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조사소 자료: 북한의 테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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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 50년의 리스트
  
  요약
  
   이 보고서는 1950년 이후 한국, 미국 및 일본에 대하여 북한이 저지른 보도된 도발행위를 발생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정기적으로 갱신된다. 의회조사서비스의 북한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동아시아' 부문 Guide to CRS Products를 참조 바람.
  
  1950-2000 북한 도발 연표
  
  요약
  
   이 연표는 북한이 195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저지른 도발 행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가장 극심한 도발 단계는 1960년대 후반으로 이 시기에 북한은 일련의 제한된 무력 행위를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며 저질렀다. 무장 간첩의 남한 침투는 가장 빈번한 도발 행위였으며, 그 다음으로 납치, 테러행위(실행 및 위협) 등이 있었다. 1954년부터 1992년 사이에, 북한은 총 3,693명의 무장 간첩을 남한에 침투시킨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1968년 한해에만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테러 행위는 그 수에 있어서 훨씬 적지만, 남북한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잊혀진' 한국 전쟁(1950-1953)으로 알려진 북한의 남침을 제외하고, 북한의 주요 테러 행위로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기도, 1983년 미얀마 랑군 폭파 사건의 전두환 대통령 살해 기도, 1987년 대한항공 707 여객기 공중 폭파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도발행위는 무력 침략, 납치, 남한의 수도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협박 등의 형태로 2000년 3월까지 근년에 와서도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서언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안보 이익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1950년이래 실시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제재 측면에서도 의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현재, 의회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북한이 테러 행위에 개입된 국가로 간주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2000년 4월경으로 예상되는 북한 고위 관리의 공식 회담을 위한 워신턴 방문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제임스 루빈 국무성 대변인은 2000년 2월 10일 이렇게 언급하였다. '북한과 미국이 대테러 방안에 관한 회담을 재개하고,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추가 조치를 북한이 취한다면, 북한은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는 국가이다.' 동시에, 루빈 대변인은 '반복적인 테러 행위의 국가 지원이 없을 것이며 그러한 [테러] 집단과의 연계 관계가 없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증거나 조치'에 대한 북한의 보장을 받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마이클 쉬헌(Michael Sheehan) 국무성 대테러 조정관은 2000년 4월말 발간 예정인 올해의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 약간의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브루킹스 연구소 회의 참석자들에게 말하였으나,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를 거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연표는 1950년 6월부터 2000년 3월까지 북한이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하여 저지른 도발 행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서 '도발'이라는 용어는 무력 침입, 국경 위반, 무력 파괴 분자 및 간첩 침입, 항공기(선박) 납치, 요인 납치, 테러행위(암살, 폭파, 언론인 및 기관에 대한 위협/협박 등을 포함), 남한 정부 전복을 위한 선동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북한의 마약 거래 개입 및 '정치적 살인 및 기타 사법 관할 외의 살인'에 관한 연루 보도는 이 보고서 범위에서 제외된다. 이 연표 전 기간을 통하여, 북한은 언제나 도발행위를 부인하는 성명을 내고, 남한이 조작한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북한인들은 미국 관리와의 회합에서 미국이 평양을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국가 명단에서 제외시킬 것을 촉구하여 왔다. 2000년 3월,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로 지정한 것을 두고 '테러리즘에 반대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조롱이며 모욕'이라고 표현하였다. 1993년 4월, 평양은 '테러리즘의 고무와 지원'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비난하였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성명이 1983년, 1996년 2월, 1998년 8월, 2000년 2월에도 발표된 바 있다.
  
   이 연표는 한국의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 타임즈, 동아일보, 연합 뉴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조선 중앙 통신(KCNA), 일본 아사히 신문 등을 참고하였다.
  
