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하하 죽였다”

- 점박이는 세 어린이를 유괴 살해 후 경찰서에 알렸으나…- 두 어린이를 죽게 한 경찰의 은폐와 날조- 한 연쇄 유괴 살인범의 심리

‘국민의 파수꾼’인 경찰은 살인마의 출현을 알고도 시민에게 아무런 경계경보를 발하지 않았다. 경찰의 직무유기였다. 그래서 이 땅에 있어야 할 어린 두 생명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趙甲濟 <1982년 7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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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 21일. 목요일이었다. 더위는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었다. 아침의 부연 공기는 벌써 불볕으로 달구어지고 있었다. 부산시 중구 중앙동 중부 경찰서, 동광동 언덕 밑에 보이는 우중충한 시멘트 건물. 그 안에서 기자들은 경찰관들보다 두 시간 먼저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2층 상황실, 1층의 경범자 보호실엔 별 기사거리가 없었다. 전언(電言) 통신문을 뒤져도 기사가 안 되는 ‘물피(物被)’ 사고 따위만 눈에 띄었다.


1층 형사 당직실엔 뭔가 있긴 했다. 변사 보고서, 걸인풍의 열 살 가량 여자아이 시신이 21일 상오 6시께 용두산 공원 남쪽 계단 숲속에서 발견되었는데 맨발이었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으나 외상이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출입 기자들은 수첩에 이것을 옮겨 적었다. 아무도 흥분하지 않았다. 당직 형사가 기자들 앞에 이런 보고서를 내놓는 것 자체가 ‘별것 아닌 사항이다’는 것을 공지하는 것이라고 기자들은 생각했다. 다액 절도 사건이나 자그마한 강도사건만 되어도 보고서를 감추기 바쁜 그들이 아닌가.


그래서 사회부장에게 ‘우리 서엔 별일이 없었습니다’고 했다가 ‘뭐? 조용해? 택강이 있어! 택강이, 그것도 연쇄로’라는 식으로 창피를 당하기 일쑤인 경찰기자들이다. 경찰은 범죄 사건이 나면 다른 경찰서로 전통(電通)을 때려 범인 수배를 내린다. 사건 발생지인 관할 경찰서 형사들은 그 사건을 기자들에게 숨기지만 수배령을 받은 다른 경찰서 형사들이야 자기 경찰서의 일처럼 보안에 성의를 보일 리가 없다.


그러니 인접 경찰서를 출입하는 동료 기자가 사건을 먼저 알고 사회부 데스크에 보고해 놓으면 멋도 모르고 ‘간밤에 조용했다’고 보고해 오는 해당 기자는 물을 먹게 된다. ‘사인(死因)이 애매한데?’ 어느 기자가 메모를 하면서 말했다. ‘식중독이겠지, 이 더위에…’ 형사가 받았다. ‘아무리 거지 아이라도 맨발이라……, 요새 신발 못 사 신는 사람도 있나?’ 국제신보 박몽계 기자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대여섯 명의 출입 기자들은 현장으로 몰려갔다.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용두산 공원엔 비둘기들만 한가롭게 날고 있었다. 시신은 당감동 부검실로 보내지고 없었다.


기자들은 공원 초소로 갔다. 형사계장, 주임, 그리고 형사 몇 명이 있었다. ‘단순 변사 사건에 형사계장이 현장에 와?’ 기자 생활 6년째의 박몽계 기자는 속으로 새겼다. 타살 혐의가 없는 변사 현장에는 형사주임과 그 지역반 형사만 나가는 게 통례로 되어 있다. 형사계장이 아침에 조금 늦게 나온다든지, 형사 출동차가 안 보인다든지, 며칠 동안 눈에 안 띄는 형사가 있다든지, 이런 작디작은 기미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의 태동을 눈치채는 데 이력이 난 박 기자였다.


“이런 것 가지고 뭣하러 여기까지 옵니까?”

형사들은 농담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형사계장은 ‘타살 혐의는 없다’고 했다. 기자들이 꼬치꼬치 따지고 드니 ‘내 목을 내놓고 맹세한다’고 했다. 시체가 부검실로 가고 없으니 달리 더 알아볼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기자들은 형사들을 믿기로 하고 광복동 쪽 계단으로 다시 우르르내려갔다. 동아일보의 박문두 기자는 혼자 뒤에 처졌다가 평소 친밀한 형사계장에게 다짐을 받았다. 계장은 ‘나를 믿고 안심하고 내려가라’고 웃었다.


배 위에 쓴 낙서의 뜻은?


박몽계 기자는 내려와서도 ‘맨발’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적당히 구실을 만들어 동료기자들을 따돌리고 혼자서 다시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이번엔 공원의 사진사, 상인, 산책객들을 상대로 탐문(探問) 취재를 펼치기 시작했다.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기듯 그는 가려진 진실의 핵심을 향해 다가갔다.

