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밀어 버리시오”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37)/ 예기치 않은 저항을 받은 혁명군 장교들은 박정희를 주시하고 있었고, 박정희는 그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심어 주는 행동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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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에서
  
  해병여단의 선두인 제2중대가 한강 인도교로 진입했을 때 트럭 두 대를 여덟 팔 자로 배치한 헌병들의 제지를 받는다. 중대장 李俊燮(이준섭) 대위는 참모총장도 이번 혁명을 지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헌병들이 총장의 명령을 받아 자신들을 환영하러 나온 줄 알고 헌병중대장 김석률 중대장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런데 김 대위는 “우리는 총장님의 명령에 따라 어떤 부대의 통과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보고를 전해들은 오정근 대대장은 김윤근 여단장에게 뛰어갔다. 오 중령도 참모총장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따지듯 말했다. 김윤근은 박정희 소장한테 들은 대로 설명해 준 뒤 “해병대만 가지고 혁명을 강행하기로 했으니 헌병이 계속해서 막으면 밀어 버리시오”라고 명령했다. 오정근 중령은 “알았습니다. 밀어 버리겠습니다” 하고 시원하게 복창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오정근 중령은 원래부터 해병대 단독 거사를 꾀했던 이였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주저할 이유가 적었다. 그 뒤 앞쪽에서 총성이 들려 왔고 곧 조용해지더니 오정근 중령이 무전기로 보고했다.
  
  “헌병을 쫓아 버리고 지금 저지선을 통과해서 인도교로 들어갑니다.”
  
  한강 인도교 남단에 설치한 트럭 바리케이드를 넘는 총격전에서 헌병 3명, 이준섭 대위 등 해병 6명이 부상했다. 해병대 후미 쪽에 붙어 있던 김윤근 여단장이 탄 지프도 인도교로 들어갔다. 바리케이드로 놓아 둔 트럭은 엔진이 꺼져 있어 치우는 데 시간이 걸릴 듯했다. 김윤근 여단장은 지프에서 내렸다. 중지도 쪽에서 또 총성이 들렸다. 오정근 중령이 달려왔다.
  
  “중지도에 제2 저지선이 있고 헌병이 저항합니다. 혹시 이 다리에 폭파 장치를 해두었을지 모르니 병력을 일단 노량진 쪽으로 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폭파 장치가 그리 쉽게 되겠소. 걱정 말고 밀어 붙이시오. 그런데 저 저지선의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에 거슬려요. 저것부터 깨부숴 버려요.”
  
  오정근 중령은 중지도 지점에 설치된 제2 저지선의 헤드라이트를 겨냥해서 일제 사격을 하게 했다. 불빛이 꺼지자 제2 저지선도 돌파되었다. 김윤근 준장은 한강 인도교의 반을 지나 이제는 용산 쪽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서서히 움직이던 해병대 차량 종대는 다시 정지했다. 오정근 중령이 다시 달려왔다.
  
  “큰일입니다. 또 다른 저지선이 있습니다.”
  
  “큰일은 무슨 큰일이오. 저지선이 있으면 돌파해 버려야지.”
  
  그러나 김윤근도 앞으로 저지선을 몇 개나 더 돌파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날은 이미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아직 한강 다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으니…. 실패라면 살아서 욕을 보느니 자결해 버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니 아내와 세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트럭에 탄 장병들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다. 내가 살아 있어야 아무것도 모르고 출동한 장병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증언해 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때 박정희도 차에서 내려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있었다. 그를 호위하던 장교들 가운데 한웅진 준장과 이석제 중령의 증언을 통해서 상황을 복원해본다.
  
  박정희 일행은 중지도, 즉 한강 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나 북쪽으로 걸어갔다. 북단에는 제3의 저지선이 있었다. 트럭 4대를 동원하여 차단벽을 만든 것이다. 트럭들 좌우측에서 헌병들이 매복하여 총을 쏘고 있었다. 해병들은 상체를 숙이고 뛰어가 저지선 앞에서 엎드려 응사하고 있었다. 헌병들의 병력이 얼마인지를 알 수 없었으니 불안감은 더했다.
  
