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가 우연히 발견한 屍身 하나로 제2공화국이 탄생했다.
우연에 의해 역사가 결정된 경우가 허다하다. 우연이라고 말은 하지만 우연은 정해진 때와 우연이 결합 되어 생긴 것이지 순전히 우연으로만 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우연이란 없다. 아무리 우연처럼 보여도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생길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라는 명언도 있는 것이고 엥겔스도 “우연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필연성이 감추어져 있는 형식이다” 말했을 것이다.

4·19는 마산의 3·15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사실은 마산의 4·11에서 시작됐다. 3·15 그날 밤 이후 김주열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이튿날부터 그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가 “내 아들 주열이 못 봤오” 하며 아들을 찾아, 마산의 골목마다 시장마다 학교마다 관청마다 안 가는 데가 없었다. 옳케 먹지도 않고 다녀서 머리를 산발하고, 피골은 상접하고, 입은 옷은 걸레가 됐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에게 밥을 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마침내 김주열이란 이름을 모르는 시민이 없게 됐고, 동네 아이들은 “내 아들 주열이 못봤오”란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곤 했다. 그 어머니의 초라한 행색에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된 가운데 마산은 이상하고 무거운 침묵에 눌려 지냈다.

부산일보 마산주재 기자 허종 씨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으로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 사진을 찍었고 부산일보에 실렸다. 이 신문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편, 김주열이 발견됐고 그의 시신이 마산 도립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치고 도립병원에 가지 않은 이가 없었다. 병원 마당 가마니 한 장 위에 눕혀진 김주열을 보고서 약속이나 한 듯 들고일어났다. 평소 갑남을녀로 지내던 잡초 같은 사람들이 성을 내고 일어선 것이다. 이것이 4·11이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어부가 우연히 발견한 시신 하나로 제2공화국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심리적 내란상태란 말이 떠돌고 있다. 정치인들이 내란. 내란거리고 있으니 괜한 주장도 아니겠거니와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예기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엉뚱한 우연 하나가 내란으로 터져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