“배 위에 사인펜으로 글이 씌어져 있던데요.”

“손발이 끈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셔츠를 찢어 만든 끈 같았습니다.”

박 기자는 한 시간쯤의 취재로 결론을 내렸다.


벌써 가판이 윤전기에서 쏟아지고 있을 정오 무렵. 그는 전화로 기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철호 사회부장은 ‘자신 있느냐?’고 몇 번이나 다그쳤다. 박 기자는 완강하게 특종임을 강조했다. “좋다, 밀고 나간다.” 유명한 사건기자 출신인 이 부장은 결단을 내렸다. 국제신보 배달판에서 ‘소녀 살해 유기’ 기사는 사회면 옆구리에 커트 제목으로 박혔다. 상대지 부산일보 사회면엔 ‘걸인풍의 여아가 외상 없는 변시체로 발견됐는데 식중독으로 죽은 것 같다’는 기사가 1단으로 났다. 부산일보의 그 기자는 중부 경찰서를 체크한 뒤 용두산으로 가지 않고 영도 고지대 불량 주택 철거 현장에 취재를 나가 있었다. 하오 3시 이철호 부장에게 이정수 시경 수사과장이 전화를 걸었다. 이 부장은 경찰 출입 기자 시절부터 말단 형사였던 수사과장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과장은 ‘우리 사이에 뭘 숨기겠느냐’면서 ‘그것은 단순 변사다, 부검하면 곧 알게 되겠지만 뺑소니 운전사가 유기한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 부장은 ‘당신은 시체를 직접 보았느냐?’고 물었다.

“보고만 받았다. 그러나 중부서 간부들이 장난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시신을 못 봤다. 그러나 우리 기자를 믿겠다. 우리 서로 부하들을 한번 믿어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지만 이 부장은 불안했다. 얼마 뒤 유흥수 시경국장의 전화가 걸려 왔다. 유 국장은 이 부장의 경남고교 후배다. 얘기는 앞서와 같았다. 후배와 친구의 항의 전화는 이 부장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뒤늦게 국제신보 기사를 본 중부서 출입 기자들은 이날 하오 경찰서에 모여들었다.

서슬이 시퍼렇게 서장과 수사과장을 닦아세웠다. 그러나 경찰은 살해 유기설을 일축, 국제신보 기사를 오보로 몰아세웠다. 이날 하오 2시께 영도구 남항동 1가 210번지에 사는 김석경 씨(당시 29세)가 변사 사건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 용두산 공원 경비 초소에 나타났다.


“어제 저녁 8시쯤 내 딸 현정이가 저녁도 안 먹고 집 바깥에서 놀다가 행방불명입니다. 그 죽은 아이가 혹시…”

경찰은 김 씨를 당감동 화장장 부검실로 데리고 갔다. 부검실에 안치된 아이를 보자 김 씨는 ‘혹―’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중부서는 이날 아침 이 사건을 단순 변사로 상부에 보고한 뒤 상오 11시에 부산 시경 관내 각 경찰서로 변사자의 신원 수배 전통(電通)을 보냈었다. 신원이 밝혀지자 중부서는 갑자기 단순 변사를 ‘교통사고 유기’로 바꾸고, 署 단위의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변사자의 신원이 밝혀지자 기자들은 김석경 씨 집으로 달려갔다. 김 씨 주변이 샅샅이 뒤져지기 시작했다. 국제신보 사회부는 이날 저녁 반신반의의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경찰이 계속 ‘살해 유기’를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기자들 가운데서도 ‘박 기자의 실수가 아닌가?’하고 속으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었다.


부검은 법의 정병호 씨의 집도로 이루어졌다. 사인(死因)이 밝혀졌다. 직접 사인은 ‘목눌림’이었다. 교살당한 것이다. 오른쪽 귀 뒤에는 둔기로 심하게 맞은 상처도 있었다. 박 기자의 특종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또한 중부서 형사 간부들의 몰락을 뜻했다. 중부서의 수사과장, 형사계장, 형사주임 등이 이 사건을 은폐, 날조하려고 꾀했음이 곧 명백해졌다.


기자들에게 사건 발생 사실을 숨겨 놓고 뒤에서 내밀히 수사를 하는 그런 행동과는 판이했다. 그들은 시경 수사과장과 시경국장에게도 허위 보고를 한 것이었다. 둔기로 맞은 외상(外傷) 흔적, 배 위에 쓰인 글, 목의 상처― 삼척동자가 보아도 타살이었다. 그들은 명백한 타살을 단순 변사로 바꾸기 위해 ‘외상과 글’을 보고서에서 생략해버렸던 것이다. 이 은폐 사건과 관련된 중부서 수사과장 및 계장 등 형사 일곱 명은 몇 달 뒤 징계를 받고 옷을 벗어야 했다.


