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하경 칼럼/시민혁명 원년, 박정희와 결별하자>를 읽었다. 

이 주필은 <박근혜 대통령은 민심과 국회에 탄핵됐지만 55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축조한 획일적 국가주의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은 현재진행형이다>고 했다.

박정희가 죽은 지 37년이 된다. 그 사이 8명의 대통령이 나왔고, 직선제 개헌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를 겪으면서 국가체제도 많이 변하였다. 그런데 그는 55년 전에 구축한 국가체제가 그대로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것도 국가주의의 앙시앵 레짐이란다. 국가주의 체제라면 공권력이 지배하는 체제인데, 어째서 경찰이 시위대에 매를 맞고, 대통령이 언론과 야당의 동네북이 되며, 경찰이 부검영장을 집행하지도 못하고 공무집행을 막은 자를 처벌하지 못하는가? 이게 국가주의라면 협회도 국가이다.  이 분은 '앙시앵 레짐'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앙시앙 레짐을 개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李承晩과 朴正熙이다. 두 사람 덕분에 한국인들은 조선조적인 守舊性과 식민 지배에서 비롯된 타율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18세기적 현실을 비판하기 위하여 만든 개념에 21세기 한국을 무리하게 대입하면 衒學的(현학적) 과시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한 분석엔 실패한다.

<이기적 욕망과 상실의 공포가 교차하는 혼돈의 경계에서는 양심과 정의 대신 복종과 타협을 선택하라고 유혹하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예외 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다. 저널리즘 문장으로선 적절하지 못하다. 기사문은 짧고 쉽고 정확해야 한다. 진정한 박정희 패러다임은 정신적 自助-경제적 自立-군사적 自主를 기반으로 自由통일을 이룩한다는 대전략인데, 李 주필은  멋대로 복종을 유혹하는 것이라 억지를 부린다.  

이 주필은 <그는 불통의 담을 쌓고 비선 실세 최순실과 공동 정권을 운영해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모욕했다>고 주장한다. 야당이나 운동권 성명서 수준의 과장이다. 박근혜-최순실 공동정권이라면 이의 존재를 알리지 못한 중앙일보는 취재력의 부족으로 지난 4년 동안 국민의 알 권리를 배신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오늘의 時局을 <후천개벽(後天開闢) 전야의 상황>이라 표현하였다. 일곱 차례의 촛불 제의(祭儀)를 통해 마침내 앙시앵 레짐의 신민(臣民)이라는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났기 때문이란다. 祭儀라는 말은 문학적이기도 한데 적절한 용어 선택은 아니다. 祭儀를 통하여 인간 해방을 이루는 것은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古代라면 몰라도 현대 민주국가에서 할 일이 아니다. 李 주필은 촛불 시위 전에는 한국인들이 ‘앙시앵 레짐의 臣民’이었다고 보는데 과연 그런가? 신민이면 권력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데 우리가 두 달 전까지 그런 삶을 살았나? 대통령을 욕한다고 잡혀 간 적이 있나? 이는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력에 대한 모독이다. 더 나아가 한국인 전체에 대한 모독이다.

 <이들은 지난날로 돌아가면 죽은 박정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죽은 박정희의 포로? 詩文이라면 몰라도 언론 문장으로는 부적격이다. 산 박정희의 포로가 된 적도 없는데 죽은 박정희의 포로가 될 한국인이 어디에 있을까? 혹시 중앙일보 논설실에 있나?

<촛불 혁명은 앙시앵 레짐에 의해 훼손된 정의와 시민적 가치의 지체 없는 회복을 명령하고 있다.>

이 문장 역시 운동권의 선언문 수준이다. 李 주필은 혁명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혁명이 났다면 체제가 무너져야 한다.  자유민주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공산독재로 가든지 군부독재로 가든지 독재화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혁명을 거부한다.  보수는 혁명을 막아야 한다. 혁명은 과거 부정, 역사 부정, 특정 계급 숙청을 동반한다. 피가 흐른다. 그런 혁명과, 혁명이란 말을 李 주필처럼 즐겨 쓰는 '혁명놀이'는 구별해야 한다.

 <삼엄한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시민의 고단한 일상과 희로애락의 숨결이 느껴지는 가깝고 소박한 공간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4·19 혁명은 이승만을 몰아냈지만 5·16 쿠데타를 막지 못했고, 6월항쟁은 전두환을 심판했지만 쿠데타 세력의 집권 연장을 허용했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5·16 군사혁명을 부른 것은 4·19혁명 이후의 혼란상이었다.  6월사태는 전두환을 심판한 적이 없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노태우와 함께 6·29선언으로 직선제 요구를 수용, 평화적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두 사람은 한국 민주화의 기여자가 된 것이다.  이 점을 평가한 국민들이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보다 노태우에게 더 많은 표를 던진 것이다. 6월 사태가 전두환을 심판하였더라면 그때 그를 감옥에 보냈어야 한다.

노태우 정부는 선거로 선출된 정통성 있는 정부였다. 이를 '쿠데타 세력의 집권 연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이고 한국의 민주주의 건설 과정에 침을 뱉는 것이다.  

<당신들은 앙시앵 레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한국에서 누가 기득권 세력인가? 법과 상식과 견제가 통하지 않는 특권층이 기득권 세력이다.  제왕적 국회, 귀족 노조, 선동 언론, 정치 검찰, 좌경 NGO, 지방자치단체장들이다. 당연히 중앙일보도 기득권 세력이다. 이하경 주필의 공허한 高談峻論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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