  1950-2000 북한 도발 연표
  
  1950. 6 -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한에 대한 전면전을 개시함.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이 '침략 행위'라고 규정한 이 전쟁은 '사전 경고와 도발 없이 사전에 준비된 면밀한 계획에 따라서 개시'되었다. 1953년 7월에 휴전으로 끝난 한국전쟁은 38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국은 33,652명이 전사하고 103,284명 부상, 8,177명이 행방불명되었다. 남한은 전사 58,127명, 부상 175,743명의 희생자를 냈다. 북한과 중국은 각각 523,000명과 945,000명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남북한은 각각 1백 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1958. 2 - 북한 공작원이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남한 항공기를 평양으로 납치함. 미국인 조종사 1명, 미국인 승객 1명, 서독인 승객 2명, 기타 승객 24명이 3월초에 석방되었으나, 나머지 승객 8명은 북에 억류되었음.
  
  1965. 4 - 2기의 북한 미그 제트 전투기가 북한 동해 연안에서 50마일 떨어진 일본해 상공에서 미국 RB-47 정찰기를 '공격하고 피해를 입힘.'
  
  1968. 1 - 한국의 병사와 민간인으로 위장한 31명의 특공대 팀이 박정희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인 청와대의 지근 거리까지 침입하였다가 한국 경찰에 의해 저지됨. 29명의 특공대원이 사살되었고 1명은 자살하였다. 생포된 1명은 자신들의 임무는 박 대통령과 기타 정부 고위 관리들을 살해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음. 한국 경찰관 2명과 민간인 5명이 이들 침입자에 의해 살해됨.
  
  1968. 1 - 박 대통령에 대한 특공대 살해 기도가 있은 지 이틀 후, 북한은 북한이 주장하는 12마일 수역 밖의 원산에서 떨어진 공해상에서 83명의 장교와 사병이 타고 있던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함. 승무원은 1968년 12월에 결국 석방되었으나, 선박은 반환되지 않음.
  
  1968. 10 - 130명의 해상 특공대원들이 남한의 동해안에 위치한 울진 삼척 지구에 침입함. 110명은 사살되었고, 7명은 생포되었으며, 13명은 도주하였음.
  
  1969. 3 - 북한 간첩 6명이 침투하여 강원도 주문진 근방 해안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남한 경찰 1명을 살해함.
  
  1969. 4 - 북한 미그 제트 전투기가 북한 해안에서 90마일쯤 떨어진 일본해 상공에서 비무장한 미국 EC-121 정찰기를 격추시켜 31명의 생명을 앗아감.
  
  1969. 6 - 북한 간첩들이 서해안의 흑산도에 침투하여 15명이 살해됨.
  
  1969. 7 - 북한은 '남한의 지하 혁명 조직'으로서 연합혁명당 (통일혁명당으로도 알려짐)의 공식적 수립을 공개적으로 밝힘. 이 조직의 목표는 남한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북 '민주 정권'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음.
  
  1969. 10 - 미국 병사 4명이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부근에 매복해 있던 북한 침입군에 의해 살해됨.
  
  1969. 12 - 북한 간첩들이 51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가던 남한 YS-11 항공기를 원산으로 납치함. 1970년 2월에 승무원과 승객 39명이 석방됨. (1998년 현재, 나머지 12명은 여전히 북한에 억류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남한 정부에 따르면 북한에는 1955년이래 약 450명의 한국인이 납치되어 북한에 억류중임. 1999년 3월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아직 북에 억류 중인 454명의 한국인 명단을 발표함. 또한 북으로 끌려간 407명의 남한 전쟁포로 신원도 공개함. 이중 231명의 전쟁포로들은 아직도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됨.)
  
  1970. 3 - 북한은 일본 보잉 707 항공기를 평양으로 납치한 일본의 과격 좌익 '적군파' 소속 9명에게 은신처를 제공함. 2000년 3월초 현재, 북한은 계속해서 몇몇 적군파 소속 대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음.
  
  1970. 4 - 북한 침투 간첩 3명이 남북한을 분단하는 비무장지대 남쪽, 경기도 금천에서 사살됨. 남한 병사 5명도 이 과정에서 부상당함.
  
  1970. 6 - 북한 초계정들이 군사분계선 근방 서해안에서 20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던 남한의 방송선박을 나포함.
  
