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秉喆, "내가 반도체를 결단한 이유"
"반도체 산업이 없다는 건, 이거 석유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가부간 이걸 맹글어 봐야겠다, 그것이 경영자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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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초 李秉喆 三星그룹 회장은 조선일보 鮮于煇 논설고문과 對談하면서 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오늘의 三星電子를 세계최대의 電子회사로 만든 운명적 결단을 내린 1년6개월 후였다. 月刊朝鮮 1984년 1월호에 실렸던 對談錄중 일부를 소개한다.
  
  
  
  李: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4000만 국민을 가진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든지 경제적으로 부흥이 돼야 우리나라가 유지되겠는데… 경제력 없는 국방, 정치는 무의미하다, 물론 국방 없는 경제도 있을 수 없지만… 4000만 국민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데 제가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게 뭐이냐고 고심했십니다. 제가 5년 더 살지, 10년 더 살지 모르겠지만… 제가 유전 공학, 반도체 이렇게 찾아보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반도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십니다.
  
   반도체 산업이 없다는 건, 이거 석유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가부간 이걸 맹글어 봐야겠다, 그것이 경영자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암매, 작년(82년) 여름이었지.
  
   그걸 하려고 여러 가지로 반도체 산업 실태를, 조사를 해보았는데 구라파는 아주 쇠퇴해서 문제가 안 되고 제일 기술이 발전한 것이 미국이고 양산 체제로 제일 이익을 많이 보고 있는 것이 일본이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 교섭을 해봤더니 설계 기술은 낼 수 있다고 해.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안되제. 기업이 이익을 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본의 양산 기술을 교섭하게 되었십니다. 반도체는 로봇, 티비 등에 널리 쓰이는 데 이것을 기초로 해서 제2차 3차 제품을 맹글지요. 그런데 이것이 모자라서 각종 전자제품 만드는 데 지장이 있십니다. 안 준다고요. 사려고 해도 일본 사람들이 안 주어요. 이번에 그걸 알았는데. 일본에 교섭이 들어갔는데 어림도 없어요. 이들이 안준다는 이야기는 안해. 지금 바빠서, 어쩌고 하면서 자꾸 피합니다. 제가 20년 동안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NEC의 그 사람… 그래서 제가 농담을 했십니다.
  
   지금 바쁘다는 데 언제 끝나느냐, 10년 걸리는가, 20년 걸리는가. 그랬더니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하는 데 속으로는 한국 네까짓 게 무슨 반도체냐, 냉소하는 것이 비쳐. 환하게 보이더라고. 화나게 됐제… 그렇지요? 지는 우리를 무시하고 나는 또 지를 무시한다, 그게 부딪쳤어. 애… 반년 이상 갔제, 아매. 더 적극적으로 나갔지. 대사관에 부탁한다, 일본의 政客을 동원한다, 각료회담에 의제로 삼는다, 심지어 頂上회담에까지 정부에서 이 문제를 갖고 논의하고… 그래도 안 돼요. 아무래도 일본 기술이 와야 하는데 설계 제조 기술은 미국이 쥐고 있거든요. 업계, 政界 동원하고 이만저만 힘쓴 게 아닌데 그것만은 안된다는 게야. 그러다가 다행히 일본에 샤프라는 회사를 찾았제. 이 회사는 방침이 기술을 전부 공개하고 다른 데 파는 거예요. 돈받고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기술을 널리 보급하자는 게 그 회사의 社風인 깁니다.
  
  기술을 사가지고 간 쪽에서 돈을 벌어야 좋아하고 안 벌면 싫어하는 이상한 회사라. 여기에 교섭이 들어갔제. 몇 달 시간을 달라는 거에요. 그 동안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참 많았십니다. 교섭하는 게 탄로가 났어요. 샤프가 아주 곤란하게 됐지. 기자들이 찾아가서 왜 너그만 주려고 하느냐, 딴 업자들로부터도 공박을 많이 받았지요. 國賊(국적)이다, 그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그 이야기 듣고도 샤프에서는 태연해. 기술을 줄 테니까 당분간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기술은 얕은 기술이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필요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또 고급 기술이 들어오고 해서 일단 기술 도입은 성공했십니다.
  
   64KD는 半年 만에 만들었지요
  
   이번에는 64KD는 참 빨리 만들었어요. 일본에서는 2년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반년 만에 했십니다. 나는 뜻밖으로 생각하지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 반도체를 만들어 그래도 8년 동안 얕은 기술이지만 기술을 축적했거든요. 그리고 그 동안 우리가 사람을 많이 구했십니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한 600명 됩니다. 왜 이렇게 많으냐 하면, 일본만 해도 국내에 반도체 산업이 발달해 가지고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 취직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취직할 데가 마땅치 않아 미국에 머물러 취직을 하는데, 일류 회사의 생산부장, 그런 사람을 우리가 스카우트했십니다. 교수 하던 사람도 데려왔고 그 교수의 제자가 미국의 유명한 반도체 회사 생산부장인데 또 데려오고….
  
