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銃聲: "이놈들이 날 쏜다, 이놈들이 날 쏜다."
全斗煥과 그의 時代(10)수경 사령관실에서 총성이 나더니 사잇문이 열리면서 하소곤(河小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 배를 움켜잡은 채 쓰러지면서 들어왔다. 『이놈들이 날 쏜다. 이놈들이 날 쏜다.』 河소장의 가슴에서 선지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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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이 날 쏜다. 이놈들이 날 쏜다.』

12·12사태 밤 8군 영내에 있는 연합사 지하벙커에는 위컴 연합사 사령관, 글라이스틴 대사, 브레드너 8군사령관 정치고문이 모여 있었다. 밤 9시를 조금 넘어 노재현(盧載鉉) 국방장관과 김종환(金鍾煥) 합참의장 및 유병현(柳炳賢) 부사령관이 여기로 왔다. 위컴 사령관은 10·26사건 당일 밤에 연합사가 취했던 것과 비슷한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가지휘소에 한국 내의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여 극동의 미 공군과 해군에 비상을 걸고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경고하게끔 요청했다.

柳부사령관은 이건영(李建榮) 3군사령관과 김학원 1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부대이동은 반드시 연합사령관의 허락을 받아 하도록 통보했다. 이 지하벙커에서 盧국방 등 한국군 수뇌부와 총리공관 및 국방부 사이에는 전화가 자주 오고갔다. 崔대통령과의 직접 통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글라이스턴 대사도 이 날 밤 崔대통령과 통화하려고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崔대통령은 이날 밤 접근루트와 통신망 부문에서 외부와 차단돼 있었다.

이날 연합사의 상황파악은 국군보안사의 정보차단 조치에 의해 늦어지고 있었다. 공수1여단이나 9사단의 1개 연대가 움직이고 나서 한참 뒤에야 보고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柳부사령관은 9사단의 관할지휘관인 李建榮 3군사령관에게 연합사령관의 허락 없이 병력이 움직이는 데 대하여 항의했으나 속수무책인 것은 李사령관이나 위컴이나 똑같았다.

자정 직전에 육본에 남아 있던 金在命 육본작전참모차장은 盧국방장관에게 국방부로 나와서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전화했다. 盧국방과 金鍾煥 합참의장은 국방부로 나갔다. 柳炳賢 부사령관은 자정을 넘어서 국방부로 나갔다. 이때 위컴 사령관은 『내 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柳부사령관이 위컴 사령관 차를 타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방부 쪽에서는 총성이 콩볶듯 들려왔다. 연합사 지하벙커에 있던 미군 수뇌부에서는 盧국방장관과 柳장관 등이 피격된 줄 알았다고 한다. 柳장군이 국방부 장관실로 올라간 뒤 공수제1여단병력이 총을 쏘면서 국방부로 쳐들어왔다.

이때 국방부 건물입구에 세워두었던, 위컴사령관 차를 따라온 柳장군 차가 총탄을 맞아 안테나가 부러졌다. 이 때문에 위컴 사령관을 태운 승용차가 피격된 것처럼 와전되기도 했었다. 새벽 1시쯤 공수1여단 병력이 국방부 건물로 돌입하기 직전 장관실에는 盧국방, 金합참의장, 柳炳賢부사령관 등이 앉아 있었다. 盧국방은 공수단 병력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지하실로 피신하였다. 이 날 밤 세 번째의 피신이었다. 金, 柳 두 대장만 앉아 있었다. 공수부대원이 M16총을 난사하면서 장관실로 돌입했을 때 柳장군은 의자에 앉은 채 『잘 생겼군! 자네 나이가 몇 살인가?』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싸우지 말고 말로 해!』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공수1여단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 張사령관은 최후의 방어전을 시도했다. 수경사 본부중대, 헌병중대, 취사병, 행정병까지 다 끌어 모으니 약 200여 명이었다. 탱크는 다섯 대였다. 이들을 본부 주변에 배치시켰다. 탱크는 퇴계로 아스토리아 호텔 앞에 가 있게 했다. 그때 비서실장이 뛰어왔다. 전차부대 대대장이 합수본부 측에 포섭돼 소대장들에게 『사령관을 사살하라』고 전차에 붙은 확성기로 지시하고 있으니 피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는데 張사령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盧국방장관이었다.

