 덕분에 마산은 문학 동네가 됐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그 일대는 마산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가포해수욕장이다. 60년대에 한번은 입원환자들이 모여 데모를 했다. 해수욕장에 드나드는 차량들이 과속으로 달리며 비포장길의 먼지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포해수욕장에 가는 길이 아스팔트길로 바뀌었다. 어린 우리는 신마산 댓거리(종점)에서 시내버스를 내려 5리 정도 되는 해수욕장을 걸어서 가야 했는데 포장이 되었으니 걷기가 수월했다. 그래서 산책하는 입원환자들을 보고 “아재요. 또 데모해 주소.” 하기도 했다.

가포해수욕장을 지나면 ‘가포 본동(本洞)이란 자그마한 촌락이 있는데 마산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끝 동네였고 마산 시내와 동떨어져 있다 보니 2000년대까지도 전통적 시골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도 전라도는 그런 모습을 보물 같이 보존하고 있다. 박정희 각하 시대에 이 동네가 그린벨트에 묶였다. 비가 새어도 지붕을 수리할 수 없었고 못질조차 못하는 것은 물로 논밭과 집을 사고파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살고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서 하루아침에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아파트 단지로 지정 되고 말았다. 이럴 바에야 왜 비가 새는 곳도 못고치게 했더란 말이냐며 주민들이 데모를 했다.

우리도 뛰어가서 함께 분노했고 주민들이 시장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마침내 시청이 주민들의 주장에 동조, 정부에 진정하기를 “가포 지역은 마산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다시피하다 유서 깊은 해수욕장이 있고 국립병원이 있고 문학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저 촌락을 다 허물고 주민들을 쫓아내고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다. 아파트 단지화를 해제해 달라” 했다. 그러자 건설부가 “이미 건설부 고시가 끝났으므로 해제가 불가능하다” 답변했다. 주민들이 데모를 해도 무능하고 게으른 시청 공무원들은 들은 척도 안한 체, 방치하고 있다가 책임을 덮어쓰고 만 것이다. 그림 같이 아름답던 그 촌락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때 그 아지매와 아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민들을 쫓아내고 촌락을 허물어 아파트 단지화를 하려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포해수욕장을 매립하여 항만을 만듦에 따른 배후도시를 건설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가포해수욕장 매립 반대 데모가 치열했다. 그때 마산시가 내세운 것은 일자리 몇만 개가 새로 생긴다는 것 등이었는데 지금 개미 새끼 하나 없는 텅텅 빈 항만만 덩그라이 제 혼자 서 있다. 시청의 무식한 행정이 마산의 풍광과 유서를 망치고 헛돈을 퍼부었으면서도 책임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광주·대전·부산 등에서 여의도 9배 규모 그린벨트 풀린다…첨단 산단 등 조성》

최상목이는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행이다. 자기는 결정권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니? 최상목은 자기 권한 밖의 일. 특히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한 일은 안 해야 된다. 안 그래도 ‘배신자’ 소리를 듣는 마당에 권한 밖의 일을 하며 우쭐댈 텐가? 어느 유투브에서 들은 말인데, 어떤 사람이 “윤석열 정부”라는 말을 하니 최상목이가 “지금이 왜 윤석열 정부인가? 최상목 대행의 정부이지.”라 말했다고 한다.

그린벨트를 푸는 이유는 첨단 산단 조성이라 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그린벨트 해제 같은 중차대한 일. 특히 자연을 허무는 일은 엄밀히 말해 당대(當代)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몫이다. 그때 가면 산단 조성보다 더 나은 목적으로 해제할 수도 있고 보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도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대행의 대행 따위가 결정할 일은 더구나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