현정 양(8세)의 배 위에 범인이 쓴 글은 ‘범천동 이××(마당 주 실제로는 실명이 적혀 있었으나 여기선 익명으로 한다)이 대신 공원에서 죽었다’였다. 삐뚤빼뚤 못 쓴 글씨였다. 기자들은 이 글을 해석하는 데 곤혹을 치렀다. 이××는 누구인가? 범인이 죽인 아이는 김 현정이다. ××와 ‘현정’의 발음은 서로 비슷하다. 범인은 그러면 김을 이로 착각한 모양이다. ‘대신 공원에서 죽었다’는 건 현정이를 그곳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용두산 공원으로 몰래 갖고 와 버렸다는 뜻이라고 그들은 해석했다. 왜 이런 낙서를 했을까? 필적을 남기면 증거를 남기는 건데? ‘엉뚱한 녀석이다’고만 기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현정 양의 부검 결과 범인이 변태적인 짓을 한 뒤 살해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낙서의 엉뚱함과 변태, 범인은 일단 정신질환자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범행 동기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범인은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전형적인 유괴 살해 사건과는 뭔가 좀 달라 보였다.


두 번째의 희생―‘후하하 죽였다’


사건 발생 나흘 뒤인 8월 25일, 월요일이었다. 충무동 로터리에서 송도(松島) 아랫길을 따라 송도 해수욕장으로 뻗은 왕복 4차선 차도의 왼쪽 해안. 그곳 매립지엔 늘 청과물 상자, 고기 상자들이 어지럽게 쌓이고 흩어져 있었다. 아침 6시께 수산센터 남쪽 매립지의 상자 야적장. 그곳에서 부산시 동구 좌천동 551번지 배석재 씨(당시 38세)의 막내아들 준일 군(5)이 시체로 발견됐다. 준일 군은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손발이 묶여 있었다. 끈은 이 아이가 입고 있었던 메리야스를 찢은 것. 입엔 신문지 뭉치가 쑤셔 박혀 있었다. 재갈 물림. 오른쪽 이마에 둔기로 맞은 듯한 상처 두 곳, 목은 노끈으로 세 바퀴 감겨 있었다. 배에는 또 낙서, ‘후하하 죽였다’―파란 볼펜으로 씌어져 있었다. 경찰은 필적과 범행 수법으로 미루어 현정 양을 죽인 그 범인의 짓으로 결론지었다.

닷새 사이에 두 어린이가 무참한 죽음을 한 것이었다.


후하하, 후하하, 후하하……… 어린이의 보드라운 살갗을 빌어 장난기까지 서린 낙서를 한 범인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아무리 사소한 범행에도 동기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사람을 죽이는 데서랴. 그것도 두 목숨이나 해치웠지 않은가? 어떤 인간이 살의(殺意)의 결단을 내리는 그 순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말한 시인도 있었다. 살인 그 자체는 나쁘다. 다만 무수한 주저와 갈등과 고뇌 끝에 살인을 결심하게 되는 섬광과 같은 그 순간엔 처절한 미학이 있다는 것이다. 이 미학은 물론 인간적인 고민의 축적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 ‘후하하’ 범인의 살의는 무엇인가,

원한인가? 두 어린이 가족의 어느 누구도 그런 원한을 샀을 만한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돈인가? 범인은 누구에게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변태 욕구의 만족을 위한 살인인가? 현정 양에 대한 소행을 보면 그런 흔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준일 군은 남자가 아닌가. 머리를 길러 예쁘장하게 보여 여자아이로 잘못 보고 유괴했다는 해석도 있긴 했다. 정말 그랬다고 해도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더구나 자신이 저지른 범행으로 부산천지가 떠들썩하고 형사들이 쫙 깔려있는 이 판국에 꼭 준일 군을 죽여야 했던가? 어쨌든 준일 군은 죽임을 당했다. 무엇이 범인을 그런 소득 없어 보이는 ‘모험’으로 몰아세웠던가? 이 연쇄 살인의 동기와 잔인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살인마의 심리를 해명한답시고 기자들은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 나섰다.


숨겨진 또 하나의 피해자


‘정신과 의사들은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의 범인이 정신병자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그 범인은 평소엔 수줍음을 타는 청년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어린이 기호성의 성도착증세를 띠고 있으며 머리는 좋고 양심은 형편없는 도발적이고 냉소적인 사회병질자. 그는 정신병자처럼 인격의 파탄 상태에 놓인 인간은 아니지만 양심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법이 없는 냉혹한 살인자일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태홍 씨는 ’그는 아마도 같은 또래의 여자에 대해 자신을 갖지 못한 청년일 것이다‘고 말한다. 어른에 대한 열등감을 어린이를 통해 만회하려는 의도가 이번 범죄의 바탕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폭행, 살해, 추행함으로써 평소의 열등감을 순간적인 쾌감, 자만심, 영웅심으로 대체해 보려는 게 범죄 심리였을 것이다.……’(국제신보)


이 기사는 내가 쓴 것이다. 나는 남구 대연동의 정신과 전문의 김태홍 씨를 찾아가 취재를 했다. 진료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파출소장이 들어왔다. 김 원장은 안면이 있는 듯 반갑게 맞았다.