『장태완이 너는 왜 자꾸 싸우려고 하나!』
『장관님 무슨 말씀입니까? 반란군인데...』
『싸우지 말고 말로 해!』
『저쪽에서 쳐들어오는데 말로 됩니까?』
『그래도 쏘지 마! 말로 해! 그만 상황 끝내!』
『정말입니까? 장관님 제가 복명 복창하겠습니다. 상황 끝!』
 
張사령관은 金基宅 참모장에게 참모들을 집합시키도록 했다. 그들에게 張사령관은 『이제 상황 끝이다. 나가 있는 병력을 철수시키고 실탄을 회수하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했다.

盧載鉉 국방장관이 국방부 지하계단 아래에 엎드려 있다가 공수1여단 병력에 의해 발견된 것은 새벽4시쯤이었다. 그 직후에 盧국방이 張사령관에게 전화를 했는지, 피신 중에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육군참모총장이 끌려간 상황에서 그가 군의 지휘권을 장악, 초장에 단호하게 대처했더라면 全斗煥 측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盧국방은 세 번이나 피신을 거듭하느라고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崔대통령한테도 나타나지 않아 대치상태를 오래 끌게 했다.

12·12사태 전에 全斗煥 본부장은 盧장관에게 鄭총장을 조사할 필요성을 두 번 건의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全씨는 지난해 말 국회증언 때 밝힌 바 있다. 全본부장은, 鄭계엄사령관보다는 盧국방과 더 친근하였고 중요한 보고는 가끔 鄭사령관을 우회하여 盧국방에게만 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盧載鉉 국방장관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는 합수본부장을 교체하자는 건의를, 합수본부장으로부터는 계엄사령관을 조사하자는 건의를 받고 있으면서 어느 쪽으로도 확실한 결심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가 12·12사태를 맞았던 셈이다.

『이놈들이 날 쏜다!』

새벽4시쯤 합수본부 측에서 張사령관 앞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MBC를 지키고 있는 수경사 병력을 합수본부 편의 출동병력으로 바꾸겠다는 통보였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놓는데, 옆방, 즉 사령관실에서 총성이 나더니 사잇문이 열리면서 하소곤(河小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 배를 움켜잡은 채 쓰러지면서 들어왔다. 『이놈들이 날 쏜다. 이놈들이 날 쏜다.』 河소장의 가슴에서 선지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張사령관은 고함을 치면서 옆방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에 있던 윤성민(尹誠敏) 차장 등 10여명의 육본 장성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수경사 헌병들은 M16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申允熙) 중령 등(육본헌병감 역임)은 全斗煥 장군으로부터 전화지시를 받고 부하들이 총구를 거꾸로 돌리게 했던 것이다.

헌병들이 돌입하기 전에 河소장은 일어서서 張사령관이 있는 접견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한 헌병장교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서 있던 河소장이 권총을 빼는 것으로 오인하여 쏜 것이었다. 河소장은 허파에 총알을 맞았는데 긴급수술로 생명을 건졌다. 수경사에 있던 육본 측 지휘부 장성들을 몽땅 체포하는 데는 張수경사령관의 세 직속 부하-이진백(李鎭百)인사참모, 金진선 상황실장(육사19기· 육본인사참모부장 거쳐 대장 역임), 申부단장이 손발을 맞추었다. 金진선 중령에게는 盧泰愚 소장이 전화를 걸어 지시를 한 뒤 全장군에게 바꾸어주어 재차 다짐을 받도록 하였다. 李대령은 본부대대의 병력을 동원, 헌병단의 작전을 지원하게 하였다고 한다. 수경사의 함락으로 12·12사태는 막을 내렸다.

육군본부측이 패배한 3대 이유는
①군 수뇌부의 명령이 육사장교단에 먹히지 않았고
②지휘부에서 목숨을 거는 사람이 적었으며
③鄭昇和총장에 대한 의구심이 과감한 진압작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새 육참총장에 이희성(李熺性)

