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상으로 가는 그 노인이 남긴 말>

그 노인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십년 동안 투석을 하면서 병으로 고생을 하던 분이었다. 차라리 잘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이 바둑도 두고 밥도 먹고 그가 겪어온 세상 얘기도 들었다. 그의 영혼을 위해 조사(弔辭)를 쓰는 걸로 멀리 바닷가에서 문상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가 했던 말 중 몇 개를 수첩에 적어 두었던 적이 있다. 그걸 들추어 본다. 그의 인생 전반부는 화려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천복을 타고 태어난 것 같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어. 서울 중심에 있는 몇백 평 대지의 집에서 자라났지. 재능도 받았어. 공부를 잘해서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를 졸업했으니까. 출세도 무난했어. 대학 재학시절 메이저 신문사 기자로 들어갔어. 난 다른 기자와 다르게 여유가 있었지. 기사가 운전하는 집의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고 취재를 다녔으니까. 편집국장을 하고 사장까지 갔지. 재물 운도 따랐어. 아내가 가구 사업을 했는데 아파트가 서울에 대규모로 들어설 때 그 붐을 탄 거야. 그 많은 아파트를 우리 가구공장에서 만든 걸로 채웠으니까. 거의 재벌 수준이었어. 호텔도 리조트도 가지고 있었지. 제주도에 승마용으로 말도 네 마리 있었고 요트도 가지고 있었어. 여한이 없이 잘 논 것 같아. 신문사 사장을 하니까 그게 권력이더라구. 주변에서 다 알아서 기는 거야. 정치인이나 유명 배우들과 룸살롱에서 잘 놀았지. 나는 건강도 축복을 받은 것 같아. 평생 아무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팔십까지 꺼덕없는 거야. 우리 아버지나 형님들도 모두 장수하셨지.”

그는 금수저중의 금수저였다. 그는 성품마저 좋게 타고났다. 그의 부하였던 한 언론인이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분은 삐딱한 다른 언론인과는 달리 성격이 참 낙천적이었어. 그리고 적극적으로 남을 도왔어. 신문사 사장이라고 하면 목에 힘을 주고 부탁도 잘 들어주지 않는데 그 분은 어떤 사람이 부탁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지. 작은 부탁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해결해 주는 거야. 무슨 대가나 이익을 계산해서 그런게 아니라 성품 자체가 따뜻했어. 언론계에서 그런 사람이 없었어.”

그런 그가 인생의 가을 무렵 지뢰를 밟은 것 같았다. 그를 찾아가 부탁을 했던 사업가가 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정관계에 뇌물을 뿌린 게 드러나고 그게 정치 문제화됐다. 청와대도 의심을 받고 있었다. 깃털이 아니라 몸통을 수사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칼을 빼들었다. 대검찰청은 얼마 후 게이트 사건의 몸통은 바로 그였다고 하면서 그를 구속했다. 그의 성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의 인생이 차디찬 겨울을 맞이한 것이다.

그가 겨울나무가 되어 떨고 있을 때 나는 그를 만났다. 그가 교회 맨 뒷자리에서 기도하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친하게 됐다. 그가 살아있을 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사기범으로 70일을 구속되어 있었어. 내가 무슨 사기를 했는지 몰라. 젊은 발명가가 부탁해서 우리 신문에 내주라고 한 것밖에 없어. 아니 또 하나 있지. 그가 발명한 게 너무 좋아 보여 지인들에게 알려줬지. 그 젊은 발명가는 학연도 지연도 없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도와줬지. 나는 살아오면서 하나님 법을 어겼는지는 몰라도 세상 법을 어긴 적은 없어. 그런데 그 검사가 나를 정치적으로 엮은 거야. 게이트 사건이 터졌는데 깃털의 몸통을 만들어야 했던 거지. 그 탓에 성경 속의 욥같이 폭삭 망해버렸지. 경기도 변두리 셋집에 살지. 이제는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기가 정말 싫어. 내가 가난해지니까 골프나 크루즈 얘기들을 하는 게 정말 듣기가 싫어지는 거야. 당장 다음 달에 어떻게 살까가 막연한데 말이야.”

그가 망한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벌써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서 다른 면을 발견했다. 그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것은 모두 잃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영혼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경기도에서 공짜 전철을 타고 와서 지하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앞에서 나는 감사기도를 해. 아직도 이런 건강을 주신 것에 대해서 말이야. 내가 정치적 속죄양이 되어 보니까 눈이 열리게 됐어. 내가 신문쟁이였지만 나에 대해 신문에 난 게 하나도 진실이 없었어. 법은 공정한 줄로 알았는데 검사를 보니까 정치를 한 거야. 적나라한 세상을 몸으로 알게 된 거지. 감옥 안에서 성경을 처음 읽었어. 그분은 고난을 통해 끌어들이시더라구. 나를 파멸시킨 검사를 용서하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잘 안돼. 노력하고 있어. 그리고 나 정말 후회하는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욥이 잿더미 속에서 깨달았듯이 그의 고통을 먹고 만들어진 진주같이 귀한 진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잠시 틈을 둔 후에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하나님이 다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시면 정말 베풀고 살거야. 거지 나사로에게 눈길 한 번 준 부자같이 되지는 않을거야. 그때 철이 없어 돈을 나만을 위해 쓴 걸 정말 후회해.”

나는 그의 표정에서 어조에서 진정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투석을 하면서 쇠약해져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며칠 전 키 크고 강건하던 그의 몸무게가 오십칠 킬로그램까지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가벼운 몸으로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늘 아침을 그를 위해 나 홀로 부흥회를 열었다. 드럼을 치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그의 맘이 평안하리니”

그의 영혼이 옮겨가면서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