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全재산을 기부하고 떠난 老人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변호사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의 여러 형태 삶을 보면서 깨닫는 게 많았다. 강 회장이란 분이 있었다. 부두노동자로 시작해서 집요하게 돈을 번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운이 따라주었다. 그가 우연하게 산 넓은 땅이 지금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와 백화점이 들어선 땅이다. 그가 땅을 산 동기는 6·25 전쟁시 한강을 헤엄쳐 건너 압구정 기슭에 닿아 남쪽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돌밭으로 별 가치가 없는 땅이었다. 그는 거기에 농막을 짓고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을 보기 좋아했다.
  
  강남개발이 되면서 그곳에 다리가 놓이자 땅값이 치솟았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그의 허름한 사무실을 찾아와 근처 식당에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자고 했다. 아파트 단지의 건설을 위해 그 땅을 사려고 온 것이다. 그는 자기 땅이 번잡하게 되는 게 싫었다. 정주영 회장에게 땅을 판 후 개발 가능성이 없는 땅을 찾았다.
  
  강에서 거리가 멀고 강북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은 가야 하는 진흙밭인 대치동 일대의 육만 평 가량을 정주영 회장에게 받은 돈으로 샀다. 그는 목수와 일꾼 몇 명을 데려다가 개인집을 한 채 한 채 지어서 팔았다. 강남개발이 되면서 그곳 역시 땅값이 무섭게 치솟았다. 그는 부자가 됐다. 그의 손은 마이더스의 황금 같았다. 주식에 손을 대면 주가가 폭등했다.
  
  그는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을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북한 당국에 개인적으로 쌀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원하기만 한다면 수천 석이라도 배에 실어 보내겠다고 했다. 북은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남조선 매판자본가가 된 그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어느 날 그는 버려지고 가난한 노인들이 모여 사는 시설로 갔다. 실밥이 풀어진 낡은 코트 속에 무릎이 반질거리는 오래된 바지를 입은 그를 보고 다른 노인들은 그곳에 몸을 의탁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얼마 후 그 시설에 여러 대의 트럭이 들어왔다. 트럭마다 쌀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 후 소유자의 이름을 그 단체로 변경한 등기권리증이 왔다.
  
  그 무렵의 연말이었다. 찌그러진 오래된 중절모를 쓴 노인이 명동거리에서 사랑의 종을 치는 구세군 앞에 놓인 상자에 봉투 하나를 집어넣고 갔다. 그 봉투 속에는 일억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그 노인은 가지고 있던 수백억의 현금과 부동산들을 모두 한 공영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재단에 기부하고 죽었다. 자식들은 그 공영방송국과 소송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그 노인의 삶을 알아보았다. 그 노인에게 돈은 신(神)이었던 것 같다. 그 앞에 철저히 무릎을 꿇었다. 어느 날 그에게 죽음의 사신(死神)이 다가왔다. 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증상을 보이면서 그에게 저 세상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는 뒤늦게야 섬기던 신이 공허한 우상인 걸 알았다. 주변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재산을 보고 탐욕의 눈길이 번득였다. 그는 자신의 돈을 모두 불태워버리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죽기 전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기부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써달라는 간절한 희망이었다.
  
  그의 거액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재단에 법조인 출신의 사회 명사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측근들을 이사로 선임하고 최고급 호텔에서 파티를 열곤 했다. 노인의 돈은 엉뚱하게 재단에 연줄로 취직한 직원들의 월급으로 낭비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에서 그 허울 좋은 이사장에게 분노를 터뜨렸었다. 그 이사장은 총리 지명까지 받았던, 사회가 훌륭한 인물로 떠받드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면서 오갈 데 없는 거지 노인으로까지 오해받았던 죽은 강 회장을 떠올렸었다. 그는 시장바닥에 떨어진 배추 줄거리를 주워다가 청계천 판자 집에서 국을 끓여 먹고 살았었다. 부자가 됐어도 잘 먹고 잘 입은 적이 없었다. 부자 소리를 들었을 때 주변에서 국회의원이 되라고 해도 자신은 그런 주제가 되지 못한다고 사양했었다.
  
  나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실패를 한 적이 없이 사회의 지도자로 성공한 그 이사장과 홀로 무덤 속에 누워있는 고독한 그 강 회장을 비교해 본다. 자기 자신과 현세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자기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둘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부유하고 더 힘세고 더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죽은 강 회장이 바로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 2020-02-05, 10: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