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의사소통(意思疏通)의 줄임말로 영어로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 일컫는다.   의사소통은 동양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서양의 개념이다. 종적 구조가 발달한 동양과 달리 서양은 횡적 구조가 발달했는데, 거기에 필수적인 요소가 대등한 관계에 따른 소통이다. 종적 구조에서는 윗사람의 명령과 아랫사람의 복종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무형의 끈이므로 소통보다는 눈치와 코치, 아첨과 거짓말이 더 중요하다.   소통을 다른 영어로 표현하면, mutual understanding(상호이해)이다. 다시 말해서 소통의 기본 전제는 서로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고 시적인 어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분명하고 산문적인 말이나 글로써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소통하려면 음성 언어든 문자 언어든 대화가 필수적이다. 대화는 그리스어 디아로고스(dialogos, διάλογος)에서 유래한 낱말인데, 원래 뜻은 ‘두(di) 사람이 주고받는 말(logos)'이다. διά(dia) 또는 δι(di)는 ‘across, through, inter' 뜻인데,   그 원형은 ‘two’이다.

명령과 복종 관계에서 아랫사람은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감히 질문을 해서도 안 되고 토를 달아서도 안 되고 중얼거려서도 안 되고 건성건성 박수해서도 안 된다. 몰라도 아는 척하고 즉각 ‘예!’라고 공손히 대답하는 게 미덕이므로, 대화가 필요 없다. 아무리 귀신 씨 나락 까 먹는 소리처럼 들려도 즉각 고개는 크게 끄덕이고 눈은 별처럼 빛내고 입은 반쯤 헤벌려야 한다. 서른 살 애송이도 살인마 애비 덕에 인간신의 위치에 올라서서 최고존엄으로서 알코올 물씬 입에서 나오는 대로 명령하면, 아랫것들은 환갑 진갑 다 지나도 칠순, 팔순 노인도 그저 황송하게 영하 30도의 날씨에서도 곱은 손을 호호 불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 적어야 한다. 이처럼 독재자의 원래 뜻은 바로 ‘받아 적게 하는 자(dictator)’다.

서양 사회의 횡적 사회 구조에 따른 소통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기적 또는 예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문화가 아니다. 무려 500년에 걸쳐서 발달한 피와 땀의 유산이다. 르네상스와 산업화의 질풍노도,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갈등, 전쟁과 평화의 반목(反目)이 피와 땀의 민주화로 꽃 피는 과정에서 무려 500년에 걸쳐서 발달한 문화유산이다. 그 핵심은 의회(parliament)인데, parliament는 원래 영어가 아니라 불어이다. 아시다시피, 불어로 'parler'는 ‘말하다’의 의미이다. 그러니까 의회는, 국회는 멱살 잡고 고함지르며 싸우는 데가 아니라 오로지 말로써 토론하고 논박하고 합의하는 의사소통의 열린 공간이다.

한국에서 소통이 화두로 떠오른 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것은 김대중당과 노무현당이 득세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소통을 입에 담고 글에 실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었다. ‘나는 소통, 너는 불통!’ ‘우리는 소통, 너희는 불통!’ ‘나’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이고 ‘우리’는 김대중당과 노무현당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반공은 불통이고 햇볕은 소통이다.

보수는 불통이고 진보는 소통이다.

자유는 불통이고 평등은 소통이다.

독재자 김일성은 불통이고 김일성 주석은 소통이다.

독재자 김정일은 불통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소통이다.

독재자 김정은은 불통이고 김정은 제1 위원장은 소통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통이고 독재자 박정희는 소통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불통이고 독재자 전두환은 소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통이고 쥐박이는 소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이고 유신공주는 소통이다.

선별적 복지는 불통이고 보편적 복지는 소통이다.

FTA는 불통이고 FTA 반대는 소통이다.

자유무역은 불통이고 중상주의는 소통이다.

5.16은 불통이고 5.18은 소통이다.

5.16혁명은 불통이고 5.16쿠데타는 소통이다.

5.18광주사태는 불통이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소통이다.

친일은 불통이고 친중은 소통이다.

친미는 불통이고 자주(친북)는 소통이다.

기업가는 불통이고 노동자는 소통이다.

대기업은 불통이고 중소기업은 소통이다.

불법시위자의 부상은 불통이고 경찰의 피살은 소통이다.

북한인권단체의 진실 풍선은 불통이고 조선중앙통신의 비방과 협박은 소통이다.

국정원 댓글 3개는 불통이고 전공노와 전교조와 포털의 30억 댓글은 소통이다.

박근혜는 불통이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소통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분법! 정통우파는 불통이고 친북좌파는 소통이다.

소통은, 대화는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누구도 100%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속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상대가 옳으면 그걸 인정하고 자신이 그르면 그것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서로 상대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오해를 풀고 타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보라! 들어 보지도 않고 상대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희대의 독심술을 발휘하여 지난 20여년간 친북좌파가 걸핏하면 쏟아낸 00성명서나 00선언문을 보라. 거기 어디에도 상대를 인정하는 구절이 없다. 소통과 대화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걸 최고의 무기로 사용하지만, 그들은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어쩌다 대화의 열린 공간에 빼꼼 나타났다가도, 조금만 수틀리면 발끈하여 길거리로 달음박질하여 천막을 치고 어깨와 허리에 가로 세로 나라가 당장 망할 듯, 한국 정부가 김일성왕조보다 악독한 독재 정권이라도 되듯 섬뜩한 구호의 붉은 띠를 두르고 듣거나 말거나 일방적인 폭언을 쏟아낸다. ‘나는, 우리는 100% 올바르고 너는, 너희는 100% 틀렸다!’는 것을 전제로 상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거나 절대 양보하지도 타협하지도 않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비장한 각오를 만천하에 고한다. 성전(聖戰)을 치르겠다고 자동차 소음을 가볍게 제압하는 확성기를 빵빵 울린다. 호응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기고만장해지고, 호응하는 사람이 썰물같이 빠지면 의기소침하는 게 아니라 여론조사가 잘못되었다며 불쌍한 민중이 어용방송에 세뇌되었다고 개탄하며 더 한층 전의를 불태운다.

이처럼 한국에서 지난 20여년간 소통은 구두선에 지나지 않았다. 소통의 기본자세도 못 갖춘 위선자들이 상대 진영에 자신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독선의 가면이었다. 말인즉슨 횡적 구조의 대화와 소통이었으나 행동은 종적 구조의 명령과 복종이었다. 자신들이 강자였을 때는 약자인 상대를 수구불통이라며 다수결의 논리로 찍어 누르고, 자신들이 약자일 때는 강자인 상대의 다수결 논리를 하나같이 다수의 횡포라 거부하고 소수의견 존중만이 소통이라고 우긴다. 투쟁한다. 욕한다. 저주한다. 상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터무니없는 요구에 상대가 불응하면, 상대를 불통이라 서슴없이 낙인찍는다. 동네방네 소문낸다. 자기는 상대의 말에 절대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상대에겐 자기 말만 들으라고 윽박지른다.

민주, 진보, 환경, 평화, 평등, 자주, 화해 등 아름다운 추상명사처럼 소통도 친북좌파 문화권력이 선점해서 휘두르는 또 다른 선전선동 무기이다. 또 다른 말의 오염이다. 정명(正名)!

(2013.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