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능력이 다했을 때 부르짖음이 '엄마!'가 아니라 '하늘아!'였다.
<나의 체험으로 말하는 종교 이야기>
탈북 노정인 중국에서 소련 국경을 넘을 때였다. 국경 철조망을 피하기 위해 택한 것이 소련으로 흘러가는 수분하라는 강이었다. 수분하는 흑룡강성 동녕현에서 우수리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흘러간다.
강물에는 철조망을 안 쳤겠지 한 '현명한 타산'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현장에 닥쳐서이다. 철조망 없는 대신 화경(헤드라이트)과 총구가 보이는 망루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망루가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섰는데 흘러가다 보니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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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단 한 수의 선택이었는데 정말 경악했다. 장마로 흘러가는 강 물살을 이기고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 눈을 뻔히 뜨고 총구가 있는 망루 앞으로 저절로 가는 것이다.
이때 가장 부러운 것이 새와 물고기였다. 새가 되어 날아갔으면, 물고기 되어 물 속으로 사라지면 살겠는데 하는 염원이 사무쳤다. 이러한 사무침을 장난스럽게 무시당하며 눈을 뻔히 뜨고 죽음의 망루 앞으로 흘러가기만 한다.
망루로 가까이 갈수록 그 망루는 죽음의 공포를 넘어 형용할 수 없는 악마의 아구리로 보인다. 쳐다 볼 수조차 없어 하늘로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 크게 소리쳤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마디만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인간의 능력이 다했을 때 부르짖음이 평상시처럼 엄마!가 아니라 하늘아! 였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세계에 들어갔다. 하늘아!와 함께 나는 하얀 목화 솜인지 구름인지 그 위에 평안히 누워있는 것이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다. 평안 그 자체만 있었다. 이 체험을 거짓말이라고 남들이 말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속이지 못한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으로 해석하든 종교적으로 해석하든 체험 그대로이다.
시간이 얼마 흘렀는지-강물 소리가 들린다. 현실 속에 돌아온 나는 본능적으로 망루부터 살폈다. 망루가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보인다. 망루 앞으로 무사히 지나온 소련 땅인 것이다. 전날 저녁에는 환하게 켜있던 화경도 이때는 먹통이다. 그래서 나는 무사히 국경을 넘은 것이다.
과학원에서 '천재가 아니면 바보!'라는 소릴 들을 만큼 평시 멍청하지 않다는 자부심이 컸었다. 하지만 이때는 바보가 맞았다. 망루를 생각지 못한 어리석음은 국경을 넘는 날을 고른 것에도 반복되었다. 날을 고르다 골라 도착하고 보니 보름달이 총총 뜨는 날이었다. 달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대낮처럼 보일 수도 있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국경 망루를 넘으려는 저녁에 마침 새까만 먹구름이 몰려와 달을 가렸다. 주위는 달 안 뜬 날보다 더 새까맣게 되었지만 화경은 왜 안켰을까. 너무 환한 보름달이어서 화경은 켜지 않았을까. 아무튼 달을 가린 먹구름과 먹통인 망루 속에 국경을 무사히 넘은 것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나의 선택이지만 그 어리석음이 나를 살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때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 했으니 하느님이 날 살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또 거부할 처지도 못 된다. 철학에서는 이를 우연과 필연 현상 속에 우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연 치고는 너무 기가 막힌 우연이어서 차라리 신을 인정하는 것이 편해 보였다.
이런 체험을 한 후 3일을 더 강물 위를 떠내려가 우수리스크에 도달했다. 또 기차로 이틀 후에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했다. 이 과정 소련 장교와 교수가 천사 같이 나타나 도움받은 이야기는 약한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뜻밖에 캐나다 국적 한인 선교사를 만났다. 그 선교사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꾸어 말한다. 이미 체험해서인지 하나님! 소리가 옛날처럼 그렇게 알레르기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이해는 안되지만 "그래! 차라리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지 뭐!". 이는 어려운 나 같은 이웃을 돕는 그들의 선행으로 인하여 굳어져 간다. 이렇게 시작이 되어 내 인생의 새로운 변환기를 맞는다. '떡으로만 사는 인생을 의로 말미암아' 사는 대북 선교사로 인생을 마무리지어 간다
선교사를 만난 계기로 기도 생활을 시작했다. 외롭고 위험한 탈북 망명 시절 그게 도움이 되면 크게 되었지 해 되는 것은 없었다. 내면에 도움은 물론 가는 곳마다 선교사들이 현실적으로도 도움을 준다. 정부도 한때 외면한 탈북자들을 이들만은 돕는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할 정도의 도움이었다. .
모스크바 망명 시절, 쇼크가 일어날 만큼 다친 적이 있다. 묵고 있는 허진 선생(反 김일성 인사)의 별장 건축을 돕다가 전기톱에 손가락 뼈까지 다친 것이다. 아직도 왼쪽 장지 손가락에 그 상처 자리가 있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와서 손가락을 부여잡고 외마디 소리로 "하나님! 하나님!" 했다. 그런데 그 죽을 것 같던 통증이 싹 사라진다. 거짓말 같다. 이것도 내가 나를 속일 수 없는 체험이다. 그래서 방언은 아직 할 줄 몰라도 교회에서의 '신유(神癒) 치유'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의 대부 같은 한경직 목사가 작성한 전도지의 한 내용이 생각난다. 6·25 전쟁 때 미군의 융단 폭격 속에 무신 인민군들도 소나무를 붙잡고 "하느님! 하느님!" 소리 하더라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그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또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수없이 존재한다.
이러한 세계를 무시한 공산당이 얼마나 단편적인가. 종교를 미신, 비과학이라고 욕한 공산주의가 비현실, 비과학인 것이다. 결과는 열매로 보여준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미 붕괴된 공산권이 잘 보여주었다. 그 공산권보다 더 지독한 반 종교적인 북한 역시 반드시 붕괴될 것이다.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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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7, 19:39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