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00년대 중국식 개혁개방할 뻔했던 기회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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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장성택이 김정은을 제거 즉 등소평이 화국봉을 밀어낸 것처럼 되었다면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택동이 죽은 상태의 중국 상황과 북한은 달랐다. 오히려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개혁 세력을 반격한 모택동 시대 격이었다.
  
  2002년 10월 남한을 방문한 것은 장성택과 박남기 국가 계획위원회 위원장이다. 박남기 위원장은 대표단 단장이었지만 실세는 장성택이었다. 남조선 시찰시 이것저것 물어보는 박남기를 질책할 만큼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은 호텔에서 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남한 발전상에 부러움과 질투심에 화가 날 정도였다. 다 붕괴된 소련과 공산권 속에 속하는 북한과 반면 미리 개방한 중국의 발전상을 그는 잘 보고 있었다. 그 발전하는 중국이 모델로 삼는 나라가 남조선인데 실제 와보니 기가 막히게 발전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남조선 갔다 온 즉시 김정일에 실각되었다가 차후에 개방을 시도하였다. 그것이 바로 중국 곁의 신의주 특구인 것이다. 하지만 김 부자 정권의 특성상 개방은 곧 죽음이기에 박남기도 장성택도 결국에 제거 대상이었다. 1992년 남한을 방문했던 김달현 부총리 역시 제거된 전적이 있다. 아무튼 남조선 왔다 간 인사들은 다 속은 변절자로 보고 제거하는 것이다.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에 대한 변호]
  경제를 일으키자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돈은 시중(이른바 주민 경제)에 있었다. 그만큼 국가는 시중이란 물 위에 기름처럼 떠있었다. 따라서 시중 돈을 강탈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시대에 세 번째 강행된 화페 개혁인 것이다.
  
  이건 북한 같은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또 이걸 김정일 모르게 절대 할 수 없다. 차후 정권 유지에 위협이 될 만큼 민심이 하늘을 치솟자 돌변하여 박남기에게 모든 죄를 씌워 처형하였다. 이건 공산 절대권력 내에서 흔히 있는 일화 중에 하나이다.
  
[ 2023-01-20, 08: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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