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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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추진 과정을 보면서 착잡함을 느낀다. 반복되는 역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문·안 두 후보는 단일화 추진의 명분으로 ‘새 정치’를 내세웠다. 오늘의 단일화가 그 자체로서 새 정치이고, 과연 새 정치를 위한 것인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새 정치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이미 2002년에 사용되었던 방법일 뿐 아니라 크게 보아서는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도 단일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이 네 번째 시도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중요한 질문은 단일화가 ‘새 정치’, 즉 정치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의 경우들을 보면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 정치’에 기여하려면 우선 단일화의 정신이 지속되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 앞서 예로 든 3차례의 경우, 단일화가 선거에서 이기는 방편은 되었지만 해피엔딩은 아니었고 단일화 당시의 약속들도 지켜지지 못했다.

1990년 3당 합당의 이면합의는 내각제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3당 합당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 총재는 5년 만에 탈당했다. 1997년 DJP 연합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합쳐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김대중-김종필 두 사람을 이어준 고리도 내각제였지만 결국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되고 말았다.

2002년에는 남북관계를 포함한 우리의 외교안보 기조를 신중하게 다루어나가자는 정책합의가 있었지만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약속은 파기됐다.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우리가 말리면 된다는 노무현후보의 유세 발언은 미국을 북한과 동일시 하는 것으로 우리의 합의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 발언이 결혼하면 바람피우겠다는 약혼자의 선언처럼 들렸다면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었을까?

90년과 97년의 단일화와 2002년 세 번째 단일화의 차이는 단일화의 모양새가 얼마나 지속되었느냐 하는 것이지만 세 번 모두의 공통점은 단일화합의문에 서명하는 순간 그 취지와 정신은 바로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단일화의 플래카드에는 ‘새 정치’가 적혀있다. 새 정치는 ‘새 정치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제도와 정치문화가 나와야 한다. 공천장사와 파벌 정치로 허약해진 정당과 국회를 살리겠다고 한다면 새 정치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는 새 정치에는 정당파괴와 국회경시가 있을 뿐이다. 정치혐오를 부추겨서 선거의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낡은 정치’이다.

이와 관련해 글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눈앞에 전개되는 불쌍한 광경을 보자마자 분개했다. 마침 중요한 경제적 의의를 가진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었는데, 제안자들의 연설 내용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수준이하의 것이었다...(중략)...정말 희극적인 광경이었다. 2,3주일 뒤에 나는 다시 의회에 가보았다. 그러나 전과는 달랐으므로 인식을 바꾸어야만 했다. 회의장은 텅 비어 있었다. 두서너 의원은 자리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었고, 한 사람은 연설을 하고 있었다. 부의장이 있었지만, 그도 지루한 듯이 멍하니 않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 국회의 모습을 그린 것 같기도 한 이 글은, 청년 히틀러가 의회에 가보고 느낀 소감을 자서전 ‘나의 투쟁’에 기록한 것이다. 히틀러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절대권력의 자리에 오른 것도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이다.

이 글을 보면서 얻는 교훈은 국회와 정당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회는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특별한 기관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국회와 정당이 보기 싫다고 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배탈이 자주 난다고 해서 위장을 제거해버리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제의 속성상 권력은 나눠가질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단일화는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앞으로의 단일화에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번의 단일화가 ‘새 정치’라는 명분을 걸었는데 이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솔직한 자세인가 하는 점이다. 문·안 후보의 단일화 과정이 서로를 속이면서 결국 국민을 속이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단일화 시도에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당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당선자가 과반의 득표를 하기가 어렵다.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게 되기 쉬운 구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결선투표가 필요한데 아직은 없다. 단일화는 이런 점에서 일종의 먼저 실시하는 결선투표다.

하지만 단일화 자체는 문제를 보완하는 역할보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더 많이 낳게 된다. 단일화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정책 선거를 어렵게 하고 후보의 검증을 늦춰서 국민을 오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정치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으로 몰고 간다. 단일화의 긍정효과란 제도를 잘 정비해서 애초에 단일화의 유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단일화로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에 ‘좋다, 좋다’ 하면,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인지, 똑같은 사람들로 신당을 만들면 새 정치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단일화가 민주주의 발전과는 관련 없는 단순한 선거이벤트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배웠는데 한 가지 더 우려되는 것은 이번 단일화가 대통령 선거를 정책 대결이 아니라 선악의 대결로 만들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이 16세기의 종교전쟁이나 18세기의 프랑스 혁명 시대도 아닌데, 나는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는 식의 독선과 위선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인식은 ‘새 정치’를 할 수 없게 만들 뿐 아니라 정치 이전에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를 파괴한다. 우리의 공동체가 기초에서부터 흔들린다면 좋아할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과거에는 단일화가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지만 그것이 철칙은 아니다. 단일화라는 똑같은 가락을 여러 번 듣다보면 국민들도 많이 들어본 노랜데 하며 식상해 할 것이다.

앞으로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서 더 이상 단일화 얘기가 안 나왔으면 한다. 우리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진정한 새 정치가 가능하다.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정치도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2012.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