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爆音) 속에 끝낸 최후의 단말마(斷末魔)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최종회)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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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비극도 모른 채 우 순경 반겨


그보다 먼저 새벽 1시 30분, 평촌리 서인수 씨 집.

그동안 우범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한 연기를 태연하게 자행하고 있었다. 총소리가 한바탕 야밤의 산골마을을 뒤흔들어 놓고 난 다음, 아직 여기저기서 신음과 비명이 잦아들지 않고 들려왔었다.

그 시간에 문 씨 상가의 바로 뒷집 서인수(61) 씨 집엔 불안한 가운데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태풍이 휩쓸고 난 뒤의 정적이 오히려 그들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또 하나의 격전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방위병인 서정수(徐正洙, 23) 씨가 큰아버지 서인수 씨에게 말한다.

“무장간첩이 나왔나봄더. 암만해도 지서에 가 신고를 해야 겠심더.”

바로 조금 전 서정수 씨의 형 형수 씨가 총을 맞아 “살려 달라”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담 너머 문 씨 집에서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들은 그 엄청난 비극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때만 해도 그들은 불안 속에서 오히려 행복했다.

방위병인 서중수 이병은 집을 나선다. 그때 마침 우범곤이 그쪽으로 온다. 둘은 마주친다. 서 이병은 반갑기 짝이 없었다. 우범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출동한 경찰관으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 이병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범곤을 맞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문이 달리지 않은 대문께를 지나, 헛간채를 돌아서 안채로 간다. 그때 그 집에는 서인수 씨의 부인 전복순(田福順, 63) 씨, 서재갑(徐在甲, 59) 씨, 서점도(徐點道) 씨, 그의 부인 이순두(李順斗, 46)와 박금수(朴金洙, 49), 서종수(徐鍾洙, 23), 그리고 주인 서인수 씨까지 7명이 있었다. 모두들 마당으로 들어서는 우범곤과 서 이병을 반가이 맞는다. 집안에는 모두 9명이 있게 된다.

 

우범곤은 태연하게 대사를 왼다.

“간첩 들왔심더. 지서가 습격 당해가 쑥밭이 됐심더. 지서장도 죽었심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불안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그러자 우범곤은 그들을 안심시킨다.

“걱정 마이소. 내가 있으니 안심하시소. 여러분 보호하러 내 안왔능교.”

모두들 다행스런 마음으로 고마워 어쩔 줄 모르며 마루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담배를 건네줬다.

 

<어리석은 것들.>

우범곤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받아 피우며 앞으로 어ᄄᅠᇂ게 할까 정리를 해본다. 

<살기를 바랄 수 있을까? 아냐 늦었어. 이제 끝내는 일만 남아 있다.>

그러고 있는데 문 씨 집 참상을 담 너머로 언뜻 보고 온 서재갑 씨가 상황을 더듬더듬 얘기한다. 우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한다.

“범인이 우찌 생겼등교?”

“키는 큰 편인데 얼굴은 못봤심더.”

<모르고 있구나.>

그러나 누가 신고를 하러 갈까봐 불안하다.

“작전 중잉께 대피를 해야 합니더. 어서 방으로들 드가소.”

 

그는 사람들을 방으로 몰아넣고 방의 형광등을 끄게 한다. 저도 방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머리를 벽 쪽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고 얼마를 있었는지 모른다. 부인네들 하고 몸을 맞대고 있는 것이 불편해진 남자들이 웃방으로 가 있겠다고 한다. 우범곤도 좁은 방에서 9명이 앉아있는 것이 불편했던지 그렇게 하라고 하낟. 그래서 주인 서인수 씨와 서재갑 씨, 그리고 박금수 씨 이렇게 세 사람이 웃방으로 간다. 그리고나서 새벽 3시 40분까지 아래 윗방 사람들은 불안한 가운데 깜빡깜빡 졸기도 해가면서 약 두 시간을 보낸다.


폭음(爆音) 속에 끝낸 최후의 단말마(斷末魔)


새벽 3시 40분.

우범곤도 깜빡깜빡 졸다가 마루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워문다. 그에겐 두서 없는 생각들이 빨리빨리 지나갔다. 산다는 것, 사나이 대장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산다는 것, 죽음, 그리고 생애 대한 애착, 치사하고 더러운 그 생명에 대한 애착, 개죽음, 그래 정말 개죽음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싫다. 그렇게 죽기는 싫다.

그는 자질구레하고 성가신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그 죽음에 이르는 계기를 얼른 마련하지는 못한다. 그도 역시 사람이니까. 그러다가 그는 깜빡 잠이 든다.

 

3시 40분쯤, 안방에 있던 서점도 씨와 서종수 씨가 오줌이 마려워 마루를 기다시피 해서 밖으로 나간다. 그들은 먼데서 어렴풋이 들리는 차소리와 사람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조그맣게 말한다.

“차가 온다.”

그 소리를 방안에 있던 서정수 이병이 듣는다. 그는 간첩을 잡으러 경찰이 온 줄 알고 반가워서 마루에 있는 우 순경을 깨운다.

