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제점 겨우 면한 이명박 취임사
'이념'이 뒷받침되지 않은 '실용' 강조는 공허,비전 제시 없어 대선 공약집처럼 무미건조

강철군화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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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뒷받침되지 않은 '실용' 강조는 공허,
 
 비전 제시 없어 대선 공약집처럼 무미건조
 

 

   비전 제시 없는 취임사


대통령 취임사는 새로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는 대통령이 자신의 이념, 철학, 꿈, 비전을 펼쳐 보이는 장이다.

대통령이 구체적인 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국민들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새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을 가늠하게 된다. 5년 전 노무현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의 분탕질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솔직히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 같다. 쇳소리가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음성은 귀에 거슬렸다. 추위 때문에 입이 얼어붙어서인지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내용에 있었다. 그다지 알맹이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특히 기업, 노동자, 농어민,  여성, 청년, 장애인 등을 향해 주문과 약속을 하고, 교육, 과학, 주택, 국토, 환경, 문화 등 각 분야의 정책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혀를 찼다.  마치 정당의 대선이나 총선 공약집을 낭독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 취임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는 ‘대호령’이어야 했다.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청사진이어야 했다. 미래를 향해 출정하는 진군의 나팔소리여야 했다. 그 속에는 당선자가 일생동안 체득한 철학이 담겨 있어야 했다. 국가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글로 읽으니, 취임사를 들을 때에는 놓쳤던 부분을 되씹어 볼 수 있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 역정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대한민국 60년의 성취 긍정


우선 개략적이기는 해도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대목은 좋았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최단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동시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남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신화’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입니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진실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 전선에서 산화한 장병들, 뙤약볕 비바람 속에 땅을 일군 농민들, 밤낮없이 산업현장을 지켜낸 근로자들, 젊음을 바쳐 민주화를 일구어낸 청년들의 눈물겹도록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이 지난 60년 동안 이룩한 성취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었다. 특히 ‘전선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언급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대 대통령 취임사 이래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간다?


하지만 그 감동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라고 한 대목 때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뒤를 이어 이렇게 말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철저히 ‘실용’을 강조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던 바는 아니었다. 나 역시 그 점 때문에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이명박 이전에 나는 늘 ‘실용의 인간’을 존경해 왔다. 내가 박정희 대통령을 그렇게 존경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이나 소위 ‘민주화 운동가’들을 경멸했던 것은 그들이 ‘실용’과는 거리가 먼 ‘관념’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념’을 무익하거나, 배제해야 할 요소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실용’은 강고한 ‘이념’에 의해 뒷받침되는 ‘실용’이었기 때문이다.

‘실용’은 ‘세계화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이기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천적 지혜’일 뿐이다. 수단이고 방법인 것이다. 이 수단과 방법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이념이다.


우리에게 ‘이념’은 무엇인가?

바로 헌법의 정신이다. 자유민주주의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가야한다고?

그건 잘못된 말이다. 우리가 넘어야 할 것은 시대착오적인 ‘좌파 이념’이지, ‘이념’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실용’은  대한민국호(號)가 항해하는 과정에서의 항해술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대한민국호가 지향하는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국민들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대목들, 새로운 전진을 다짐하는 대목들을 넘어, 이명박 대통령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약속하고 기업들을 향해 ‘국부의 원천이요,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라고 격려하는 대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각계각층을 향한 약속과 다짐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치 대선이나 총선 공약집을 낭독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도대체 대통령 취임사에서 꼭 보육정책까지 시시콜콜하게 언급했어야 하나? 


남북관계에서 ‘이념’을 배제하는 것은 망상


이어서 다시 한번 예의 ‘이념’과 ‘실용’이 등장했다. 남북관계를 언급한 대목에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예의 ‘비핵개방3000’이 다시 튀어 나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10년 안에 북한주민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라는 다짐....


거기에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게 할 방략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고 했지만, 거기에는 이념은 물론 실용도 없었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결여된 ‘실용’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바로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이념’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에서 ‘이념의 잣대’를 배제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이다. 지난 60년간 남북한 간의 대립과 갈등,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념’대립이었다. 남북대결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간의 목숨을 건 대결이었다. 남과 북 가운데 일방이 ‘이념’만 아니었다면, ‘이념’을 포기했다면, 자유통일이건 적화통일이건 진작에 통일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이념의 잣대'를 배제하겠다?

그건 ‘실용’이 아니라, 백면서생들의  공허한 관념이고, 지적인 마스터베이션일 뿐이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통일 이후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북한인권을 문제 삼고, 미-일 등 자유우방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방송 등을 통해 자유대한의 우월성과 세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그런 것들을 지렛대로 삼아 김정일에게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오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이 결여된 실용’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념’ 없이 ‘실용’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왜 첫 날부터 씹어요? 좀 봐 주지 않고....”

참,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그 주위의 개념 없는 인간들이 이 글을 안 쓸 수 없게 만든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감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라고 한 부분은 정말 공감이 갔다.


하지만, 취임사 곳곳에서 보이는 긍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후하게 쳐줘서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가 그나마 낙제점을 면한 것은 앞에서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를 긍정한 부분과 자신의 성취를 통해 대한민국의 꿈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었다면 이대통령의 취임사는 F학점짜리였다. 이대통령 주위의 문사(文士)들이 내 앞에 있다면 줘 패주고 싶은 심정이다.

 

실용!

물론 좋다. 하지만 이념 없는 실용은 없다. 레이건, 대처, 등소평, 모두 실용적인 지도자였지만, 그들에게 이념이 없었던가?


실용을 중시하되, 대한민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눈감지 않는 대통령 - 그것이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 5년은 바로 그런 대통령의 출현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프리존www.freezone.co.kr
[ 2008-02-26, 09: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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