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김영삼·김대중은 끝나가는 역사의 마지막 장식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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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언어를 찾아야
  
  ―결국 엄청난 규율 속에서 창조가 탄생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규율이란 노력을 의미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생을 하나도 안하고 하룻밤에 책 한 권씩 써내는 줄 아는 모양인데, 말도 안됩니다}
  
  ―책을 쓸 때 사전 준비과정이 깁니까.
  
  {완벽하게 구성을 한 후에 씁니다}
  
  ―구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잡지에 쓰는 컬럼의 경우는 두 세 시간 정도면 되지만, 책 한 권을 쓰려면 적어도 한 달은 집약적으로 구상을 합니다}
  
  ―金교수님께서 우리 국학을 비판하면서 [기만적 언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언어는 기만적·위선적이다. 외래언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외국의 논리에 그대로 대입시켰다] 특히 종속이론을 비판하면서 이런 주장을 폈지요. [우리의 언어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다. 남의 것을 차용해서, 일본처럼 자기 것으로 변형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야 21세기의 한국에서 국학이 출발할 수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주자학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퇴계가 등장할 무렵에는 주자학이 자기언어화 되었습니다. 조선 말기에 우리 언어는 살아 있었습니다. 이제마(李濟馬.조선시대의 한의학자·사상(四象)의학의 시조)와 동학관계 등을 연구하다보니 한의학이라고 하지만 19세기 우리의 언어는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20세기는 다릅니다. 우리의 언어를 상실한 겁니다. 한문에서 한글로 이행해가는 시기인데 아직도 한글이 자기화가 안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20세기는 서양을 배우는 데 광분한 시기였습니다. 물론 그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나는 우리나라 유교문화, 양반문화의 마지막을 보고 자란 사람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조선조의 여인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1965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6·25 직후 엉터리로 학교를 다닌 세대는 아니라는 거지요. 옛 미덕이 그대로 살아 있고,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는 시기, 이 중간자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이제 정신을 차릴 때다]라는 자각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배운 한글은 영어나 마찬가지였어요. 우리화(化)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한글운동은 성경이 한글로 번역된 후에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한글문화라는 것이 나왔지요. 20세기에 한글사용이 확대된 데는 전적으로 기독교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는 우리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동양학으로 가는 본질적인 자각이었던 겁니다}
  
  일본은 신화적, 한국은 非신화적
  
  ―지금 말씀하신 [언어]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지식·문화·논리 등을 포괄하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고전의 번역은 문명의 번역이다]라는 말도 하셨고, 번역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던데, 그것을 읽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결국 어느 시대에 외래문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대학교 때 우리나라에 번역다운 번역은 성경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지금 보면 성경도 그리 잘 된 번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어쨌든 그것은 민중의 언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자각이 내 일생을 지배해 왔습니다. 우리 학문과 문화가 살려면, 동양의기초가 되는 고전을 우리말로 철저히 번역해야 합니다. 이 신념은 죽을 때까지 변함 없을 것입니다.
  
  ―[삼국유사 인득(引得)]이 그 첫 작업입니까.
  
  {제가 하는 고전 번역작업은 크게 한국고전과 중국고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국고전 번역은 한국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기초 단어장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죽기 전에 중국의 기초 경서를 다 번역할 생각입니다. 삼국유사는 위대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먼저 했습니다. [삼국유사 인득] 한권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한자의 용례를 다 알 수 있지요. 제대로 학문을 하려면 이런 책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삼국유사가 어떤 의미에서 국학의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에게 처음으로 [아이덴티티]를 주었습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고려말 사람인데, 당시는 송나라와 요나라 등 열강 사이에 있었고, 몽고의 침입까지 받았습니다. 일연은 바로 이런 시대에 활약한 고민하는 사상가였지요. 일연이 그러한 상황에서 왜 그 책을 썼겠습니까. 일연은 아주 기발한 사람입니다.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그것이 아주 확연하게 드러나지요. 니혼쇼키(日本書記)나 고지키(古史記)는 우리보다 4세기 정도 빠릅니다만, 일본인들은 신화적 세계를 신화로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신화]를 기록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신화적인]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연은 [신화]라는 것을 알고서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비신화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 차이는 일본과 우리를 크게 갈라놓았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고사료가 많다고 부러워하지만, 그 속의 일본인들은 아직 신화단계를 못 벗어났습니다. 신화적 멘털리티를 갖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들은 개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일연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통일성]을 주려는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일연은 신화를 역사로서가 아니라 [신화]로서 다루어 우리에게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단군신화는 신의 이야기이니 믿으라는 식이 아닙니다. 이상한 일을 기록하니 한번 들어보라, 즉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한번 들어볼 만하다는 식의 기술입니다}
  
  ―일본에 천황제가 존재하는 것도 바로 신화적 정신세계 위에서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혁명이 없어요. 천황 밑에서 쇼군만 변할 뿐 왕조가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을 합니다. 저는 6·29도 혁명이라고 봅니다. 노태우 대통령도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단계에 따라 그런 사람도 필요합니다}
  
