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3년 3월7일字 1面

‘SKY’엔 친절한 설명 붙이고, ‘자사고’는 純한글로 표기

신문은 1面(면)과 8면에 ‘2013년도 대학 진학 실적’을 전하며 ‘SKY 200클럽’에 포함된 고교들의 名單(명단)을 소개했다. ‘SKY 200클럽’이란 서울·고려·연세대 3개 대학에 200명 이상 진학시킨, 소위 명문대를 많이 보낸 고교를 의미하며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自私高)’ 6곳이 여기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1면 기사 제목은 <‘SKY 200 클럽’에 외고는 대원·용인, 자사고선 상산고>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제목을 가장 먼저 읽는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 한자 표기[혹은 倂記(병기)] 없이 ‘자사고’라고만 쓰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반면, ‘SKY 200클럽’에 대해서는 1면 기사 제목 하단에 ‘200명 이상 합격’이란 설명을 달아 놓았다. 1면 본문에도 ‘SKY대’라고 쓴 뒤 괄호로 ‘서울·고려·연세대’라고 병기해 놓아, SKY가 이 대학의 英文 앞 글자 이니셜(Initial)을 딴 약자의 조합 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제목에 純(순)한글로 표기된 ‘자사고’는 신문 1면 본문과, 8면 하단에 달린 脚註(각주)의 설명(이 또한 純한글로 작성됨)을 읽어야 비로소 ‘자사고’가 ‘자율형 사립고’인지를 알 수 있다. 1면 기사 본문을 보면 “재학생 대비 SKY대 합격자 비율이 82.1%로 전국 외국어고, 국제고, 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자율학교 중에서 가장 높았다”고 적혀 있다.

영어 약자에는 친절한 설명을 병기하면서, 정작 國語를 표기하는데에는 한글 약자만 써 놓은 것이다.

自私高, ‘자율형 사립고’인가, ‘자립형 사립고’인가?

기사 제목만으로는 ‘자사고’가 ‘자율형 사립고’를 의미하는지, ‘자립형 사립고’를 의미하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사실 두 개는 다른 형태의 학교다.

‘자율형 사립고’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등 관계법령에 의거해 만들어진 고교다. 사립학교의 建學(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 학사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학교별로 다양하고 개성있는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고교다.

이는 ‘자립형 사립고’와는 다르다. ‘자립형 사립고’는 2002년 평준화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모든 학교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現行(현행) 교육관련 법규에서 벗어나 학교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학교[2009년 9월, 해운대고(부산), 현대청운고(울산), 민족사관고(강원), 포항제철고(경북), 상산고(전주), 광양제철고(전남) 등 6개 학교가 지정되었다]다.

두 학교는 학교 지정권자, 학생 모집, 敎科(교과)운영 형태가 다르다. 자율형 사립고는 市·道 교육감이 학교 지정권자다. 자립형 사립고는 교과부 장관이다. 자립형 사립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지만 자율형 사립고는 ‘지역제한제’가 적용된다. 광역 市·道별로만 모집할 수 있다. 자립형 사립고는 국민공통교육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나 자율형 사립고는 국민공통교육과정의 일부를 자율로 할 수 있다.

2010년 2월 자립형 사립고는 자율형 사립고와 흡수·통합되어 현재 자율형 사립고로 通稱(통칭)되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독자들은 ‘자사고’를 자립형 사립고로 誤認(오인)할지 모른다.

한글 專用, 國語를 ‘暗號化’하고 ‘文盲化’ 초래

이 기사에 쓰인 한자는 1면과 8면을 통틀어 한 개에 불과하다. 8면 ‘서울 대 비(非)서울’이라는 데에서 쓴 ‘아닐 非’자가 그것이다. 이 기사에서 한자를 표기(병기)해야 할 단어를 꼽으면 다음과 같다.

▲ 본지 → 本紙   ▲ 외고 → 外高   ▲ 정원 → 定員  ▲ 대입 → 大入 
▲ 상위 → 上位   ▲ 지필 → 紙筆   ▲ 선발 → 選拔  ▲ 부진 → 不振

모두 同音異議語(동음이의어)의 단어들이며 이는 한자로 써야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한자를 쓰면, 각각의 의미를 통해 단어의 의미를 類推(유추)할 수 있어 내용을 파악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긴 語句(어구)를 몇 개의 한자로 표현할 수 있어 紙面(지면)의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우리 말의 70% 이상이 한자로 표현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올바른 國語 문화를 선도해야 할 한국 언론이, 한글 專用으로 國語를 ‘暗號化(암호화)’시켜 ‘文盲化(문맹화)’를 초래한다는 비판과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 <중앙일보> 기사 역시 한글 專用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