   그런데 이런 고급 기술자만 있어 가지고는 안되거든요. 그 사람의 지시를 받아 실제로 작업을 감독하는 직능장급이 필요한데, 다행히 우리가 8년 동안 그런 인력을 한 700명 양성했고 그중에서도 100명이 우수한데 그 중에서 또 엘리트인 스무 명을 선발,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했십니다.
   또 한패가 있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실리콘 밸리라는 데가 있고 거기에 우리가 반도체 공장을 하나 내어 지난 11월부터 움직이고 있십니다. 기계는 이쪽보다 그쪽이 훨씬 고차원이지요.
  
   그쪽에서도 곧 16K피콤이라고 하는, 64KD만큼 중요한 것을 개발해 낼 겁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한 회사에서밖에 만들지 못한 것이지요. 이번에 우리가 64KD의 생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기 전에, 모르는 사람은 봐도 그게 왜 중요한 것인지 모르니까 KIST 같은 곳의 박사나 교수들에게 한번 보여 드리고 평가를 받은 다음에 발표를 했십니다.
   어떻게 보면 64KD 생산에 성공한 것은 기적적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이라고 봐야 맞십니다.
  
   일본이 경계할 만도 하제 …造船(조선), 반도체
  
  鮮于: 朴대통령과 같은 질문이 되겠습니다만(웃음) 64KD를 개발·생산한 것은 세계 다른 나라에 견주면 어느 수준이 됩니까?
  李: 세계에서 세 번째, 미국 일본 다음입니다. 영국에서는 우리같이 자체 생산이 아니고 조립만을 하는 거고 그것도 일본 NEC가 전액 투자한 회사에서 만드는 겁니다. 회사로는 세계에서 열째지, 암매.
  
  鮮于: 얼마 전 일본의 NHK 방송에서 ‘아세아의 대화’라는 좌담 프로를 마련했는데 동남아에서 여러 분이 참석하고 저도 거기에 나갔습니다. 이소무라라는 분이 사회를 했는데 역시 다른 동남아 사람들과는 다른 질문을 저한테 던지더군요.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으려 하는데 언제쯤이면 그렇게 되겠느냐고 묻는 거예요. 제가 그때 그랬어요. 빨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당신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겠느냐, 만약 당신들이 이태리병이나 영국병에 걸려주면 몰라도 나로선 아직 그런 것을 생각 못하고 있다.
   그랬는데도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상당히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는, 당신네들 뭘 그것 하나 가지고 그러느냐, 서로가 같이 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 좀 크게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李회장님께서 보시기에는 저들이 그렇게까지 우리를 경계할 만한 까닭이 있다고 보십니까?
  
  李: 그분들이 지나치게 이야기하는 점도 있지만 우리를 경계할 만도 하제, 아마. 造船(조선)이 그렇지요. 영국이 이전엔 조선의 왕국이었십니다. 그랬는데 영국병에 들어버렸단 말입니다. 스트라이크만 하고… 그래서 일본에게 지게 됐제. 생산 코스트가 비교도 안될 만큼 싸졌고 일본에서는 합리적인 기술도 개발하고. 그래서 일본이 한때 세계 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한테 지고 있잖아요. 현대를 위시해서 우리가 조선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제는 코스트가 우리한테 경쟁이 안 돼요. 그런데 그런 건 흘러가는 건데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붙잡으려고 하지. 우리도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5년 뒤가 될지, 20년 뒤가 될지, 중공업이 말레이시아나 대만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데 그런 걸 저 사람들은 너무 심하게 신경을 씹니다.
   그런 데는 우리 삼성이 큰 역할을 했제, 아마. 일본에 NEC라고 하면 반도체 양산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인데 10년 전에 우리하고 트랜지스터 공장을 저 언양에 맹글랐는데… 이 트랜지스터는 반도체 IC의 전신인데 진공관 천개가 트랜지스터 하나하고 같다고 하제, 암만.
  
   NEC는 10년 이상 트랜지스터를 만들었고 언양 공장은 1년밖에 안 됐는데 1년 뒤에 收率 (수율)을 조사해 보니 우리는 95퍼센트 나고 일본은 85퍼센트밖에 안 났십니다. 내가 한번 일본에 가니 그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해쌓는 기라. 그래서 나는 트랜지스터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잘 모르니까 조사해서 알려 주겠다고 했십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직공한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냐, 그래서 물어 봤어. 백 명을 모집하면 직공이 몇이나 오느냐? 대답이, 때에 따라 다르지만 3백 명 올 때가 있고 5백 명 올 때도 있다. 그 중에서 건강 상태 정신, 지능 상태를 전부 테스트해서 제일 우수한 직공들을 빼낸다…. 일본 사람한테 물었지요. 백 명 모집하면 많아야 90명 내지 95명이 온다는데 전자 산업으로는 좋은 성적이라고 합디다. 섬유 같은 데서는 50명밖에 안 오는데 그것도 여러 군데 공고를 해야 된다는 깁니다. 그러니 가릴 수가 없고 그대로 받아 써야지 도리가 없다고 했십니다. 원인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더니, 아 이 사람 깜짝 놀라 가지고… NEC의 고바야시 회장이란 사람인데, 큰 적이 하나 생겼다고 앉는 데서마다 한국한테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선전을 하고 다녔십니다.
[ 2010-02-12, 17: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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