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캐릭터의 친구>

고등학교 동기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같은 해 사법고시를 합격했다. 삼십대 전반 비슷하게 변호사가 됐다.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자주 만났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졸병으로 군대에 갔는데 대장 관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당번병이 된 거야. 편하다고 모두 바라는 자리였지. 밥도 대장 가족하고 같이 먹고 말이야. 그런데 밥을 먹을 때마다 대장 부인이 기도를 하는데 남북의 평화부터 국가를 위하고 남편의 건강까지 밥을 앞에 놓고 끝도 없이 늘어나는 거야. 어느 날은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도중에 나가버렸어. 그걸 대장인 남편에게 일렀는지 내가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일이 있어. 그 다음부터는 장황한 기도를 길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위선처럼 보여.”

그는 입만 화려하고 사랑이 없는 기독교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진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제대를 하고 회사에 취직해 다니는데 정말 힘들더라구.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퇴근했어. 그때가 이십대 중반의 팔팔한 나이인데도 어떻게 피곤한지 여자 생각도 나지 않더라구. 한번은 상관이 내게 ‘아부하는 법’이라는 책을 가져다주면서 보라는 거야. 내가 뻣뻣해 보였나봐. 같잖아서 안 봤지. 그 다음 회의 시간이었어. 상관이 나보고 봤느냐고 물어서 안 봤다고 했더니 그렇게 말을 안 들을 거면 회사는 왜 다니느냐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그럼 관두겠다고 했더니 말로만 하지 말고 사표를 쓰고 도장을 찍어서 제출하라는 거야. 그래서 사표 쓰고 도장 찍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어. 그랬더니 당황하더라구.”

세상은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굴종을 요구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굽혀야 하는 조직문화에 치를 떠는 것 같았다. 당시 총각이었던 그는 절박한 상황은 아니어서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집안의 천대에 대해 말했다.

“집에서 내 방에만 틀어박혀 죽치고 있으면서 룸펜 생활을 했지. 하루 종일 이불도 개지 않고 창문도 열지 않고 어두운 방에서 가만히 있었어.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천대를 하더라구. 아버지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그 무렵은 전화국장을 하고 있었거든. 백색전화 청색전화를 구별해서 그게 부동산 이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을 때였지. 사회적으로 관료로 성공했다는 아버지의 천대도 만만치 않았지. 어느날부터 방에서 법서를 읽기 시작했어. 밤이고 낮이고 책만 읽었어. 그리고 사법시험에 응시했지. 일차에 합격하고 이차 시험을 치기 하루 전인데 아버지가 친구들하고 집에서 모임을 하는 거야. 그중 한 분이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고등학교 일년 선배야. 같이 놀자고 공부하는 내 방으로 왔더라구. 참 입맛이 씁쓸했지.”

그는 나와 같은 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자 명단에는 오랜 룸펜 생활을 하던 홍준표씨도 추미애씨도 있었던 것 같다. 얼마 후 그는 서소문 뒷골목 빌딩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아무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노예도 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내가 하는 직업을 사랑하고 거기에 만족할 거야. 관료가 되거나 정계에 뛰어들어야만 사회에서 활동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

그는 외길 인생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20년간 변호사를 해왔는데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 2주일만 전화가 안 오고 사건이 끊기면 내 실력이 모자라는 게 이제 들통이 났구나 난 밥을 굶겠구나 하고 겁이 덜컥 났지. 그러면서 내가 지혜를 하나 얻었어. 걱정하지 않는 비결을 깨달은 거야. 수입 지출을 적는 장부를 절대 만들지 않는 거지. 그걸 만들면 전달에는 얼마가 들어왔는 데 하고 숫자를 비교하면서 속을 끓이는 거야. 경험해 보니까 우선은 수입이 없어도 몇년 단위 십년 단위로 끊어서 보면 들어올 돈은 들어오고 나갈 돈은 나가는 거야. 장부가 없으면 걱정도 없어져.”

그건 어떤 깨달음 같기도 했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나오지 않고 살았다. 그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도 거의 이십 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에는 공증 업무를 하는 칠십대 노인 변호사로 일을 계속한다고 했다. 변호사 생활 사십년을 넘겼는데 더 하려는 모양이다. 세상은 그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