“최근에 이 병원에서 치료 받다가 달아난 환자가 없습니까?”

“없는데요. 그 사건 때문이시군요.”

“혹시 진료하신 환자 가운데 코 옆에 점이 있었던 환자라도……?”

“그런 것까지 눈여겨볼 수 있습니까?” 나의 촉각이 이때 곤두섰다.

“범인이 점박인지 어떻게 압니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파출소장은 나를 힐끗 내려다보면서 “살아온 아이가 있단 말…”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심조심 물었다.

“실례지만 뭐 하시는 분이지요?”

“아, 저의 고등학교 후배올시다.”

김 원장이 눈치 빠르게 받아넘겼다. 파출소장은 무엇을 더 말하려는 듯 머뭇머뭇하다가 나가버렸다. 나는 이철호 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생존자나 범인 목격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이 날 저녁 국제신보의 시경 출입 기자가 비슷한 정보를 물고 왔다. 시경 수사 간부로부터 은밀한 귀띔을 받았다는 것이다. 범천동에 사는 한 소녀가 끌려가 목졸림을 당한 뒤 어떤 경로로 살아 돌아왔으나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범인의 인상은 이 소녀가 병상에서 남긴 증언에 따른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 소녀의 주소, 이름 등 더 상세한 정보는 주지 않더란 것이다.


‘그 아이가 바로 이×× 양이었구나.’

사회부 기자들 입에서 거의 동시에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범천동 이×× 이 대신 공원에서 죽었다.’

현정 양의 배 위에 씌었던 이 낙서의 미스터리가 풀린 것이었다. 범인은 김현정 양을 이×× 양으로 잘못 쓴 것이 아니었다. 그 메시지는 진짜였음을 기자들은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범천동 이×× 양의 실재(實在)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경찰이 흘린 정보를 액면대로 믿을 수는 없다. 이양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기사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경 출입 기자 김영민 씨가 취재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열여섯 번째의 병원


‘먼저 범천동과 그 주변동, 가야, 범일, 좌천동을 상대로 조사합시다. 구청에 가서 사망 신고서를 전부 챙기고 동사무소에 가선 매장 신고서 대장을 체크합니다. 그리고 그 부근 국민학교도 뒤져야 합니다. 분담을 합시다. 오늘밤을 뛰고 내일 새벽 여섯 시에 저한테 결과 보고 하시오. 전 여기서 있겠습니다. 그리고 김형은 이 사건 담당 검사에게 한 번 접근해 보십쇼. 저는 시경, 몽계 씨는 수사본부에서 꼬투리를 찾아봅시다. 아, 참 화장장이 빠졌는데……’


밤새워 뛴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경찰과 검사는 딱 잡아뗐다. 구청, 동사무소, 화장장, 국민학교에서도 이××은 확인되지 않았다. 네 군데의 동 사무소를 돌면서 숙직 직원들을 깨워 놓고 빈손으로 내가 신문사에 들어온 것은 새벽 다섯 시께. 편집국의 구석구석에서 부원들은 뻗어 있었다. 소파 위, 의자를 여러 개 모아 놓은 간이침대, 책상 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그들은 패잔병들처럼 누워 있었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가슴이 뻐근해졌다. 경찰 기자들의 확인 작업은 실패로 끝났지만 검찰 출입 김병호 기자가 중대한 진전을 기록했다. 그는 이 사건 담당 검사를 찾아갔다.


‘ 이양은 죽었다면서요?’

‘죽긴 왜 죽어요. 지금 부모 품에 돌아가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넘겨치기를 한 김 기자에게 검사는 중요한 확인을 해 준 셈이다. 이양이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 죽었다는 가정 아래서 밤새 동 사무소와 화장장을 돌아다녔으니 일이 될 리가 없었다. 국제신보 사회부는 이 양의 소재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불명확한 상황에서라도 이 특종감을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특종기사감을 확실하게 다듬는다고 시간을 끌다가 낙종을 해버리는 수도 있어 ‘낙종보다는 오보가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게 한국 언론 풍토다.