  박정희 소장이 상체를 숙이지도 않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카빈을 든 이석제 중령이 따랐다. 그는 6·25 동란 때 중대장으로 전투한 경험이 생각났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 총알이 사람을 피하지,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는 經驗則(경험칙)이 있었다. 전쟁터에서 그런 믿음에 따라 행동하니 부하들이 용감한 중대장이라고 존경해마지 않았다. 총알을 고개 숙여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이석제와 박정희가 꼿꼿하게 걸어가는데 총알이 옆으로 쌩쌩거리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윤근 준장이 박정희에게 뛰어왔다.
  
  “또 다른 저지선이 있습니다. 앞으로 저지선이 몇 개나 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새기 전에 목표 점령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대로 밀어 버리시오.”
  
  박정희의 침착하고 단호한 태도에 김윤근 준장도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해병대가 작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 물었다. 李錫濟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각하, 일이 끝내 안 되면 각하 바로 옆 말뚝은 제 것입니다.”
  
  박정희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하나뿐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죽어서 쓰나.”
  
  잠시 후 박정희는 “이 중령” 하고 불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제2안대로 합시다.”
  
  박정희가 생각한 제2안이란 출동한 부대로써 일정한 지역을 점거하고는 정부와 담판한다는 것이었다. 한웅진은 “박 장군은 총격전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난간을 잡고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보더니 일본말로 ‘주사위는 던져졌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한웅진은 “형님, 그때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가족들 얼굴이 강물에 떠오르더군”이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이 순간 박정희의 결연한 태도가 흔들리는 장교들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는 증언은 많다. 예기치 않은 저항을 받은 혁명군 장교들 모두가 박정희를 주시하고 있었고, 박정희는 그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심어 주는 행동을 보였다. 결정적 순간의 이런 결정적 행동이 그 뒤 18년간 단 한 번도 정면도전을 받지 않은 그의 지도력과 권위의 원천이 되었다.
  
  張勉 총리의 수도원行
  
  한강 인도교를 저지하던 트럭 바리케이드가 최종적으로 뚫린 것은 5월16일 오전 4시15분경이었다. 카빈으로만 무장한 헌병 50명을 지휘하고 있던 김석률 대위는 서울방첩대에 위치하고 있던 장도영 총장에게 수시로 보고를 올렸다. 장도영은 ‘가능한 한 渡江(도강)을 저지할 것이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한강의 북쪽 언덕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김 대위는 한강인도교 북단, 즉 용산 쪽의 저지선에서 철수한 뒤 장도영에게 “해병대에 이어 공수단도 다리를 건너 육본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장도영은 이때 비로소 張勉(장면) 총리와 尹潽善(윤보선)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피신을 권한다. 장면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맨 처음 장도영의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2시쯤이었다. 장면은 반도호텔 809호실을 숙소로 쓰고 있었다. 옆방인 808호실은 경호실이었다. 경호대장 趙仁元(조인원) 경감이 총리를 깨워 장도영의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30사단에서 장난을 치려는 것을 막아 놓았고 해병대와 공수부대를 한강에서 저지시키고 있다’는 요지의 보고였다고 한다. 장도영은 “아무 염려 마시고 그저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알고 계십시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한 주일 전에 내가 말한 그것 아닌가.”
  
  “아니, 별것 아닙니다. 염려 마시고 제게 맡겨두십시오.”
  
  “염려 말라는 말만 하지 말고 내게 와줘. 와서 직접 자세히 보고해. 매그루더 사령관에게도 보고했나?”
  
  “예, 했습니다.”
  
  “그래, 좀 왔다 가게.”
  
  “예, 가겠습니다.”
  