특전사, 국방부, 수경사는 차례로 유혈이 낭자한 하극상의 참극을 맛보면서 全斗煥 장군 편에 넘어갔다. 하극상의 세 주인공 최세창(崔世昌), 박희도(朴熙道), 신윤희(申允熙)에게 직속 상관을 제압하도록 직접 지시한 이는 全斗煥 본부장이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수모는 직속부하로부터 당하는 것이다. 全장군은 그런 수모를 鄭昇和·鄭柄宙·河小坤·張泰玩 등 네 사람에게 주었다. 鄭총장은 보안사에서 물고문을 당했고 총상을 입은 鄭柄宙씨 등은 강제 전역 당한 뒤 보안사의 노골적인 감시 하에서 생활해야 했다. 張泰玩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역모를 했다고 오해하여 食飮을 전폐한 채 버티다가 넉 달만에 타계했다. 張씨의 서울대학생 아들은 그 1년 뒤 경북 칠곡군의 그 할아버지 묘소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張씨도 홧병으로 심장병을 얻어 미국에 건너가 대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13일 새벽 4시10분, 盧載鉉 국방장관을 태운 승용차가 보안사에 도착했다. 全본부장은 30여분간 盧국방과 요담했다. 崔대통령한테 갈 때 全장군은 장관차에 타게 되었다. 합수본부장 부관인 孫杉秀 중위는 앞자리에 있던 장관부관을 내리게 하고 자신이 타려고 했다. 해병대 장교인 장관 부관이 완강히 거절했다. 두 부관이 실랑이를 벌이니까 全본부장이 孫중위에게 『뒷차로 오라!』고 지시했다.

盧장관과 全본부장을 태운 승용차는 총리공관으로 들어갔다. 李熺性 중앙정보부장 서리는 12월12일 밤에 남산 정보부장실에서 육본, 합수본부, 수경사, 30경비단 측과 전화하느라고 바빴다. 全斗煥, 문홍구(文洪球), 張世東씨 등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유혈충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설득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李정보부장서리는 13일 새벽 2시33분에 보안사에 들러 全斗煥 본부장과 요담한 뒤 3시15분에 나갔다. 李熺性 정보부장 서리는 13일 새벽 5시반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盧載鉉국방장관이 鄭총장 연행 재가를 崔圭夏대통령으로부터 받을 때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盧국방은 崔대통령에게 후임 총장으로 李중장을 추천, 재가를 받아 나오면서 李중장에게 알려주었다.
崔대통령은 장성들을 잘 알지 못했으나 중앙정보부장 서리로서 자주 보고하러 들어오는 李熺性 중장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崔대통령이 마침내 사인을 한 鄭총장 연행건의 서류가 든 누런 봉투를 들고 나온 全본부장은 승용차에 올랐다. 차가 보안사로 향해 달리고 있는데 삼청동 길의 양쪽에는 미국 정보기관원으로 보이는 미국인 몇 명이 바바리 코트 차림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崔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뒤에도 盧국방은 5시45분에 보안사에 다시 들러 全본부장 등과 면담한 뒤 6시32분에 나갔다.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 李熺性 대장도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보안사에 들렀다가 5시42분에 나갔다. 이미 힘의 무게 중심은 합수본부로 옮겨 와 있었던 것이다.

이날 밤에 경복궁 30경비단의 全斗煥군 지휘부에서 보안사 상황실로 지시한 지침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1.대통령에 의한 안전조치. 2.대통령 명령을 처리 중 충돌이라고 미 측에 해명. 3.육군본부 동요 없도록 설득. 4.국방부에서 사건전모 발표.」
즉, 합수본부 측에 의한 비합법적 조치를 대통령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 날 밤 崔대통령은 10·26밤보다는 훨씬 줏대 있게 행동하였다. 합수본부 측에 영합한 경호실 병력에 의하여 외부와 차단된 속에서 全斗煥측 장성들의 끈질긴 간청을 받으면서도 『국방부 장관을 데려 오라』는 고집을 관철시켰다. 盧국방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崔대통령으로서도 이를 추인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언론의 난
[ 2016-06-28, 23:24 ] 조회수 : 28902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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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jh     2017-06-02 오후 8:06
지저분하고 덜 떨어진 것들이 뒤에서 남을 헐뜯는 것들이다. 한가지 약점을 찾아 물고 뜯는....촟불 들고, 광우병 타령하고 세월로 타령 하던 것들....현실적인 통치자을 쓰레기라고 만들어 놓고...또 세월이 흘러 멀쩡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북조선 노동당 당원 같은 자를 뽑아 놓고....이 나라 족속들이 원래 그런가!!!
   멸공북진통일     2017-04-11 오후 10:56
김재규 동조범 정승화 체포 않했으면,,,김재규+정승화의 독재가 되어 대한민국 암살범을 대통령으로 할뻔했어...뇌없는 빨갱이들은 이런긴 이야기 읽으면 내용파악을 못하고, 전두환 나쁜놈으로 읽지...
   유신     2016-07-01 오전 2:15
온고지신이라고 과거를 되돌아보며
현재를 고쳐간다지만
이 구닥달이 이야기를 재탕하는 조기자의 저의가 뭐야?
어쩌자는 얘기?
   조영환     2016-06-30 오후 12:26
대한남아, 유신한국, 모두 대한민국을 닉네임에 팔구나. 하도 고첩이 많아서, 대한민국에 애국과 반역, 신의와 배반, 쿠데타와 국가수호가 뒤집어진 판단이 횡횡한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애국적 닉네임이 좌빨 알바 짓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 자칭 민주화세력이라는 반역폭동세력이 번성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모든 것이 가치전도되고, 모든 진위가 뒤집어졌는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인들 뒤집어지지 않겠나? 대한민국이 엎어지면, 이미 정신이 뒤집어진 국민의 책임일 것이다.