‘국제’ 사회부는 정보의 파편들을 끼워 맞추어 기사를 만들었다. ‘지난 7일 집 근처에서 유괴되었던 이×× 양이 대신 공원으로 끌려가 목을 졸려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등산객에게 발견, 구조되어 살아났다’고 이 기사는 전했다. ‘대신 공원서도 살해 미수 있었다’―그것은 사회면의 두 번째 큰 기사로 났다. 이양이 유괴된 날짜는 뒤에 18일로 밝혀졌다. 그것만 빼면 이 양을 만나지 않고, 경찰의 협조도 받지 않고 쓴 이 추리 기사의 내용은 거의 정확했다. ‘국제’는 현정 양 살해사건에 있어 두 번째의 큰 특종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양의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기사가 난 뒤에도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작은 경찰서와 함께 보사(保社) 분야를 맡고 있었다. 나는 한 가지 추리를 했다. 이 양이 살아 있다면 일단 치료는 받았을 것이다. 그 병원을 찾자. 나는 의사와 전화 명부를 꺼내 놓고 범천동 주변의 병・의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번번이 허탕이었다. 병・의원 앞에 표를 해 가며 전화를 걸다가 보니 이젠 여분이 몇 군데 안 남았다. 나는 밑천이 바닥나고 있는 노름꾼처럼 불안해졌다. 열여섯 번째의 병원.


‘뚜―뚜― 평 의원입니다.’ 남자 목소리. 나는 내 소개를 하고,

‘선생님께서 며칠 전 이×× 양을 치료하셨다죠? 수사본부에서 들었습니다만.’

‘그런데요?’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범인을 잡는 데 꼭 필요합니다. 범시민적인 협조로만 잡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좀 도와 주셔야 하겠습니다. 처음 치료하실 때의 상태를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공손히, 그러나 위엄을 갖춰 말했다. 의사는 진료차트를 가져오겠다면서 잠시 통화를 끊었다.

‘지난 18일에 입원했다가 다음 날 퇴원했군요.’ 의사는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환자 상태, 인적 사항, 환자가 말한 유괴 상황 등 나는 의사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와 기억들을 빼내려 했다. 이 양을 확인하기까지의 죽을 고생에 견주면 취재는 너무나 수월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도 기자에게 이처럼 순수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 부장도 침을 삼키며 나의 통화를 지켜봤다. 그의 갈겨쓴 메모를 훑기도 하고 메모 용지가 떨어지면 가져다 챙겨주었다. 통화가 끝난 나에게 이 부장은 말했다. ‘취재 교범이다. 사회부 기자의 교과서에 한 대목 넣어야겠다.’


‘주인님이라 불러라!’


나는 이 양이 다닌다는 ㅂ국민학교로 뛰었다. 사회부장은 노련한 장양수 기자를 동행하도록 했다. 젊은 기자의 혈기와 집념을 장 기자의 경험에 우러난 냉정한 판단력으로 견제, 보완케 한 것이었다. 이 ‘짝짐’은 적중했다. 나는 바로 이 양을 불러내자고 했다. 장 기자는 생각이 달랐다.

“경찰은 이미 이 양과 그 부모에게 함구령을 내려놓았을 거요. 이 양의 형제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두 기자는 ㅂ국민학교에 이 양과 함께 이 양의 오빠가 다닌다는 걸 알아냈다. 교장을 시켜 그 오빠를 불러냈다. 오빠는 동생이 살아와 얘기한 유괴 경위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양 오빠로부터 거의 완벽한 취재가 되었다. 그제서야 내가 말했다. “이제는 이 양 집으로 가 봅시다.” 범천동 고지대로 둘은 올라갔다. 이 양의 어머니가 집에 있었다.


어머니는 이××란 딸아이가 있다는 것조차 잡아뗐다. 아무리 설득, 유도, 위협해도 어머니는 모든 걸, 무조건 부인했다. 딸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이 양 집으로 먼저 왔더라면 취재는 ‘깽판’이 났을 것이다. 이 양 어머니는 이 양뿐 아니라 이 양의 형제, 친구들에게까지도 철저한 입막음을 시켰을 것이니까. 8월 26일 ‘국제’ 사회면의 거의 절반이 이 양의 생환기로 채워져 있었다.


‘유괴 살해범에 끌려 생사를 오간 이 양은 말한다.’

‘살인마의 손아귀서 공포 전율의 4시간 반’

‘목 조른 고무줄 허리띠 늘어나 구사일생’

‘집 앞 골목에서 칼로 위협, 대신 공원 계곡에서 목욕’

이런 제목의 면적이 본문 기사와 맞먹을 정도였다. 이 양과 범인의 대화를 재구성한 박스 기사―


●범천동 유괴 현장

범인 : 아무 소리 마라.(주먹을 보이며 이게 뭔지 아느냐?)

이 양 : 모르겠습니다.

범인 : 칼이다. 소리치면 죽인다.

이 양 : 아저씨, 살려 주세요.

범인 : 그러니 가만히 따라와.


●택시 안

이 양 : (작은 목소리로) 아저씨 제발 살려 주세요.

범인 : (귀에 입을 대고) 못 살려 주겠어. 소리치면 죽인다.


●구덕산 뒤 목욕한 곳

범인 : 옷 입어

이 양 : (옷 입음).

범인 : 지금부터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이 양 : …

범인 : 말 안 듣겠어!

이 양 : 주인님…….

범인 : 오냐, 그래야지.