  1971. 1 - 서울에서 속초로 가던 대한항공 F-27 항공기를 납치하려던 북한의 시도가 좌절됨.
  
  1974. 2 - 북한 초계정들이 2척의 남한 어선을 격침시키고 어부 30명을 억류함.
  
  1974. 11 -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북한의 침투용 제1땅굴이 발견됨.
  
  1974. 8 -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 그의 시해 기도 과정에서 살해됨. 관광객으로 가장하여 서울로 들어온 재일 친북 단체의 간첩이 공식 행사장에서 박 대통령을 향하여 권총을 몇 발 발사함. 박 대통령은 무사히 피하였으나, 영부인은 유탄에 맞아 수 시간 후 사망함. 간첩 문세광은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됨.
  
  1975. 9 - 2명의 북한 간첩이 전라북도 고창에서 저지당함. 1명은 사살됨. 이 과정에서 2명의 한국군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함.
  
  1976. 6 - 북한 간첩 3명이 비무장지대 남쪽 동부 지구에서 사살됨. 남한측은 병사 6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부상을 입음.
  
  1976. 8 - 일단의 북한 병사들이 도끼와 쇠창을 휘두르며 판문점 비무장지대 중립 지역에서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던 미군과 한국군을 공격하여 2명의 미국 육군 장교를 살해하고, 4명의 미군 사병 그리고 5명의 한국군 병사에게 부상을 입혔다. 북한은 유엔 사령관 리차드 G. 스틸웰 장군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 사건을 '유감스런' 일이라고 말하였을 뿐, 미국 정부가 장교들의 '사악하고 도발되지 않은 살인'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북한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1977. 7 - 유고슬라비아 벨그레이드에서 남한 부부를 납치하려는 북한의 기도가 실패함.
  
  1978. 2 - 남한 여배우 최은희와 그녀의 남편이자 영화 감독인 신상옥이 홍콩에서 납치되어 평양으로 끌려감. (1984년 4월, 남한 정부 관리는 최은희와 신상옥이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선전 영화를 제작하는 작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하였음). 이 부부는 1986년 베를린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남한으로 탈출하였다.
  
  1978. 10 - 비무장지대에서 제3의 북한 침투용 땅굴이 발견됨. 이 땅굴은 비무장 지대 남쪽으로 400미터나 뻗어 있어, 미 육군 전방 기지에서 겨우 2 km, 판문점에서 4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위치상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됨. 군사 전문가들은 경화기로 무장한 30,000명의 북한군이 매 시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978. 11 - 3명의 북한 무장 간첩단이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2명, 공주군에서 1명, 경기도 오산에서 1명 등 총 4명의 남한 민간인을 살해함.
  
  1979. 6 - 남한 교사 고상문이 네덜란드에서 북한인들에 의해 납치됨.
  
  1979. 10 - 세 명의 북한 간첩이 비무장지대 동부 지구를 침투하던 중 발각되어 그 중 1명은 살해됨.
  
  1979. 7 - 한국무역진흥공사 직원 한용길을 프랑스에서 납치하려던 북한의 기도가 실패함.
  
  1980. 3 - 세 명의 북한인들이 한강 어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침투하려다 모두 사살됨.
  
  1980. 11 - 3명의 북한 간첩이 전라남도 횡간도(Whenggando)에서 침투 중 사살됨. 남한의 민간인 1명이 살해되고 6명이 부상당함.
  
  1980. 12 - 3명의 북한 간첩이 경상남도 해안에서 사살됨. 2명의 한국 병사가 사망하고 다른 2명이 부상당함.
  
  1981. 3 - 강원도 금화에서 3명의 북한 간첩이 침투하다 1명이 사살됨.
  
  1981. 6 - 충청남도 서산 해안에서 북한 간첩선 1척이 격침됨. 9명의 간첩이 사살되고 1명은 생포됨.
  
  1981. 7 - 3명의 북한 간첩이 임진강 상류에서 강을 건너 남측으로 침투를 시도하던 중 발각되어 사살됨.
  