"12. 12 사건은 쿠데타도, 군사반란도 아니다(http://www.nabuco.org/news/article.html?no=5293)"라는 글은 12.12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정확한 자료일 수도 있다. 김대중-김영삼 추종세력의 역사왜곡은 상식과 진실을 너무도 심각하게 왜곡해서, 오늘날 박근혜 정권에서도 보훈처장이 반역도처럼 언론에 의해 매도되고 있다. 전두환 장군파를 '김재규 일당의 쿠데타 진압자'로 평가해서 감사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국가기강은 반역세력에 시달리고 한국인의 가치관은 정신질환에 시달릴 것이다.

박정희 암살을 호평하는 쿠데타 세력은 김재규를 미화하는 좌익세력이다. 그 결과가 선명하게 지금 세월의 심판을 받아 지금 누가 대한민국에 배반세력인지 드러나고 있다. 전두환은 구국의 영웅으로 재평가되고, 김재규를 숭배하는 김대중세력 등 좌익세력은 지금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세월의 심판은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민중보다는 역사가 더 무서운 것이다. 5.18광주폭동이 민주화로 끝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친북좌익정권의 이른 등장을 15년 정도 지연시킨 전두환 장군의 공로다.

이제 광주사태 30년이 되어가면서,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전체주의선동세력으로 규정될 수 있는 김대중 추종세력의 기만과 악덕이 만방에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세력이 미워하는 전두환-노태우세력이 애국세력으로 굳히게 되는 소리 없는 역사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지지세력 對 '김재규-김대중-노무현' 지지세력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전두환 장군파의 김재규 추종세력 진압을 '쿠데타'로 볼 것인가? 아니면 김재규와 그 비호세력을 쿠데타세력으로 볼 것인가는 역사의 엄중한 심판 하에 있다. 역사는 숭고하다.
   대한남아     2016-06-30 오전 11:58
12.12 쿠데타는 5.16과 달리 명분도 없고 오로지 전두환 일당의 권력욕에 의한 유혈 쿠데타였다.그놈들이 사살하고 처벌한 정승화 등 많은 장성과 장병들은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아야한다.성공한 쿠데타였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논리는 결국 법이 힘에 굴복해야 한다는 비겁한 논리다.전두환 노태우가 경제안정을 취한 조치는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었지만 너무나 정통성없는 정권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좌익정권이 들어서는 역사적 비극이 탄생한 것이다.
   조영환     2016-06-30 오전 11:22
밑에 귀신한국씨, 조리 있게 대답은 못하고 무슨 '분탕' 운운하노? 내 말에 궤변을 찾아서 나를 후려쳐야지. 나보고 분탕이라는 매도하는 말 한 마디로, 당신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김대중식 사기꾼 안 되겠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박정희가 죽은 것은 애석하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잘된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장성들이 들고 일으나서 회의가 개판이 되는 사태까지 발생시킨 정승화의 발언에서 그의 배반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바람. 김재규와 정승화의 배반부터 따지고, 그 다음 배반의 연쇄반응을 따지는 게 옳지 않는가? 귀신한국씨, 고민하고 말하길...
   有神韓國     2016-06-30 오전 10:40
아 조영환 씨네
그동안 궤변으로 분탕질을 했던
그사람이네
   고호     2016-06-30 오전 5:28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 군수뇌부엔 똥별이 많았다. 이런 하극상 하나 진압 못하는데 북괴의 돌발 남침을 저지할수 있겠나? 6.25 직전 계엄해제,전장병 휴가,육군회관 파티후
빨갱이 꼬임에 국일관 2차로 새벽 2시까지 퍼 마시고 6.25 새벽에 골아떨어진 군 수뇌부가 아니더냐?
   조영환     2016-06-29 오후 3:56
아래에 부분적 사고를 하는 귀신한국씨에게 답한다. 김재규의 박정희 총격살인은 하극상이 아닌가? 김재규의 살인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다른 배반을 말하지 마라. 박정희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총살당하는 배반을 당해 마땅한가? 김재규를 비호한 세력은 하극상 세력이 아닌가? 암살자의 편에 서는가, 아니면 박정희의 편에 서는가에 따라, 배반과 하극상의 판단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난 지금 박정희와 전두환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김재규와 그 일당을 하극상 주범들로 본다. 입장구속성을 외면하고 애써 중립적이거나 입장초월적인 척하지 마라. 난 박정희-전두환 편이고 김재규-정승화 반대편이다.