“우 순경요! 경찰이 왔심더, 일나소.”

우범곤은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어!”

그는 차소리를 확인한다.

놀라는 그를 보고, 오줌 누러 나왔던 사람들이 도리어 놀라 묻는다.

“와 그러능교?”

그 순간 우범곤이 방으로 뛰어든다.

 

“꽝!”

서인수 씨 집은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폭음에 휩싸인다. 최후는 찰나에 왔던 것이다.

한참 후 오줌을 누르 나왔던 두 사람돠 웃방에 있던 세 사람이 겁에 질려 수류탄이 터진 안방을 들여다 봤을 땐,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방 안에선 서인수 씨의 부인 (53)전복순 씨, 서점도 씨의 부인 (54)이순두 씨, 그리고 방위병인 (55)서정수 씨, 그리고 범인 우범곤이 처참하게 숨져 나뒹굴고 있었다. 사망 56명, 부상 34명, 그리고 자살 1명.

적어도 4년 전, 우범곤은 자기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의 낙서 모음집에 있는 이런 자작시가 눈길을 끈다.


단 하나

살다 살다 단 한번 가슴에 안을

꿈속같은 이야기의 얄미운 마음을

혼자만이 사랑하다 힘 없이 죽을 몸

새파란 칼날로 가슴을 찔러도

비명도 없이 웃음을 지닌 채

슬픈 마음에 죽을 넋

터져 헤어져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석류 속처럼 새빨간 가슴

반기고 간 사람도 없고 울리고 간 사람도 없이

웃고 울면서 울면서 웃고

아련히 다가오는 젊은 여인의

손에 얼굴을 묻고 미쳐 죽고픈 청춘

내 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전신의 피를 쏟고 쓰러져 보렴

뼈마저 부서져 버릴 못 믿을 마음

새빨간 혓바닥으로 나불대느니보다

차라리 가느단 팔로 목을 끌어안고

숨막히는 포옹으로 죽어나 가라며.

-낙서 모음-


궁류산천에 슬픈 꽃상여 행렬이…


사건이 휘몰고 간 뒤 궁려면의 산천엔 진달래가 진 뒤를 이어 예쁘고 슬픈 상여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했다. 수많은 꽃상여들이 줄을 이어 이 산 저 산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田씨, 李씨, 柳씨, 徐씨 이렇게 네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 하나씩을 차지하고 자자손손이 살면서 대를 두고 서로 혼인을 하다 보니, 아래윗집이 형님 아우요, 건넛집이 사돈이었다. 서로 친척 아닌 집이 별로 없었다. 

 

토곡리, 매곡부락, 운계리, 평촌, 이 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나는 삼거리엔 산으로 가던 상여들끼리 서로 만나 죽은 사람들을 인사시킨다. 요령잡이의 목청도 구슬픈데 늦은 봄 하늘도 또 높고 푸르러 슬프다.

“아이고 형님 우짠일여, 세상천지 우짠일여.”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요령잡이가 소리(先唱)를 준다.

꽃상여는 끄덕끄덕 죽은 형님이 탄 상여에 절을 하고, 형님도 아우의 절을 끄덕끄덕 받는다.

“여보게 이 사람 우짠 일여, 예서 만나니 우짠 일여.”

요령잡이의 선창에 맞추어 상두꾼들도 후렴을 합창하며 눈물을 흘린다.

“우찌 갈꼬 우찌 갈꼬, 서럽아서 우찌 갈꼬.”

“어허이 어어하, 어어허이 어어하.”

 

이쪽 상여 뒤를 따르던 문상객은 저쪽 상여의 조카요, 저쪽 상여의 문상객은 이쪽의 당숙, 상여도 상여끼리 발을 못떼어 주저앉고 뒤따르던 이쪽 상여와 저쪽 상여의 문상객들도 한데 엉켜 울음을 터뜨린다.

우체국 집배원 전종석 씨 부부의 상여 뒤를 고아가 된 어린 삼 남매가 따른다. 부부 상여는 어린 것들을 두고 좀처럼 집에서 발을 떼어놓지 못한다.

 

“세상 천지 사람들아

이런 일이 우짠 일고

애통하다 애통하다

세상 천지 사람들아

어린 것들 우찌 두고

황천 길을 우찌 갈꼬.”

 

사진 기자도 셔터를 누르다 말고 손수건을 꺼낸다.

상여가 집을 나서자 초등학교 2학년짜리 어린 상주 이규 군을 한 어른이 업고 뒤를 따른다.

문두출 씨의 아들 문천웅 씨는 날 때부터 벙어리였다. 어머니와 아들 딸을 잃고 슬픔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래도 “꺽” 저래도 “꺽”, 꺽 소리밖에 안나와 꺽꺽거리며 하루 세 차례 장례를 치렀다.

그날, 신라시대 이래의 이 경개 좋고 순박하던 궁류면 산천이 “꺽” “꺽” 마지막 오열을 흐느끼고 있었다. 

“세상 천지 사람들아

이런 일이 우짠 일고…”

 

 

(끝)

 

 

[ 2021-11-05, 16: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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