  1982. 5 - 2명의 북한 간첩이 동해안에서 발각되어 1명이 사살됨.
  
  1982. 8 - 캐나다 경찰이 한국 전두환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 중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의 계획을 밝혀냄.
  
  1983. 10 -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미얀마) 랑군의 순교자 묘역에 헌화하기 위하여 도착하기 수 분 전에 강력한 폭탄이 폭발하여, 대통령의 아시아 6개국 순방의 첫 기착지인 미얀마에서 전 대통령을 수행하던 17명의 고위 한국 관리가 사망하고 다른 14명의 관리가 부상당함. 사망자 중에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또 한 사람의 고위 대통령 보좌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외무장관을 포함한 3명의 장관, 3명의 차관, 버마 주재 한국 대사 등이 포함되었음. 또한 이 폭발 사고로 미얀마인 4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당함. 전 대통령은 이 살해 사건을 '전쟁 선포와 다름없는 중대한 도발 행위'로 규정하고 '이러한 도발 행위가 재발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북에 경고하였다.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전 대통령의 발언을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비난하였다. 북한 육군 진모 소령과 대위 강민철 등 2명의 용의자가 체포되어 랑군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대위 강민철은 폭파 범행을 자백하고, 북한에서의 훈련 그리고 북한 화물선을 타고 미얀마로 잠입한 과정을 상세히 진술하였다. 그는 또한 암살 팀이 버마에 도착한 후 북한 대사관 참사관의 집에서 머물렀다는 사실도 밝혔다. 11월 4일 버마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1984년 2월, 버마 대법원은 하급 법원에서 내린 사형을 인정하였다.
  
  1983. 12 - 2명의 북한 무장 간첩 전충남과 이상규가 다대포에서 생포됨.
  
  1984. 2 - 2명의 캐나다인 찰스 야노버(Charles Yanover)와 알렉산더 제롤 (Alexander Gerol)이 북한 간첩들이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하여 1981년 자신들을 60만 불에 고용하였다고 캐나다 법정에서 증언하였다. 그들은 유죄판결을 받고 1-2년의 감옥형을 선고받았다. 암살은 1982년 7월 전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 시에 기도될 예정이었다.
  
  1984. 9 - 북한 간첩 1명이 한국 대구 시민 2명을 살해하고 다른 한 시민에게 중상을 입힌 다음 자살하였음.
  
  1985. 10 - 한국 부산 해안에서 북한 간첩선 1척이 한국 해군에 의해 격침됨.
  
  1986. 9 -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폭탄이 폭발하여 5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부상당함. 한국 경찰청장은 북한 간첩 또는 북한의 지시나 영향을 받은 사람이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판단함.
  
  1987. 1 - 홍콩에서 남한 민간인(윤태식)을 납치하려는 북한의 기도가 실패로 끝남.
  
  1987. 1 - 한국의 어선 1척(27 통진호)이 12명의 선원과 함께 납치됨.
  
  1987. 8 - MIT 재학중인 남한 학생 이채환이 오스트리아에서 납치됨.
  
  1987. 11 - 20명의 승무원과 95명의 여객을 태운 대한항공 보잉 707에 2명의 북한 테러 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이 버마 안다만해 상공에서 폭발하였음. 이 항공기는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바레인에서 체포되어 범행을 자백한 두 테러범 중 한 사람인 김현희는 서울 법정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폭파 사건은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에 대한 북한의 경고였다고 알려졌다. (1988년 1월, 자백한 간첩 김현희는 자신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기 위해, 일본 경찰이 북한 공작원에 의하여 납치된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계 이은혜라는 일본 여인으로부터 2년간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1988. 1 - 미국무성은 1979년 수출 관리 법률에 따라 '북한은 국제 테러 행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지원을 제공한 국가'로 판정하였다.
  
  1988. 6 - 북한 무역 회사 대표는 남한에 귀순한 후 전세계 북한 대사관들은 다른 나라들이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폭로하였다.
  