나라면, 전두환과 똑같은 용단으로 대통령을 저격하여 쿠데타를 기도한 김재규와 그를 비호한 일부 군부세력의 쿠데타를 진압했을 것이다. 내가 젊은 날 전두환을 독재자로 비난한 것을 늘 사죄한다. 김재규 일당을 처단한 전두환의 공로는 헌법을 수호하고 배반자를 처단하고 국민의 윤리를 바로 세운 것이다. 정병주가 박희도와 같은 정신과 신의와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면, 그도 심판되어 마땅하다. 김재규-정승화 일당의 쿠데타를 신속하게 진압하지 못한 군부세력도 (지금 상태의) 나에게 당했을 것이다. 내가 정병주라도 당시에 김재규-정승화 응징자들로부터 맞아 죽어 마땅한 짓을 한 거지.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암살한 치떨리는 배반과 살인을 자행한 김재규 일당에게 조금이라도 비호적인 정치세력이나 군부세력을 처단했어야 옳다고 믿는다. 전두환세력만이 '암살을 통한 쿠데타 배반세력'을 진압하여, 대한민국을 지키지 않았는가? 전두환을 마치 쿠데타 주모자로 보는 자들의 한계는 김재규의 살인과 배반을 까마득하게 망각한 부분적 사고방식을 가진 체질적 배반자들이 아닌가? 밑에 귀신한국씨, 당신이 박정희라면 누가 배반자라고 하겠어? "하극상 절대로 안 된다"는 당신의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 하는지 한번 설명해봐.
   有神韓國     2016-06-29 오후 3:33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하극상은 하면 안 된다
정승화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면 몰라도 ... 이건 아니다
박희도 장세창 등 당시 특전 여단장들은 정병주사령관이 다른곳에 있는자 들을
밑에다 데레다 놓은 부하였다
정병주 사령관은 이점에 가장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조영환님 만약 님이 정병주 장군이라면..
   조영환     2016-06-28 오후 11:59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배반자이고 살인자인 김재규를 우물쭈물 비호하던 정승화 일당을 단방에 무력으로 제압한 신의 있는 전두환 장군 외 애국군인들의 민주주의 수호행위는 마땅히 호평되어야 하고 청사에 길이 빛날 공적으로 칭송될 것이다. 김재규를 단호하게 처단하지 못한 정승화는 결과적으로 박정희를 배반한 자로 취급받아 마땅할 것이다. 자신을 키워준 박정희가 죽자 기회주의적 처신을 보이지 않은 전두환은 정승화와는 달리 신의 있는 군인이었다.

날이 갈수록 전두환은 중우정치에 싫증난 애국세력의 호평을 받을 것이고, 정승화+김대중+김영삼+노무현 추종세력은 민주의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위선적 망국노들로 제대로 평가절하될 날이 올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신윤희 같은 애국적 정치군인들이 없었다면, 한국도 민변, 전교조, 언론노조와 같은 민주팔이 좌익선동세력에 의해, 월남화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진짜 배반세력은 전두환에게 대적하고 그를 증오하는 짝퉁 민주화세력이다. 전체주의의 측면에서, 김대중(추종세력)은 박정희(추종세력)보다 김일성에게 훨씬 더 가깝다.

지금 대한민국은 망국적 국회, 언론, 법원, 학교를 쓸어버릴 제2의 전두환을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재규, 정승화,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은 모두 배반자들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신윤희 등은 그 배반자들을 심판한 신실한 애국세력이다. 배반과 난동 세력을 진압한 전두환 장군을 쿠데타 주동자로 규정하는 한, 대한민국은 배반과 반역과 반동세력의 천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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