●산 중턱 숲

범인 : 너 이름이 뭐야?

이 양 : 이××입니다.

범인 : 집에 전화있지, 몇 번이야?

이 양 : ××××번입니다.

범인 : 이제부터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이 양 : 아버지.

범인 : 좋아…… (범인 갑자기 이 양의 옷을 벗기고 때림)

이 양 : 아저씨 살려 주세요!

범인 : 못 살려 주겠어. (이 양의 옷 찢어 두 손, 두 발 묶고 입에 재갈 물린 다음 이 양의 비닐 허리띠로 목을 조름)

이 양 : (의식 잃음)


●이 양의 집

범인의 전화 목소리 : ××이 집이죠?

이 양 오빠 : 예.

범인 : ××이가 대신 공원에 죽어 있어. 빨리 가 봐. (이 군 얼떨떨해 말 못함)

범인 : 알겠나?

이 군 : 예(전화 끊김).


점박이의 살의(殺意)는?


점박이는 비로소 뚜렷한 얼굴을 갖고 나타났다. 그때까지는 두 어린이의 죽음과 두 번의 낙서가 이 살인마의 윤곽을 그리게 하는 자료의 전부였다. 이제 그 윤곽엔 인상과 몸짓과 목소리가 덧붙여졌다. 그는 성인 여자와 성관계가 안 되고 그 욕구를 여자아이한테서 해결하려는 어린이 기호성 성도착자임이 거의 분명해졌다. 어린이 앞에서만은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양에게 ‘아버지라 불러라, 주인님이라고 불러라’고 한 것은 어른 앞에서 느낀 열등감을 어린이 앞에서 우월감으로 바꿔 보려는 몸부림이었으리라. 그는 이 양과 함께 대신 공원 계곡에서 한 시간 동안 목욕을 하면서 아기자기한 동화의 세계에 빠진 사람처럼 재미있게 논 것도 확인됐다.


‘후하하’ ‘주인님이라 불러라’

등 점박이의 어록은 동화책이나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투의 대사였다. 천진한 만화의 세계에서 그는 갑자기 표변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그리고 어린이의 목을 조른다. 왜? 한 정신과 의사는 ‘목을 조르면서 성관계의 그런 쾌감을 느꼈을지 모른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증오와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다’면서 범인은 어린이를 ‘죽이고 싶도록 사랑했을 것이다’고 풀이했다. 범인은 이 양을 목졸라 죽인 뒤(그는 이 양이 죽었다고 생각했다)엔 또다시 기상천외의 행동을 했다. 이 양 집에 전화를 걸어 ‘이 양의 죽음’을 알려 준 것이다. 자기가 죽인 사람의 시체를 숨기는 게 범죄의 상식인데 ‘시체가 여기 있다’고 점박이는 광고를 하고 다닌 꼴이다. 도대체 이 살인마의 살의는 무엇인가?


파출소에는 또 너댓명이 잡혀 와 있었다.

‘너희들 전부 저 벽 쪽으로 붙어 서!’

순경이 고함을 질렀다. 네 청년은 나란히 옆으로 섰다.

‘소장님 어떻습니까?’

소장은 청년들의 아래위를 쓱, 훑었다.

‘ㅊ형, ㅊ형이 감별해 보소’

소장이 나를 끌어들였다. 나는 터지려는 웃음보를 억지로 참고있는 중이었다. 네 청년은 입술 위에 모두 까만 점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 죄로 붙들려 온 것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 벽에는 연쇄 유괴 살인범의 몽타주 사진 전단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과 닮은 사람을 골라내라는 것이다. 점박이는 그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래를 가로로 흔들었다. 소장의 선처(?)가 내려졌다. 네 청년은 고맙다고 소장과 ㅊ기자에게 절을 꾸벅꾸벅 했다. 나는 앉아 있기가 민망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점만 있으면 죄인 취급이고 그들도 파출소나 경찰서에 붙들려 오면 죄인처럼 주눅이 들어 보였다. 야무지게 대드는 시민들은 아예 붙들고 오지도 않았다. 영도 다리 밑에서 점 빼는 영감은 나를 보고 고맙다고 했다. 신문 덕분에 점 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점 있는 죄. 그런데 요즘은 점을 뺀 자국이 있는 사람들을 중점으로 체크하라는 지시가 일선 경찰서에 떨어졌다. 범인이 지금쯤은 점을 빼었으리란 추리에서였다. 점 뺀 죄. 경찰관들의 눈엔 점 뺀 자국밖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몽타주와 비슷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한 형사가 호통쳤다. ‘너 이 새끼 점 어떻게 했어? 그 점만 있으면 틀림없는데 말야’ 애석하다는 투로 말끝을 맺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항의하다가 귀싸대기를 맞는 청년. 그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 해서라도 꼭 범인을 잡을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수십만 명의 인권을 희생한 대가로서만 두 생명의 원혼을 풀 수 있다면 무슨 가치가 있담.


