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왜 김용민 싸고도나?
막말은 김용민이 원조인가? 김용민 이전에 악풀이 홍수처럼 범람했다. 악풀 이전에 악랄한 전화부대가 활개를 쳤다. 영화 대사에서 쌍 시옷이 판을 쳤다. 지나가는 예쁘장한 여중생들이 쌍 시옷을 예사로 내 뱉었다. 직접 목격한 실제 상황이었다. <나꼼수>와 김용민 현상은 그런 홍위병 트렌드의 절정이었다.
그들 쌍 시옷 부대들은 무엇인가에 대드는 반항아들이다. 그러나 그 반항은 잔느 다르크 같은 거룩한 반항이 아니다. 권위주의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도 아니다. 민주화가 열 번 됐다 해도 그들은 쌍 시옷으로 대들 것이다. 무엇에? 자신들의 ‘제멋대로’를 나무라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상대방에게, 부모에게, 선생에게, 기성세대에게, 노장층에게, 자기들보다 500원 더 가진 사람에게, 자기들보다 더 좋은 학교 나온 사람에게, 규칙에, 법규에, 규범에, 금기(禁忌)에, 젠틀(gentle)한 것에... 이것을 그들은 ‘진보’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으로는 데카당(decadent), 심리적으로는 성전(聖戰)의식, 종교적으로는 컬트(cult), 사회적으로는 영구혁명론(permanent revolution), 위생(衛生)적으로는 ‘인격 장애’다. 이런 충동들은 어느 사회, 어느 곳에나 있다. 인간 내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그게 지표면을 뚫고 솟구쳐 올라 용암의 바다를 이루는 상황이다. 선동가들과 음모가들의 조작(操作)에 의해.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통제 장치를 깨는 게 선동가와 음모가의 노림수다. 깨부수기는 언어의 절제를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쌍 시옷의 잠금장치를 벗기면 집단분노를 동원하는 게 아주 쉽게 된다. 광장과 인터넷을 쌍 시옷 분노군중이 점거한다. 여기에 “개 xx들 죽여라!”고 한 마디만 던지면 된다. 점화(點火)다. 카네티(Canetti)가 말한 불꽃 현상이 일어난다. 검붉은 화염(火焰)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그게 하늘을 덮는다. 작은 불씨 하나가 요원(遼遠)을 태운다고 마오쩌뚱이 말했던가?
막말은 도덕적인 우상파괴를 거쳐 사회적인 우상파괴로 직행한다. 파괴해야 할 우상이 있는 때도 물론 있다. 인권 억압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아니다. 그런 건 휴전선 넘어 있다. “위대한 수령...” 어쩌고 하는 것에 “이거나 먹어라 !” 해야 때와 장소와 대상을 적중한 막말, 아니, 풍자가 된다.
우리는 민주화가 진행 중인 과정에 있다. 민주화는 지난날의 억압에 대한 저항을 거쳐, 오늘의 지나침에 대한 절제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절제력이 임계점에 달해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대체권력임을 자임하는 사람들마저 김용민의 지나침을 싸고도니...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ㅆ'(쌍시옷) 부대 비호 세력이 된 민주당
- 류근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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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6,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