  1990. 3 - 비무장지대에서 또 하나의 북한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1974년 11월이래 네 번째 발견된 땅굴임. (두 번째 땅굴은 1975년 3월에 발견됨.) 남한 당국은 땅굴은 모두 17개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 (1978년 10월 사건 참조).
  
  1991. 6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남한의 청년, 학생, 인민이 '노태우 파시스트 정권을 타도하고 진정한 민주 정권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였다.
  
  1992. 5 - 남한의 제복을 입은 3명의 북한인들이 비무장지대 남쪽 강원도 철원에서 사살됨. 3명의 남한인들이 이 과정에서 부상당함.
  
  1992. 10 - 북한 공산당 관리 이선실의 지휘를 받는 남한내의 400명으로 구성된 북한 간첩단이 남한의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발각됨. 이 간첩단의 임무는 남한 내에서의 전복 활동을 위한 지하지휘센터를 수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 안기부에 따르면, 북한 공작원들은 남한의 해안선을 따라 침투하였다고 함.
  
  1993. 12 - 북한의 군참모총장(겸 국방장관, 1995-97) 최광은 주요 국가 행사에서 군은 '90년대에는 반드시 총으로 조국을 통일해야 하는 막중하고 영광된 과업을 맡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1994. 3 - 20년 이상이 지난 후 처음으로 북한은 판문점에서의 남북한 회담에서 전쟁의 협박을 하였다. 북한이 전면적인 국제적 핵 사찰을 거부하므로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의 가능성이 있다는 서울 대표단장의 언급에 대하여, 평양 대표단장은 '서울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4. 6 - 아디스 아바바 소재 한 에디오피아 대학교에서 남한의 이진상 교수를 납치하려는 북한의 시도가 실패함.
  
  1995. 5 - 북한의 초계정 한 척이 남한의 어선에 발포하여 3명의 남한 어부가 숨짐. 북한은 다른 어부 5명을 1995년 12월에 석방함.
  
  1995. 6 - 남한의 인도적 구호 물품인 쌀을 북한에 전달하러 북한 항구에 입항한 남한 선박의 선장에게 북한기를 달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북한 군인들이 위협함.
  
  1995. 7 - 길림에서 3명의 북한 공작원과 2명의 한국계 중국인 협력자들이 남만주에서 남한의 안승운 목사를 납치하여 북한으로 끌고 감. 평양은 안 목사가 자진해서 귀순하였다고 주장함. (이 납치를 주도한 혐의로 중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은 받은 북한인은 2년간의 형기를 마친 다음 1997년 7월에 중국에 의하여 북한으로 추방되었음.)
  
  1995. 8 - 북한 항구에 입항한 남한의 쌀 수송선의 선원이 선상에서 사진을 촬영한 후 북한은 이 선박을 억류하고 남한 선원을 체포하였다. 이 선박은 12일 후 석방되었다.
  
  1995. 10 - 두 명의 북한 무장 간첩이 비무장지대 남쪽 임진강에서 저지되었다. 1명은 사살되고 나머지 1명은 도주하였다.
  
  1995. 10 - 두 명의 북한 공작원이 서울에서 남쪽으로 100 마일 떨어진 부여에서 발각되었다. 1명은 사살되고 나머지 1명은 생포됨. 생포된 공작원은 자신은 반정부 인사, 정치인, 지하 세포 조직을 접선하는 임무를 띠고 2개월 전에 침투하였다고 밝혔다.
  
  1996. 4 - 비무장지대의 보전에 관한 휴전 규정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양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 3차례에 걸쳐서, 총 수 백 명의 무장 북한 군인들이 한국 휴전 협정을 위반하여, 판문점 비무장지대의 공동 경비 구역 등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옴.
  
  1996. 5 - 7명의 북한 병사가 비무장지대 남측 한국 방어 위치에 면하는 군사 분계선을 넘어왔다가 한국군이 경고 사격을 가하자 철수함.
  