  한국 역사의 3대 사건
  
  ―일본을 동양 속의 서양이라고 표현하신 글을 봤습니다. 중국에 도전한 세력이고 또 주관적인 입장에서 외국문물을 잘 [번역]했다고 하셨는데, 일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아주 어렵고 미묘한 문제입니다. 일본문명은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신화성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민족의 비(非)보편성 즉, 편협성을 의미합니다. 일본인들끼리의 게임은 아주 멋있게 합니다. 그러나 그 규칙이 다른 데서는 통하지 않아요. 일본이 현재 이루고 있는 성공의 비결은 모두 이 특수성에서 나옵니다. 천황을 모르고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어요. 일본에는 신화적 주체가 있으니까 어떤 경우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주체가 확고합니다. 그래서 외래문물을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문명은 인본주의적이지만 배타성이 강해요. 지조가 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또 우리나라는 주리론이 강한데, 일본에서는 주기론이 항상 이깁니다. 일본은 형식보다는 실질을 취합니다}
  
  ―중국이라는 큰 나라 옆에서 우리 나라가 문화적 독창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 최대의 기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통일문제에 비추어 본 삼국통일의 의미, 그리고 한글창제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그것은 이미 대학교 다닐 때 생각해둔 건데…. 저는 우리 역사의 3대 사건으로 삼국통일과 한글창제를 꼽고 제3의 것은 정하지 않고 남겨 두었어요. 앞으로 통일이 되면 그것이 세 번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만…. 첫 번째 사건인 삼국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적인 아이덴티티를 주었습니다. 아마 고구려 백제 신라의 말은 서로 달랐을 겁니다. 통일신라가 한자를 도입한 것은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두 번째 사건은 한글창제인데 세종대왕은 중국문명 속에서 한국문명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자를 갖게 된 것은 일본이나 거란보다도 늦었습니다}
  
  역사는 도박을 필요로 한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유신은 화랑이지요. 화랑에 대해서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화랑을 육군 소위쯤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쉽게 설명하면 [달라이라마]에요. 화랑은 철저하게 불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왕생한 부처를 의미하고 또 미륵사상과도 연결되어 있지요. 국가에 화장이 서게 되면 그들에게 엄청난 힘을 줬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성한 권력(sacred power)]인데, 이들은 강력한 종교집단을 형성해 사회적인 응집력을 발휘했습니다. 당시는 불교가 들어온 지 2백년 밖에 안됐을 때입니다. 그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화랑은 매우 창조적인 것이었지요. 바로 이런 창조성을 갖출 수 있어야 앞으로 우리의 통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金교수님께서 어느 수필엔가 [역사는 거친 손이다]라는 글을 쓰신 것을 봤습니다. 그 내용이, 어떤 학생이 원고청탁을 하는데 그 태도가 아주 오만불손하더라, 그러나 그 학생이 요구하는 주제는 민주화와 관련된, 거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렇게 거칠게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의 거친 손이 아니겠느냐,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6·29 이후 그 [역사의 거친 손]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역사는 70∼80%의 정의는 실현할 수 있을지 몰라도 20∼30%의 희생자를 만듭니다. 정교한 선별능력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역사는 도박을 필요로 합니다. 도박을 하지 못하면 역사를 창조할 수 없어요}
  
  ―최근세 한국역사의 가장 거대한 도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구한말의 [동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학의 개벽사상은 단순히 정치적 인물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양식, 사고, 문화가 완전히 변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주는 패러다임을 뜻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도 우리 민족이 영원히 의지할 수 있는 총체적·문화적 패러다임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과학적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비전을 한의학에서 구하고 있어요. 만일 이 패러다임에 성공하게 되면 기존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생물학이 등장해 인류의 보편과학이 될 것입니다. 서구가 그동안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 때문이었습니다. 물리학은 이 세계를 수리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할 수 있으니, 우리는 꼼짝도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것과 맞먹는 맞바람을 하나 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20세기에 식민, 독재, 전쟁, 민주화 등 다양한 경험을 압축적으로 겪으며 살아왔어요. 이제 그 축적 위에서 과학과 철학이 통합된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이 성립돼야 합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무의미해집니다}
  
  한의학으로 노벨 의학상 받겠다
  
  ―그렇다면 지금 한의학을 배우는 이유는 치료법이 아닌, 생명의 본질을 설명하는 다른 언어를 얻기 위해서입니까.
  
  {서양의 생물학과는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사실 지금까지 제가 써온 글들은 제 생각의 껍데기의 껍데기만을 보여준 데 불과합니다. 음양오행으로 어떻게 새로운 과학을 만드느냐, 그것을 보편적인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단계까지가 10년 작업입니다. 이 생각은 20여년간 내 머리 속에 깊이 박혀 있는데, 지금까지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도 쓰지 않았어요. 나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내가 글을 막 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써도 되는 것만 그런 식으로 씁니다. 함부로 천기를 누설할 수는 없어요. 내글은 내 생각의 1천분의 1도 안되는 겁니다}
  
  ―지금 한의학과 본과 1학년이신데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하실 계획입니까.
  
