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문제를 역사적으로 정리하여야 한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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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사람과 반대한 사람이다. 흔히 親朴, 非朴이라고 분류하는데 더 정확하게는 贊彈(찬탄), 反彈(반탄)이다. 서로 할 말이 많겠지만 이 문제를 덮고 앞으로 나아갈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문'을 내어놓아야 한다. 찬탄, 반탄 의원들이 치열한 토론을 하여 박근혜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1.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 보좌하지 못한 데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 특히 2016년 4월 총선 공천 과정의 독선에 대하여 사죄해야 한다.
  2. 비박계 중 찬탄 의원들은 역사적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 좌파와 싸운 대통령을 좌파와 손잡고 탄핵, 좌파정권의 등장에 도우미 역할을 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3. 박근혜 대통령의 功過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정리하면 功 7, 過 3 정도는 될 것이다.
  4. 문서화해야 한다. 앞으로도 박근혜에 대한 평가는 이 문서에 근거, 통일된 입장을 견지하여야 한다.
  5. 친박, 비박 소멸을 선언하고 언론이 그런 용어를 쓸 때는 항의해야 한다.
  6. 박근혜는 역사 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박정희와 불가분의 관계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는 적폐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다. 역사는 榮辱이다.
  7. 아래 등소평의 모택동 평가가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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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毛澤東도 살고 鄧小平도 살게 한 역사결의
   1981년 중국공산당의 '건국 이래 黨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決議'
   鄭淳台
  
   1981년 6월27일,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1期6中全會)는 「建國 이래 黨의 약간의 歷史문제에 관한 決議」(이하 歷史決議로 표기함)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歷史決議는 毛澤東(모택동)이 주도한 「文化大革命」(문화대혁명)의 極左路線(극좌노선)을 부정하고, 鄧小平(등소평) 체제를 확실한 이론적 기반 위에 올려 놓으면서 오늘의 중국을 經濟 제일주의의 길로 이끈 역사적 文獻(문헌)이다.
  
   8개 부문, 38개 항, 약 3만 字로 구성되어 있는 歷史決議의 실무적 작업은 中共黨 최고 이론가 胡喬木(호교목) 그룹이 맡았지만, 그 全文에는 20년에 걸친 권력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 鄧小平의 의지, 즉 그의 實用主義 정신이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다. 鄧小平은 1980년 3월부터 1981년 6월 사이에 아홉 차례에 걸쳐 「역사결의 基礎小組」에 문건의 기초와 수정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면서 세세한 부분에까지 간여했다.
  
   문제는 毛澤東이었다. 中國은 毛澤東의 呪術(주술)에서 깨어나 그의 神性(신성)과 극좌 이데올로기의 과잉상태를 약화시키지 않고서는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에 있어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歷史決議가 작성되던 무렵만 하더라도 毛澤東을 비판하는 데는 아직도 勇斷(용단)이 필요했다.
  
   毛澤東은 이미 1976년에 사망했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偶像化(우상화) 작업에 의해 여전히 중국 인민들의 마음속에 독특한 역사적 지위를 차지한 「創業皇帝」(창업황제)였다. 鄧小平은 그의 「歷史決議의 基礎에 대한 意見」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毛澤東 동지의 오류에 대해 度가 지나치게 써서는 안 됩니다. 度를 넘게 되면 毛澤東 동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黨과 우리나라의 체면에도 먹칠을 하게 됩니다.』
  
   鄧小平은 毛澤東을 부정하거나 기왕의 黨결의를 全面 무효화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를 보는 그의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毛澤東 동지의 功過(공과)에 대해 적절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고참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토지개혁 시기의 빈농, 중·하층 농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毛澤東 사상이란 깃발을 내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깃발을 내던지는 것은 사실상 우리 黨의 빛나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鄧小平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는 밑자락을 깔고 『毛澤東 동지가 만년에 이르러 사상에 일관성이 없고 어떤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기도 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았다.
  
   『대체로 1957년(전반기)까지 毛澤東 동지의 領導(영도)가 옳았으나 1957년 (여름의) 反右派(반우파) 투쟁 이후부터 誤謬(오류)가 점점 늘어났다.』
  
   그 오류의 핵심인 文革에 대해 鄧小平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문화대혁명」이 한 세대의 발전에 지장을 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 세대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無政府主義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범람하게 되었고, 사회기풍에 심각한 害(해)를 끼쳤습니다.』
  
   鄧小平은 「문화대혁명」 시기 중 「毛澤東 동지의 오류」와 「4인방의 도전」과 홍위병의 난동을 극복한 데 대해 중국공산당과 인민이 힘을 합쳐 「逆轉勝(역전승)한 기록」으로 평가했다.
  