  1996. 5 - 5척의 북한 해군 초계정들이 서해안 남한 영해(휴전 협정에 따라 한국 영해로 지정된 구역)를 침범하였다가 남한 해군 함정들과 4시간 동안 대치하다가 되돌아감. 1996년 6월 또다시 동일한 지역에 북한 선박이 3시간 동안 침범한 바 있음.
  
  1996. 7 - 북한 간첩이 12년 동안 필리핀 교수로 행세하다가 서울에서 붙잡힘. 62세의 정수일(모하메드 깐수로도 알려짐)은 경찰에서 '수 십 명 혹은 수 백 명'의 북한 간첩들이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경찰에 말함.
  
  1996. 9 - 고장난 북한 잠수정이 강릉시 근해에서 좌초된 것이 발견됨. 26명의 북한 공작원들이 간첩/정찰 임무를 띠고 있던 잠수정에서 동해안으로 상륙하였음. 남한 당국에 따르면, 이중 11명은 잠수정에 있던 북한 특공 요원에 의하여 사살되었으며, 13명은 투항을 거부하고 남한군과의 교전에서 사살되었고, 1명은 생포되고 나머지 1명은 도주하였다. 남한군이 침투 간첩을 뒤쫓는 과정에서, 11명의 한국군과 민간인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당했음.
  
  1996. 10 - 이 잠수정 사건에 대하여 '보복'하겠다는 북한의 위협이 있은 후 한국 외교관 최덕근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살해되었다. 처음부터 북한이 이 살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그 후 시체 부검 결과 최덕근의 체내에서 발견된 독극물이 9월 좌초된 잠수정의 북한 공작원들이 지니고 있던 독약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7. 2 - 서울에서 이한영이 북한 공작원으로 보이는 2명의 청부 살인자에 의하여 사살되었음.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전처 송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1982년 남측으로 귀순하였다. 이 총격 사건은 북한의 고위 당 관리인 황장엽이 남한으로 귀순하기 위해 북경 한국 영사관으로 걸어들어 온지 3일 후에 발생했다. 혼수상태에 있던 이한영은 10일 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이 총격은 황과 남한으로의 귀순을 마음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생각되었음.
  
  1997. 2 - 1997년 2월 북경을 통하여 귀순한 황장엽이 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로서, 1994년 7월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결렬한 언쟁을 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실은 한국의 조선일보에 대하여 특별히 지정하지 않은 '보복'을 하겠다고 북한은 협박함.
  
  1997. 3 - 일본의 일간지 산케이 신문은, 전 북한 공작원 안명진(1993년 9월 남한으로 귀순)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1977년 11월 메구미 요코타라는 13세의 일본 여학생이 니이가타 시에서 납치되어 간첩 훈련을 담당하는 북한의 한 학교에 보조 교사로 활용되기 위해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보도하였다. 일본 당국은 이 여학생에 대한 안명진의 진술이 그 당시 일본 니이가타에서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고된 여학생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일본 당국은 북한이 1970년대 중반이래 적어도 9명의 일본인을 납치한 것으로 추정함.
  
  1997. 4 - 5명의 북한군이 철원 지구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후 한국군에 대하여 사격을 가함.
  
  1997. 6 - 3척의 북한 초계정들이 군사분계선 남측 2마일 지점 황해상의 한국 관할 영해에 침범하여 남한 초계정들에 대하여 발포하였음. 이 사건은 1995년 10월 옹진의 북한군 해안 포대에서 남한 해군 함정에 발포한 이래 처음 있는 일임.
  
  1997. 6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독립, 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반파시스트 투쟁에 있어 '시급한 필요조건'으로 남한의 김영삼 정부를 '전복'할 것을 '친민주적인' 남한인들에게 계속 선동하였다.
  
  1997. 6 - 북한은 '새로운 개혁 지향의 [북한] 집단'을 위하여 권력을 포기할 것을 김정일에게 촉구한 6월 24일자 사설을 실은 조선일보에 대하여 '무자비한 보복적 일격'을 가할 것이라는 협박을 하였다. 이 사설을 '우리들에 대한 가장 도발적인 전쟁 선포'라고 비난하면서, 북한은 '조선일보가 없어질 때까지'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보도하였다.
  
