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배시때기가 불러' 묵은 밥(이밥)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이었다. 한 쪽 땅만이라도 참 다행이다! 오늘은 내가 남한에 들어온 날이다. 꼭 30년 전인 1995년 2월 18일이다. 남한 나이 30살 된 셈이다.

모스크바에서 떠난 비행기는 아침 출근 시간대에 김포공항에 내렸다. 함께 한 탈북자들은 벌목공 출신 전성철과 김봉찬 씨였다. 출근 시간이라 한강변을 따라 조사 기관으로 향한 거리는 붐볐다. 서울 시내를 직접 보면서 두 명의 벌목공 출신들은 말한다. <야! 일본 같다 야!>

폐쇄 북한의 사람들이지만 일본의 발전상은 잘 안다. 북한의 동지인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서이다. 평양시에 다니는 승용차 거의가 일본제이다. 전자 제품, 사진기, 옷, 자전거 등은 일제가 최고였다. 반일 정도가 아니라 항일을 부르짖으면서도 일제를 가장 선호했다.

나 역시 공감하면서도 다른 느낌은 <한 쪽 땅만이라도 참 다행이다!>. 남녘 땅마저 북한처럼 낙후하고 못 살았다면 우리 조국 전체가 무슨 꼴이 될 뻔했겠나 하는 본능적인 애국심의 발현이었다.

당시는 조사 기간이 6개월이었다. 1995년 9월30일로 경기도 분당시에서 자유로운 남한 생활의 첫 발을 디디게 되었다. 거처는 분당시 이매동에 있는 교회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면 단체가 먹는 밥이니 남으면 상당했다. 북한에서 생일날에도 먹기 힘든 이밥(흰 쌀 밥)이다. 혼자 먹어도 먹어도 어림 없이 남는 밥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마침 분당시를 가로지르는 내천 공원에 기념 식수도 하는 겸 나가 보았는데 겨울 철새들이 많았다. 묵은 밥들은 원칙상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그냥 버리기 너무 아까워 새들 먹이로 내천가에 뿌려 놓았다. 며칠 후 운동 삼아 나가 보았는데 뿌려놓은 대로 이밥들이 있었다. 새들도<배시때기 불러>먹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이었다. 바로 지척 북녘 땅에서는 사람들이 강낭죽도 없어 굶어 죽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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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온 지 3년쯤 되니 남북한의 <기아>사태가 났다. 남한은 기아 자동차의 부도로 시작된 IMF로 망한다고 난리이다. 북한은 기아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때이다. 한반도인 남북이 전체 망한다고 할 때이다. 당연히 죽는 이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죽는 것도 남북이 급격히 차이 났다. 남한에서는 자가용 차 안에서 번개탄 가스 먹고 죽는다. 북한은 설 한풍이 떠도는 길가에서 강낭죽도 못 먹어 죽는다. IMF 때 아무리 살펴봐도 굶어서 죽은 남한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 북한은 남한의 제주도 경제력도 안된다고 했다. 10여 년 전에는 북한이 남한의 고흥군 경제력도 안되다고 했다.

남한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 류 교수란 분의 집에 갔을 때이다. 이분은 승용차 화물차 3대, 트렉터, 경운기, 오토바이, 자건거가 있었다. 나는 언제 이렇게 될까 까마득하였다. 북한에 있을 때 나의 부친은 맏아들인 나보고 <뽀베다>감이 되라고 하셨다. 뽀베다는 승리라는 소련제 승용차인데 높은 간부만 타고 다니는 차이다. 따라서 이렇게 성공하여 높은 간부가 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승용차 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꿈으로도 믿어지지 않던 꿈은 남한에 와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30년 되자 남한의 롤 모델이었던 류 교수보다도 더 부자가 된 나를 본다. 차 석 대, 오토바이, 자전거는 물론 류 교수가 못 가지고 있던 포클레인도 갖추고 있는 나이다. 물론 돈이 많아서가 결코 아니다. 전문대 시절 기계과였던 경력으로 중고들을 값싸게 구입하여 수리하여 갖춘 것들이다. 개인 집에서 쓰기는 너무 과할 정도의 성능들을 지녔다. 장비 하나가 수백 수천 명의 노동력을 대신한다. 혼자이지만 약 1500명의 인부를 거느리고 있는 셈이었다. 뜻이 있으면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임을 확인한다.

나 개인의 장비로 볼 때 북한의 한 개 군보다도 능력이 더 높다. 탈북 전에 있던 김정숙 군에도 포클레인이 없었으며 트랙터도 28마력짜리밖에 안 되었는데 내 것은 거의 3배 마력 수를 가진 73마력짜리이다.

<뽀베다> 감이 되라는 부친의 소원을 훨씬 넘은 내가 되었다. 탈북이란 인생 혁명의 결과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자이다. 재산 여부를 떠나 북한에서 살아 보았기 때문에 이 행복이 뭔지 알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은 행복한 줄 몰라 불행하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은 불행한 줄 몰라 불행하다고 한다. 따라서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보면서 행복한 줄 알기를 바란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보낸 풍선을 보고 불행한 줄 알기를 바란다. 저는 그래서 대북풍선 원조가 되어 소식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탈북하여 잘살게 된 나로서 정말 행복한 마지막 일이라고 본다.

* 남한 첫 생활에서 롤 모델이었던 류 교수는 아들의 사업 실패로 쫄딱 망해 비닐 하우스 집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