   조선일보 북경특파원을 지낸 朴勝俊 기자가 오늘 쓴 칼럼에 나오는 대목이다.
  
   <93세에 세상을 뜬 덩샤오핑(鄧小平)은 1997년 2월19일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에 부인 줘린(卓琳)을 통해 유언을 남겼다. 줘린은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실로 편지를 보내 “이것이 덩샤오핑 동지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전했다. 부인이 전한 덩샤오핑의 유언은 이런 것이었다.
  
   “유체(遺體·시신) 고별의식 같은 것은 거행하지 마라, 영당(靈堂·빈소)도 차리지 마라, 유체는 의학연구를 위해 해부용으로 제공하고, 각막은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라, 화장한 뼛가루는 바다에 뿌려라.”
  
   중국은 전통적으로 매장(埋葬)이었으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화장(火葬)으로 통일됐다. “사고행위가 끝난 육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회주의 철학에 따른 것이었다. 베이징(北京)에서 세상을 떠나면 권력자이건 보통 인민들이건 예외없이 베이징 장안가 서쪽에 있는 팔보산(八寶山) 화장장에서 화장되어 거기에 있는 공묘(公廟)에 안장된다. 덩샤오핑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비행기에 실려 동중국해에 뿌려졌다.>
[ 2018-07-12, 12:39 ] 조회수 : 182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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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자빗     2018-07-14 오전 10:10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하나? 과거,조상들의 행적을 왜 들여다보나?

모두 아는바와같이 현실에 직면한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를 고민하는 현실적필요에 의해 유사한 역사적사례를 들여다보는것이다.

조갑제선생의 제의의 무게중심은
"박근혜의 역사적정리"에 있지 공과비율 7:3에 있지 않다고 본다.
그건 개인적으로 조금씩 다른게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박근혜의 공과 과의 비율, 다시말해 공이 아래"자유한국"님과
비슷하게 절반을 넘을수없다고 본다.

자유한국당이 내홍을 겪는 중심테마가 박근혜이니 어떤 방식이든 그녀를 정리하지않고는 자유한국당이 한발자욱도 나갈수없다는 절박한 필요에 부응해서 처방책또는 일의
진행순서를 제기하는것이 조갑제선생의 본문 제의의 주된 이유라고 본다.

박근혜를 감싸는 의미로 본문을 읽은사람이 있다면 난독증환자다.
   自由韓國     2018-07-13 오전 9:43
제 개인적으로 박근혜의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는 5.5 대 4.5인거 같습니다..공을 과보다 조금 높게 보기는 하지만 과가 상당히 많다고 봅니다.
   기본정석     2018-07-12 오후 10:11
먼저 박그네 탄핵시 그 많던 댓글 친구들 어디로갔나 궁금하다.
위장전입인줄 알았지만 박그네 초잘나자 하나같이 사라졌으니..ㅎㅎ
이제 박그네정리 역사적으로 하자 물론 이젠 때가됐다.
하지만 조갑제 선생의 공칠과삼이란 말은 미리 답안을
만들어 놓자는 얘긴데 찬성할수없다.
축구로 말하자면 4부리그 선수를 국가 월드컵대표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워 자멸한 꼴이다.셋트 플레이 상황에선 어김없이
순실이와 상의 하고선 비선은 없다고 침튀기며 날을 세웠다..
뭐하나 패스 한번 제대로 못한친구를 애국가 울려 퍼질때 누구보다
국가를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감싸선 안된다.
조갑제 선생님 논리 대로 가다간 또다시 보수는 난파한다.
그다음 어디 표류해서 상륙할 섬도없다.자멸하게된다.
시시비비는 냉정하게 가려야한다.
박그네 감상주의는 금물이다...
세월호때 그 날밤에라도 현장 방문해서 관계장관 긴급대책회의
라도 텐트에서 했어야했다.그런 생각도 못하는 수준미달의
박그네를 더이상 감싸서는 안된다.
냉혹하다고 할지라도 엄현한 현실이다.
박그네는 모택동이나 처어칠과 비교할수있는
인물이 절대로 못된다.
우리 모두 선거의 여왕이란 환상과 헛껍대기에
싸여있었다.냉정하게 인정하자.
우리 스스로 우리를 부시지 않는한 다시 세울수 없다.
역사의 오래된 진리다......
   루자빗     2018-07-12 오후 9:46
글을 읽어보니
모택통사후, 중공현대사에 모택통을 자리매김시키는데 등소평은 매우 현명하게
처신했군요. 저런면에 있어서 어쨋거나 중국은 큰나라이고 걸맞는 큰인물들이있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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