‘수사 잘해 보이소’


수 많은 용의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부산 시민들은 집단 신경과민 증세에 빠진 듯했다. 낯선 어른이 귀엽다고 어린이를 쓰다듬거나 다독거리거나 장난치는 걸 보고도 유괴범이라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판이었다.

‘유괴 전 극적 탈출’

‘또 유괴 미수’

등의 제목들이 사회면에서 춤을 추었다. 대부분이 과잉 신고에 의한 오보로 밝혀졌다. 부산 시경은 전 수사력을 이 사건에 집중시켰다. 중부서에 통합 수사본부, 각 서마다 일선 수사본부를 두었다. ‘빨리 잡아라’는 대통령 담화가 나오고 서울에서 치안 본부 수사 지도관이 내려오는 등 전국 경찰의 관심이 이 사건에 집중된 것 같았다. 부산의 사회부 기자들도 연일 발을 세웠다. 그러나 수사는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 목을 조르고 손발을 묶은 끈은 피살아의 옷을 찢어 사용했으므로 범행 도구도 남긴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양의 진술을 바탕으로 만든 몽타주 사진이 수사의 거의 유일한 꼬투리였다. 이 양은 용의자 감별사가 되었다.


경찰은 몽타주와 비슷하고 그럴듯한 용의점을 가진 사람들을 이 양과 대면시켰다. 이 양은 차단막 뒤에서 얼굴을 감추고 용의자를 살폈다. 수백 명을 감별하다가 보니 이 양의 판단력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영도 경찰서의 수사본부가 설치된 대교 파출소를 맡았다. 현정 양의 집이 이 파출소 관내에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파출소 순경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정 양의 시신이 발견된 이틀 뒤인 8월 23일 밤 11시께 파출소로 전화가 걸려 왔더란 것이다. 당직 방범대원이 전화를 받았다.


괴남자 : 용두산 공원 현정 양 피살 사건을 아는가?

방범대원 : 안다.

괴남자 : 내가 대양공고와 대양중학교 사이에서 죽였다.

방범대원 : 지금 전화 거는 곳이 어딘가?

괴남자 : 7698이다. (전화 끊음)


20분쯤 뒤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괴남자 : 대교 파출소지요? 수사 잘 해 보이소.

방범대원 : 그곳이 어디요?

괴남자 : 7698이다. 복창해 보시오.

방범대원 : 7698……

괴남자 : (전화 끊음)


경찰은 국 번호를 영도 지역으로 추리, 그 전화번호를 가진 여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대양공고 주변에서도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장난질 전화로 단정, 잊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등 뒤에 찬바람이 도는 전율을 느꼈다. 그 번호는 바로 이 양의 집 전화번호가 아닌가? 며칠 뒤 국제신보 사회부장의 귀에 화끈한 정보가 들어왔다. 점박이가 또 나타나 부산진구에 사는 여자 어린이를 납치하려다가 어린이가 고함을 지르자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가 들어온 것은 상오 10시께였다.


이철호 부장은 박몽계 기자를 불러 즉시 취재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배달판 마감 시간은 낮 12시 30분. 박 기자는 2시간 30분 안으로 여자아이를 찾아내 취재와 기사 작성을 마쳐야 하는 것이었다. 낮 12시쯤 박 기자가 허겁지겁 회사로 돌아오더니 번개같이 기사를 휘갈겼다. 그 어린이를 찾아 만난 것이었다. 아홉 살 된 그 어린이는 골목에서 납치범에게 끌려가면서도 곁눈질을 하여 코 옆 점을 똑똑히 보아 두었다고 말하더란 것이었다.


이 기사는 배달판의 사회면 준 톱기사로 났고 ‘점박이 또 출현’이란 새까만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두 시간 뒤 이 기사는 오보로 밝혀졌다. 이 어린이의 ‘납치담(談)’을 경찰은 며칠 전에 벌써 들었고 세밀한 주변 수사를 벌인 끝에 어린이의 깜찍한 창작이었음을 밝혀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보도에서 세 번이나 내리 특종을 했던 국제신보는 순진하게만 보이는 꼬마에 얹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 ‘설마 아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믿었던 민완 기자는 인간성의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사람이란 게 뭔지…’ 이렇게 푸념하는 기자도 있었다.