  {바로 개업해야지요. 의사는 환자를 다루고 실험을 해봐야 돼요. 그것은 대학의 연구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프로이드나 융의 이론도 다 임상결과를 기초로 한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게 내가 원하는 환자만을 선택하느냐가 고민이겠지요. 내가 원하는 것은 치료를 통해 어떤 이론을 만드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불치병으로 알려진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앞으로 10년 안에 노벨의학상을 받을 것입니다}
  
  ―金교수님께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비교해서 쓰신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본주의는 본연이고, 공산주의는 당연이다. 자본주의는 유욕의 현실이고 공산주의는 무욕의 이상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주인이고 공산주의는 객이다…] 대단히 직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멸망한 이후 자본주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첫째는 자본주의를 순화시키는 것, 둘째 자본의 논리를 생태학(ecology)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金교수님께서는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즉 시장경제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게 있어야 울고 싸우고 하는 인간사가 이어지겠지요}
  
  북한은 조선조의 연장이다
  
  ―金日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한번 썼어야 하는데 아직 못썼습니다. 제가 북한을 보는 눈은 대학시절에 정리해 둔 것입니다.
  첫째 북한은 일제의 청산이라는 점에서는 한국보다 정통적이고 탁월합니다. 후세의 사가(史家)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둘째는 사회평등의 문제입니다. 평등은 계층이동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총체적인 변화를 통해 자체적으로 생겨나야 합니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하는 데 걸맞는 자연스러운 계층이동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계급혁명을 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경우처럼 새로운 계급이 등장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은 학생들의 투쟁을 통해 그래도 평등을 지향하고 있지만, 북한에는 민중적 차원의 투쟁은 없었습니다. 일제시대 빨치산 투쟁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이 더 공산주의 혁명에 가까운 나라입니다.
  
  셋째 북한은 아직까지 조선조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북한은 철저한 이씨왕조의 연속입니다. 현대 한국사회를 이해하려면 조선사회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조선왕조는 집중적 관료체제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고, 유교문화와 관련이 있지요. 북한을 볼 때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연속선 위에서 보아야 합니다. 김일성은 일종의 왕입니다. 우리가 김일성을 볼 때는, 그것을 유지시키는 우리 민족의 멘털리티에 초점을 맞춰봐야 합니다. 이 멘털리티야말로 조선조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金日成을 우리 역사의 돌연변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아닙니다. 김일성의 존재를 만든 우리 민족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에 내재한 광신주의(fanaticism) 샤머니즘, 그리고 반이성적인 특성 때문이지요. 이러한 성향은 엄청난 자원도 될 수 있지만 긍정과 부정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金日成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에 따라 존재해 왔다고 봅니다. 마치 우리 사회가 朴正熙 대통령을 필요로 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한이 우리보다 진화가 덜 된 것이지요. 지금으로서는 金日成이 명예퇴진하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 정밀성 높여야 한다
  
  ―金교수님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떤 열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이 뜨끈뜨끈하다고 할까요. 마치 무병에 걸린 듯한 심리상태의 느낌도 들고….
  
  {양면성이 있지요. 냉철하기도 하고 열정적이기도 하고…. 바로 그것이 동양사상의 위대한 점이고, 제가 동양사상에 대해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성과 감성, 동양사상은 이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러나 서양학문은 그렇지 않아요. 항상 한쪽 면을 강조하는 식이지요}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이런 샤머니즘적인 특성 때문에 예술에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도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에는 기질적으로 부적합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정밀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을 영원히 따라가지 못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거친 나라가 없어요. 물론 한국인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서구에서 독일인은 매우 정밀하지만 디자인은 엉망입니다. 디자인하면 이태리지요. 그게 다 각각 살아가는 방식인데…. 한국도 정밀 제조업보다는 디자인쪽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운동도 추진하고 있어요. 그 점에서는 일본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상가들은 우리 민족의 장점을 개발해야 하지만 단점을 보완하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내가 번역작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우리 민족문화의 정밀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안되면 불편해요. 아주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은 되어야지요. 정밀성을 높이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교육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선 좋은 교육기관을 만들어야 하고, 훌륭한 인재들이 자부심을 갖고 사범대학에 지원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보감]은 종합적이긴 하지만 창조적인 성격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의 기본 관점은 송·원대에 이미 개발된 이론들입니다. 현지 사정을 중시한 점이나 향약을 포함시킨 점이 특징이지요. 그러나 [지역성에 맞는 학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송·원대에 등장해 중국의 의학이 장강(長江) 이남과 이북의 두 경향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동의]라는 것은 중국에는 없는 말인데 저는 동의 계열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람은 이제마라고 봅니다. 정약용의 의학사상도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었고…}
출처 : 월조
[ 2003-07-11, 14: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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