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盧대통령, 평양에서 얼마나 잘 모실라고?

79세 아데나워 수상은 소련 방문시 잠도 호텔이 아닌 기차에서 잤다. 밥그릇도, 쌀도 기차에 다 싣고 가서 기차에서 수행원과 먹고 자고 했다.
제2차 평양회담 개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장에서 김만복 국정원장은 회담 장소가 평양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을 북한에서 잘 모시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보도를 접했을 때 ‘79세’의 노구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기차로 하루 걸려 간 서독 아데나워 초대수상이 떠올랐다.

1955년 1월 소련이 독일과의 전시 상태를 공식적으로 마감하는 ‘종전 선언’을 했다. 9월에 아데나워 수상은 모스크바를 방문하는데 비행기로 가지 않고 본에서 모스크바까지 그 먼 거리를 79세의 노구를 이끌고 굳이 ‘기차’로 갔다.

왜?

김정일처럼 테러공포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소련에서 제공하는 의전차에 KGB의 도청을 우려해 아예 안전한 자신의 전용차를 서독 기차에 싣고 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잠도 호텔이 아닌 기차에서 잤다. 밥그릇도, 쌀도 기차에 다 싣고 가서 기차에서 수행원과 먹고 자고 했다.

당시의 외교적 관례나 의전과는 동떨어진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괴팍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아데나워 수상의 머리 속에는 단 하나의 방문 목적만 가득했다. 공식 만찬조차도 거절할 정도로 그가 집중한 문제는 바로 소련으로부터 ‘전범’ 판결을 받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포로들을 크리스마스 전까지 ‘조국의 품’으로 모두 데려오는 것이었다.

1967년 4월19일 향연 91세로 아데나워 수상이 서거한 직후 국민들은 설문조사에서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1만 명의 포로 귀환」을 꼽았다.

2003년 국영 TV에서 ‘모든 시대에 걸친 가장 위대한 독일인’를 뽑는 설문조사에서는 아데나워 수상이 「우리의 베스트」로 선출되었다.

反나치주의자로서 종전 후 연합군정 당시 공습으로 도시의 90% 이상 파괴된 도시인 쾰른의 시장을 지낸 그가 건물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사업은 바로 ‘공원 조성’이었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민들의 심신을 정화시키는데 ‘숲과 산책로’가 최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독일의 그린벨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한 아데나워였지만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에서는 고지식하게 단호했다. 바로 이런 ‘원칙과 실사(實事)’를 중시한 아데나워의 건국정신이 서유럽의 최전방에서 소련의 적화를 막아냈고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콜 수상의 11월28일 ‘10개항 통일단계안’제안은 아데나워 반공통일 원칙의 재확인이었다. 10개항 대로 독일은 통일을 한다.

1926년 생인 김대중 대통령은 74세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비행기로 방문해 공항에서 영빈관까지 우리측 수행원 없이 혼자 김정일의 전용차를 타고 북측 인사에 연금(?)된 채 40여 분간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과연 이번에는 1946년 생인 61세의 ‘노짱’ 노무현 대통령을 북한이 얼마나 잘 모시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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