  장도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방첩부대에서 장도영의 지휘를 지켜보고 있던 현석호 국방장관은 군의 작전에 간여할 입장이 아니었으나 총장이 영 못미더웠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에게 보고 드렸느냐’고 물으니 장 총장은 ‘아직 안 드렸다’고 해서 ‘즉각 전화를 걸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매그루더 사령관에겐 자신이 직접 통보하고 싶었으나 영어가 서툴러 장도영에게 시켰다. 옆에서 들으니 매그루더한테도 ‘대수롭지 않은 소요’ 정도로 보고하는 듯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새벽 4시쯤 곤한 잠 속에서 일어났다. 이재항 비서실장이 깨운 것이다. 대통령이 전화기를 드니 장도영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각하, 지금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헌병을 동원하여 한강 다리에서 저지선을 쳐보았으나 중과부적으로 저지선이 무너지고 이미 서울로 들어왔는데 쉽게 진압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부 인사들이 은신하고 있는 중이오니 대통령 각하께서도 신변의 안전을 배려해 주십시오.”
  
  윤보선 대통령은 老母(노모)와 처자들만 일단 일가집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청와대를 지키기로 했다.
  
  현석호 국방장관은 서울방첩대를 나와서 소공로를 건너 반도호텔로 갔다. 8층 총리방에서는 이태희 검찰총장과 조인원 경호대장 등 몇 사람들이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 현 장관이로구먼.”
  
  장면 총리는 반가운 표정이었다.
  
  “장 박사님, 사태가 여의치 않으니 일단 피하셔야겠습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이태희 총장이 “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고 나섰다. 한강 쪽에서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호텔 아래로 내려가 이태희 총장의 승용차를 타려고 했는데 운전사가 보이지 않았다. 총성에 놀라 달아난 듯했다. 한 경호원이 길 건너편에 있는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철문을 두드렸다. 아무 응답이 없었다. 이때 망을 보던 경호원이 “군인들이 온다”고 소리쳤다. 장면 총리 부부는 서둘러 전용차에 몸을 실었다. 이때 총리의 안경이 떨어져 깨졌다. 차는 청진동 뒷골목으로 해서 중학동 한국일보 건너편의 미국 대사관 직원 사택지 앞에 머물렀다. 장면은 문을 두드렸다.
  
  <어떤 엄명이 내려졌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길에서 방황할 수도 없어 일단 안전한 곳에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몸을 피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작정은 없었다. 잠시 피신해 정세를 보기 위해서 아무도 짐작 못할 혜화동의 수도원으로 가보았다. 內子(내자)가 전부터 친교가 있던 원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허락을 받아 방 하나를 얻었다>
  
  목격자에 의하면 혜화동 로터리(회고록)에 있던 카르멜 수녀원으로 들어온 장면 총리 부부는 몹시 지친 표정이었다. 안경을 끼지 않은 얼굴이었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보였으리라. 원장 수녀인 마리 클레(프랑스인)가 황급히 총리 부부를 부속 건물 내 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장면 총리는 기도를 드리더라고 한다.
  
  장도영 총장이 이날 밤의 사태 발전을 장면 총리에게 정직하게 보고했더라면 장면 총리는 미 8군 영내나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여 신변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쿠데타軍에 대한 진압을 지휘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장도영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고했다가, 또 장면 총리에게 ‘가서 보고하겠다’고 해놓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총리를 기다리게 해두었다가 결국 총리가 경황없이 수녀원으로 피신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면 총리가 한국일보 건너편 미국 대사관 사택지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미국 CIA 서울지부장 피어 드 실버의 집이 있었다. 장면 총리는 2년 전 부통령 시절부터 자주 이 집에 초청을 받아 와서 식사를 하고 가곤 했다. 그러나 이 운명의 새벽, 절친한 사이인 실버와 장면의 길은 서로 엇갈렸다.
  
  실버는 새벽에 미국 대사관의 CIA 당직요원으로부터 ‘한강에서 총성이 들린다’는 보고를 받고 집을 나와서 대사관으로 달렸다. 이미 무장한 쿠데타軍이 거리를 통제하면서 신분을 확인하고 있었다. 광화문 거리엔 기관총이 설치되고 있었다. 실버는 세단을 몰고 있었는데 여러 번 검문을 받았다. 그 사이 장면 총리가 사택지의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실버는 회고록에서 ‘그는 정문이 닫힌 뒤에 도착했으며 아무렇게나 옷을 주워 입은 모습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썼다.
  
  
[ 2011-03-08, 11: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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