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사령관 "한국군에게 불가능은 없다" [2]
전쟁 영웅 마크 W. 클라크 장군이 본 ‘한민족의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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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장군(사진 우측에서 네 번째 인물)은 1953년 7월27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金日成),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彭德懷)와 함께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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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웨인 클라크(Mark W. Clark, 1896년 5월1일~1984년 8월17일) 장군은 6.25전쟁당시 UN군 측 대표로 휴전협정에 서명한 장본인이다. 반공(反共)휴머니스트인 장군은 자신의 회고록인 ‘다뉴브 강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에서 한국인들이 비록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오랜 역사와 뛰어난 두뇌로 향후 큰 발전을 이룩할 것임을 예견했다. 특히 장군의 회고록은 전두환 전(前) 대통령의 방미시(訪美時) 레이건 대통령이 한미(韓美) 정상회담 기념으로 전(全)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는 클라크 장군이 회고록에서 밝힌 한국군에 대한 평가다. <편집자 주>

한국군에는 불가능이 없다. 극동 사령관에 임명된 후 워싱턴에서 있었던 최초의 상황 브리핑에서 나는 미국이 한국군을 증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지상군에 최대의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미국이 해군과 공군의 기반도 닦아 주어야 할 형편임을 알게 됐다. 한국의 숙련된 기술이 허용되고 장비가 입수 될 수 있는 한 해군과 공군력을 육성시켜 주어야 했다. 한국군의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됨에 따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세계 지배를 노리는 ‘공산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국군을 자유세계가 필요로 하는 군대로 증강시켜 그 전선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을 강력히 제창했다. 한국군의 체질은 결핵에 약했다. 미국에서 징집되어 온 우리 청년들의 체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군대를 확보할 수 있는 방대한 인적자원이 있었다. 한국군이 점차 발전 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신체적으로 적합하지 못한 사람은 사전에 탈락시키는 안전 조치가 취해졌다. 징집을 위한 신체검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군은 훌륭한 전투 요원으로 급격히 성장함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국인들은 라디오·레이더·포 조작·기계조작·통신관계 등 기타 전술적인 면과 고도의 기술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인들이 훌륭한 보병이 될 수 있다는 확신 하에 한국군의 증강 작업에 착수했다.

 
백선엽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는 모습. (1950년 8월18일)
우리는 군대의 복잡다단한 기구를 다루는 데 있어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언어의 장벽이 심각한 장애일 것으로 느꼈다. 그들은 우리로부터 배울 것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인들(한국인들)은 경탄할 정도로 모든 것을 빠르게 소화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재주도 대단했다. 한국인들에게는 불가능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맡은 바 임무를 서슴없이 잘 해냈다. 그들은 그렇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유능한 군인들이었다. 이를 테면 숲 속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것 같은 어려운 일도 능해 해 낼 수 있는 군사들이었다... (중략)

평범한 한국인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가르치는 모든 기술 지도를 전부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했다. 미군에게서 적절한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에게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다. 이 자신감은 언어상의 난관과 교육의 기회 부족을 보충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자질이 얼마나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금강석 같았다. 나는 한국군과 미군의 혼성팀으로 미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있는 포 부대를 방문한 일이 있다. 한국군 포대가 공산군 진지를 포격하는 작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작전 성과는 미군의 표준에서 볼 때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나는 즉시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기뻤다.

미군 사령관은 나에게 한국군의 포술은 어떤 면에서나 미군 포병의 수준에 충분히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누차에 걸쳐 강조했다... (중략) 한국군 군사력의 근간은 역시 용감하고 지칠 줄 모르는 보병이었다. 그들에게는 지식에 대한 의욕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했다.

이것이야말로 전투원에게는 가장 큰 힘이다. 그들은 또한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릴 각오와 대의를 위해서는 기쁘게 생명을 바칠 충성심도 있었다. 한국인에게는 공산주의의 잔악성을 새삼 선전할 필요가 없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조국을 일시에 황폐화시켰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들 주변에서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실제 피부로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중략) 한국은 거대하고 역사적인 군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협에서 격파됐던 엘리자베스 시대에 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야기된 거대한 해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마치 스페인에 대한 영국의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의 승리가 유럽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동양에서도 이순신 해군 제독의 일본군과의 해전의 승리가 역사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반도를 거쳐 중국 본토를 침략하려던 일본군, 그들은 한국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보급선과 수송 함대를 격파 당하고 한국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들은 그 때 이미 평양까지 쳐들어가서 중국을 향해 진격을 개시할 기세로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전쟁사에 의하면 일본과의 해전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대항했다는 데 있었다. 거북선이라는 철갑선이 사용된 것은 세계에서 이것이 처음이었던 일이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무(武)를 숭상하는 전통이 있다.