  1997. 7 - 14명의 북한군이 남한측의 철수하라는 경고 방송을 무시하고, 폭 4 km 비무장지대의 중간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70미터 지점까지 침범하였다. 이 침입으로 쌍방간에 23분간의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이는 1996년 침입 사건이래 가장 심각한 사건이었다.
  
  1997. 11 - 북한은 '파시스트 독재의 대변자'인 한국의 국영 방송 한국방송공사(KBS)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북한은 KBS가 북한 사회의 억압된 생활상과 부패상을 묘사하는 TV 미니 시리즈의 제작을 중단하지 않으면 그 제작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하겠다고 공언하였다.
  
  1997. 11 - 명문 서울대학교의 저명한 명예교수인 고영복을 포함한 6명의 북한 간첩단이 서울에서 발각됨. 한국에서 '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리던 고영복은 남북 문제와 관련 남한 정부에는 '보수적' 컨설턴트로 행세하면서, 1973년부터 북한의 간첩으로 활동해온 것이라 함.
  
  1998. 4 - 북경에서 열린 남북 회담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 중 한 사람이 북한은 '식량 및 비료 지원 문제'를 '정치화'하려는 남한의 기도에 굴복하느니 보다 차라리 북한이 '해방 전쟁'을 하겠다는 취지의 '도발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남한의 특파원은 보고하였다.
  
  1998. 6 - 미국에 대한 도전의 표시로, 북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계속해서 미사일을 개발, 시험, 배치하겠다는 자신들의 의지를 선언하고, 북한의 '경제적 고립'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정책의 결과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 이외에는 외화를 벌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또한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문제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미사일 수출 중단으로 빚어질 손실에 대하여 보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98. 6 - 6월 22일 북한의 소형 잠수정이 비무장지대 남쪽 남한의 속초시 근해에서 남한의 그물에 걸린 채 발견됨. 3일 후, 해안으로 예인하였을 때, 9명의 승무원은 잠수정 내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는데 집단 자살한 것으로 보였음.
  
  1998. 6 - 6월 27일, 이 사건과 관련하여 4일간의 침묵을 깨고, 북한은 북한 승무원 사망에 대하여 남측을 비난하며 시신과 잠수정을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잠수정 침범은 1992년 남북한 화해, 교류, 협력을 위한 기본합의서 뿐만 아니라 휴전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책임을 인정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였다.
  
  1998. 7 - 북한 잠수 공작원 시체 1구가 소지품과 함께 비무장지대 남쪽 해안에서 발견되어 분명히 침투/간첩 임무를 띠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었음.
  
  1998. 8 - 미국 정보 기관들은 '북한의 동결된 핵무기 프로그램 재개 노력의 중심으로 생각되는 거대한 비밀 지하 시설을 북한에서 발견'하였다고 하며, 이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으로 의심받던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한 1994년의 4자 회담 '합의(agreed framework)'를 포기하는 결정을 의미할 수 있는 사태 진전임. 그러나, 북한은 이 문제의 지하 시설은 특별히 밝히지 않은 경제적 사업의 일부로 건설중인 민간 경제 시설이라고 주장함. 북한은 또한 미국이 '조작으로 우리를 근거 없이 모욕하고 중상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우리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하여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음. 이 지하 시설에 대한 공개 이후에, 워싱턴과 서울은 이 지하 시설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의심받는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1994년 합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림. (1999년 5월, 일단의 미국 검사관들이 이 지하 현장을 방문하였음. 금창리의 이 시설은 '대규모의 텅빈 동굴'인 것으로 알려짐.)
  
  1998. 8 - 8월 31일, 북한은 새로운 3단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시험발사를 실시하여,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행위라는 거센 반발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몇 일 후, 북한은 미국과 다른 정보원들이 주장하는 탄도 미사일이 아니라, 우주의 평화적 탐사를 위한 위성을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키기 위하여 다단계 로켓을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음.
  
