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처럼 용기있던 처녀는 왜 북송선을 탔을까

북한방문기가 있음에도 왜 재일동포들은 20여년간 속아 갔을까(3)의심 품고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
그처럼 용기있던 처녀는 왜 북송선을 탔을까. 참! 미스터리이다. 부모님과 열 형제 중 일곱이 북송선을 탔음에도 함께 하길 거부하여 가출한 박영숙 여사이다. 거의 모든 가족이 떠난 후 2년도 안되어 북한방문기인 <락원의 꿈은 깨어지고> 책까지 나왔다. 이 책을 보고 더욱 안 가길 잘했다고 믿어졌다. 한편 북한에 간 가족들의 편지에도 은밀하게 오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더욱 믿음이 굳어졌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이 믿음을 초월하는 처지에 빠지게 만든다. 가족이란 엄청난 보호막이 사라진 것을 실감한다. 혼자 된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시선과 외로움은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이었다. 이 정도 되니 가족이란 보호막과 안정, 정조를 위해 부모 형제가 있는 북한으로 가기로 한다. 이를 기다린 듯 먼저 간 아버지가 운명 직전이라는 소식도 온다. 임종을 지켜드려 도리된 자식이 돼야겠다고 채찍질한다. 이러한 감성은 북한방문기 책까지 본 이성을 한순간 무너뜨렸다.

한편 자기 위안한다. 북한이 아무리 나쁜 곳이라 해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 그래도 가족이 있는 곳이 더 편하겠지! 하고 북송선을 타게 된다. 그 해가 1963년 겨울이다.

이러한 실례는 또다른 북송교포 신은혜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간 부모님과 형제들이 그렇게 오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건만 북송선을 탄다. 18살 청년으로서 생각은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 그리운 엄마! 생전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는 곳에 가자! 엄마가 간 백두산 근처의 산골. 아무리 성실히 일했어도 결국 간첩 혐의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힌다. 백두산 심심산골에서 무슨 간첩질 할 것이 있단 말인가. 일본에 남은 형님이 큰 돈을 기부한 덕에 10년 만에 석방은 되었다. 하지만 열악하기 그지 없는 수용소 여독으로 석방된 지 1년도 안되어 죽는다.

박영숙 여사도 두 명의 오빠와 두 아들이 죄명도 모르게 정치범수용소와 감옥 끌려가 죽고, 그 여독으로 남편마저 병으로 잃는다. 이쯤 되면 이런 지옥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인 조총련 사람들이 증오스러울 것이다. 이와 함께 인도주의라며 북송을 지지한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들도 피해자들이다. 일본에 사는 조총련 사람들은 박영숙 여사나 신은혜 아버지처럼 대부분 순수하다고 본다. 그래도 내 조국이고 차별없는 지상낙원이기를 믿고 북송운동을 벌렸다. 이들도 북한이 어떻다 해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 그러나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얼마나 처참한 곳인지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월이 가며 점차 이 처참한 북한 실상을 조총련 사람들도 알기 시작하며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이 1984년 아무도 북송선을 타지 않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북송 시작 24년 만이다.

필자는 이러한 조총련 사람들의 심정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2003년 재일본 북송교포의 인권을 위한 시위를 위해 조총련 본부가 있는 도쿄에 갔을 때이다. 일행중 직접적인 북송피해를 입은 강철환, 박상학 등은 총련본부 담장을 뛰어 넘어가다 체포를 당할 만큼 격앙된 규탄 시위였다.

시위한 다음 식당에 모여 있을 때이다. 시위자들 중 편안하게 보여서인지 내 곁에 어머니와 아들이 되는 분이 찾아와 앉으며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조총련 사람이다. 하지만 북한이 좋아서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간 가족이 있고 또 직업이 총련에 있기에 있을 뿐이다>. 훗날 북한 실상을 알게 된 이들도 고통을 느끼고 있고 어찌면 오해를 받아도 표현을 못해 더 괴로워했다. 조총련에 있다는 이 모자를 통해 함부로 욕할 것이 못됨을 강렬하게 느꼈다.

한편 시위에 참여한 일본인들도 순수한 분들이었다. 북송사업 초기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적극적인 지지 운동을 했던 일본인들이었다. 하지만 두고 보니 낙원이 아니라 지옥에 보내는 운동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시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일본인 여성은 식사 자리에서 명함을 주니 식사를 즉시 중단하고 물수건 있는 곳에 가서 손을 닦고 와 정중히 받는다. 이런 예의있는 일본인들이 한때는 북송사업을 적극 찬성하여 운동하였던 분들임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실제로 북한인권운동은 양심있는 일본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을 직접 경험하였다. 김일성 앞에서 노래까지 한 전월선 재일동포 가수의 오빠들이 정치범으로 몰려 결국 죽어간 사연을 듣는 자리에서 있던 도쿄대학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1994년 북조선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운동 단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본받아 남한에서 1996년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운동(북한인권시민연합) 단체가 결성된다. 필자도 탈북자로서 창립자의 한 사람이다. 탈북자를 구출하기 위한 첫 시작도 일본인들이다. 대표적으로 가토 히로시 단체이다. 라디오 인터넷이 차단된 유일한 곳 북한에 대북 풍선으로 정보유입을 하는 저의 단체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에 2005년 시초부터 맨 먼저 함께하고 20년지난 지금도 함께하는 외국인 단체도 일본인 아라키 교수이다. 이분은 시오카제라는 대북방송도 직접 운영한다.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기보다는 진실을 공유하면서 함께 해야 한다. 그 진실의 시초가 이 책 <락원의 꿈은 깨어지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부활시키려 하는 것이다.

전 북한과학원 연구원, 현 (사)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이민복 2026년 9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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