 
평양공략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국군1사단 장병들 - 평양 제2의 관문인 보통문이 보인다.(1950.10.17)ⓒ Stars and Stripes
그러나 이런 전통을 가진 한국이지만 한국전 당시에는 대군(大軍)을 지휘할 수 있고 야전 전투에서 작전에 능숙한 훈련을 받은 지휘관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결함은 가능한 한 조속히 시정되어야 했다... (중략)

한국군의 훈련 계획은 미국 방식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었다. 그들의 훈련은 보다 더 위험했으며 더 많은 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 한국군 신병 훈련소에서는 우리 보다 더 많은 신병이 부상을 당하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훈련에 있어 부당한 위험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병 훈련은 가능한 한 실전에 직면한 상태와 같지 않으면 신병 훈련을 완수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군대가 훈련을 받을 때 실탄을 사용하도록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병은 그의 머리 가까이를 스쳐 가는 소총이나 기관총 탄환이 내는 소리에 익숙해야 하며, 보다 큰 발전을 위해서는 화차 지나가는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나르는 포탄이 무슨 종류의 포탄인가 하는 것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실탄 훈련은 신병이 전투에 임했을 때의 최초의 충격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많은 신병이 실탄으로 훈련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약간의 사고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훈련 시에 받게 되는 작은 손실은 그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실전에서 생명을 건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보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한국군은 우리보다 한 층 더 철저한 신병 훈련을 받고 있었다. 군인이 실전에 참가하기도 전에 이미 고병(古兵)이 되는 점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신생 대한민국의 국군, 그들은 마치 요람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공산 침략자의 공격을 받고 무참히 짓밟혔었다. 그러나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그들의 조국 수호에 대한 투혼과 천부적인 자질은 이 참담한 형극(荊棘을 딛고 일어섰다. 우리는 이 우수한 군대를 자유 수호의 역군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데 대해 보람을 느낀다.

출처: 클라크 前 UN군 총사령관 회고록(제목:「From the Danube to the Yalu」) 발췌
정리/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6.25戰史]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킨 ‘국군 병사’
맥아더 장군이 한강방어선을 시찰하기 위해 수원비행장에 내린 6월 29일. 수행원을 대동하고 고지에 올라선 맥아더 장군은 한강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서울 남산과 그 주변 일대를 한참동안 망원경으로 보고나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근처의 참호(塹壕)로 걸어갔다.

그곳 개인호 안에는 한 병사가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의 질문과 이에 대한 병사의 자신감과 사명감에 넘친 답변은 맥아더 장군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고, 그로 하여금 미국 지원군을 한국전장에 신속히 투입할 결심을 하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맥아더 장군 : 자네 언제까지 그 호(壕)속에 있을 것인가?
국군 병사 : 옛! 각하께서도 군인이시고 저 또한 군인입니다. 군인이란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저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여기 있을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 : 그 명령이 없을 때엔 어떻게 할 것인가?
국군 병사 : 옛! 죽는 순간까지 여기를 지킬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 : 오! 장하다! 자네 말고 다른 병사들도 다 같은 생각인가?
국군병사 : 옛! 그렇습니다. 각하!

맥아더 장군 : 참으로 훌륭하구나! 여기 와서 자네 같은 군인을 만날 줄은 몰랐네. 지금 소원이 무엇인가?
국군병사 : 옛! 우리는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놈들의 전차와 대포를 까부술 수 있게 무기와 탄약을 주십시오.

맥아더 장군 : 음! 그리고 또 없나?
국군병사 : 옛!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 알았네, 여기까지 와 본 보람이 있었군.

이때 맥아더 장군은 병사의 손을 꼭 쥐고 나서 통역을 맡고 있던 김종갑 대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령! 이 씩씩하고 훌륭한 병사에게 전해주시오. 내가 도쿄로 돌아가는 즉시 미국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고. 그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훌륭히 싸우라고.'

- 정일권(丁一權)장군 회고록에서 -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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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31, 03: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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