  1998. 11 - 북한의 고속 간첩선이 서해안 강화도 부근 한국 영해에서 추격을 따돌리고 도주함. 이는 공작원을 침투시키거나 남으로부터 공작원을 철수시키려는 작전이 실패한 것으로 보임.
  
  1998. 12 - 평양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북한의 청년 학생들은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고 서울과 동경을 부셔버리겠다'고 공언하였다.
  
  1998. 12 - 남한 해군은 포격전에서 북한 고속 반잠수정 한 척을 부산 서남방 150 km 해상에서 격침시켰음. 북한 잠수 공작원 1명의 시체가 현장 부근에서 인양됨.
  
  1999. 3 - 북한 간첩선으로 보이는 선박 2척이 일본 트롤 어선으로 위장하고(어망은 없이 안테나들만 곤두 세우고) 일본해(동해로도 알려짐)에 면하는 노토 반도 앞 일본 영해에 들어옴. 이 선박들은 일본 해안 경비대, 해군 선박 및 항공기의 고속 추격을 따돌리고, 북한의 간첩 공작선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청진항으로 도주함. 북한은 이 사건에의 개입을 부인하였음.
  
  1999. 6 - 몇 척의 북한 선박들이 남한의 서해안에서 떨어진 분쟁 해역에서 9일간 남한의 해군과 대치하였다. 이 지역은 북방한계선 (NLL)이라고 알려진 분쟁 해상 경계 구역임. 1999년 6월 15일, 이 대치 상태가 상호 교전으로 끝났을 때, 양측은 서로 먼저 포격전을 시작하였다고 서로를 비난하였다. 북한 어뢰정 1척이 화염에 휩싸여 승무원 전원과 함께 격침되었으며, 나머지 5척은 큰 피해를 입었다. 보다 더 현대적인 남한 선박 중 2척은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한국전 종전 이후 가장 심각한 해군 충돌이었으며, 1988년 12월 이후 두 번째 사건이었다(위 참조). 이 6월 사건 이후, 북한은 '우리 영해에 대한 남한의 침범이 제지되지 않으면' 더 많은 유혈사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또한 미국측에 북방한계선(NL)을 포기하고 '분쟁 해역에서 선박을 철수할 것'을 촉구하였다.
  
  1999. 9 - 1999년 9월 9일, 한국 국정원은 '인민과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당'이라고 하는 친북 단체 소속으로 알려진 한국인 5명을 체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 단체는 'Hotmail'의 e-mail 서비스를 통하여 평양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혁명 및 반미 활동을 위하여 남한 대학 캠퍼스를 급진적으로 개혁하기 위하여 1992년 3월에 조직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것은 1992년에 평양이 남한에 대한 파괴 공작이나 침해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엄숙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사건임. 1999년 10월 7일, 남한 보안 당국은 '인민과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당' 소속 당원으로 거의 20명을 추가로 발표하였다.
  
  2000. 1 - 버지니아 린치버그 영주권자인 남한의 김동식 목사가 2000년 1월 16일 중국 동북부 얀지에서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김 목사는 그 날 동료들에게 북한 귀순자 2명과 점심식사를 하러 나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보도(2000. 2. 3일자)를 인용하면서, 서울의 연합통신은 이 북한 귀순자들은 귀순자를 가장한 북한 공작원들이며, 10명이 김 목사의 '납치'에 관련되었다고 보도하였다.
  
  2000. 3 - 3월 9일, 북한은 1970년 일본 항공기를 평양으로 납치한(1970. 3 참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일본 공산주의자 연맹-적군파 회원에게 더 이상 은신처를 제공하지 말고 아직 북에 있는 그 소속 대원들을 추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중앙통신이 발표한 성명서에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일본 '적군파'의 소속 대원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법이 인정하는 주권 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국무성의 한 대터러 전문가는 납치범들이 비록 수년간 폭력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심각한 위반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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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9-28, 17: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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