그 오보 사건은 점박이 수사 보도의 종막이기도 했다. 9월에 들어서면서 취재 경쟁은 시들해졌다. 수사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어 기자들의 추적도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초장에 강하고 종장에 약하다는 말을 듣는 한국 경찰은 단기전 체질이다. 처음 몇 주 동안 바짝 죄어 범인을 못 잡으면 손을 털고 마는 수가 대부분이다. 끈기가 약한 경찰의 속성을 잘 아는 기자들은 ‘점박이 사건은 틀렸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그때까지 한국에서 일어났던 강력 범죄와는 그 종류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원한, 취재(取財), 치정…… 기존의 범죄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복잡한 다중(多重)인격의 소유자가 펼친 이 사건의 동기는 재미나 장난기 같아 보였다. ‘재미로 어린이들을 차례로 죽인다’-이런 일이 인간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가. 어쨌든 원한이나 취재(取財)처럼 인과 관계의 선이 분명한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사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헛돌고 맴돌기만 했다. ‘국제’ 사회부도 이 추세에 맞춰 전담 기자 수를 줄였다. 사건 발생한 달만의 일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사건을 정리하고 그동안의 취재를 복기해 보자고 하여 좌담의 형식으로 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오고 간 얘기를 나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비극은 경찰의 보안(保安)에서 비롯됐다


첫 피해자 이×× 양이 대신 공원에서 등산객들에게 구조된 것은 8월18일 하오 3시께. 등산객들은 이 양의 결박을 풀고 안고 내려와 서부 경찰서 동대신 파출소에 신고했다. 이 파출소에선 간단한 진술을 받은 뒤 사건을 이 양의 거주지 관할 경찰서인 북부서로 넘겨버렸다. 두 경찰서에선 유괴 살인 미수 사건임을 알았으나 공개수사를 하지 않고 사건 발생 사실을 기자들에게 숨겼다. 다른 경찰서에도 이 사건을 알리지 않고 움켜쥐었다. 이 양이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점박이는 자기가 저지른 어린이 살해 사건이 신문에 크게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19일에도 20일에도 신문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친절하게 이 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시체 위치까지 가르쳐 주었는데도. 점박이는 참을 수 없었다. 20일 밤 그는 두 번째의 행동에 나선다. 영도의 현정 양을 유괴, 살해한 뒤 용두산 공원에 버린다. 그러면서 그는 현정 양의 배를 게시판으로 삼고 ‘대신 공원에서 이×× 양을 죽였다’고 광고한다. 경찰은 현정 양 사건도 은폐, 날조하려 하다가 기자들에 의해 들통이 난다. 다음날 점박이는 신문을 보고 또 실망한다. 멍청한(?) 기자들은 용두산 공원 사건만 보도하고 자신이 그렇게나 친절히 안내해 준 이×× 양 사건은 모르고 있다. 그는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22일에도, 23일에도 기자들은 자신의 기록을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 이 양 사건을 알고 있는 북부서 한 일민 형사계장만은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자문을 구한 어느 기자에게 그는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 제단 앞에 속죄양을 바친 점박이의 집념


점박이는 23일 밤늦게 영도 경찰서 대교 파출소에 전화를 두 번 건다. 그리곤 이 양 집의 전화번호(국번은 생략)를 불러 준다. 잊어버릴까봐 방범대원에게 복창까지 시킨다. 영도경찰서에선 그 시점에선 이 양 사건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전화번호의 뜻을 알 리가 없다. 점박이는 하루를 더 기다린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없다. 경찰에 던진 퀴즈 문제를 경찰은 풀지 못한 것이다. 경찰이 이때 그 번호의 의미를 해독했다면 한 생명을 구했을 것이다. 24일 밤 점박이는 세 번째의 희생을 바친다. 그가 준일 군 시체의 배 위에 쓴 ‘후하하, 죽였다’는 경찰과 기자들에게 던진 비웃음이기도 했다. 그제야 비로소 국제신보 기자들은 은폐되었던 이 양 사건을 찾아낸다. 이번에 놀란 것은 점박이였다.


죽었다고 믿었던 이 양은 살아 있었고 범인의 인상과 범인과의 대화까지 상세히 털어놓고 있지 않은가? 점박이는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을 되씹는다. 경찰 수사와 기자의 취재 능력을 시험해 보는 게임을 이 정도로 끝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전국 신문에 그토록 크게 났으니 이젠 한도 없다. 그의 평생 소원은 신문에 크게 나는 것이었으리라. 평생동안 두고두고 곱씹으며 즐길 수 있는 얘깃거리를 가슴에 안고 그는 정상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3. 경찰의 사건 공개는 두 목숨을 살릴 수 있었으나…


만약 경찰이 이 양 살해 미수 사건이 난 직후 이 사건을 터놓고 수사하기 시작했다면 점박이는 일찌감치 범행을 단념했을 것이고 부모들은 아이들 보호에 신경을 써 현정 양과 준일 군의 비극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경찰이 현정 양 사건이 났을 때 이 양 사건을 공개했더라면 준일 군의 죽음만은 예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기자들이 경찰이 감춘 이 양 살해 미수 사건을 찾아내 보도했다면 두 목숨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기자들이 경찰에 속아 현정 양 피살 사건을 단순 변사로 계속 믿었다면 어린이의 피해는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국민의 파수꾼’인 경찰은 점박이란 살인마의 출현을 알고도 시민들에게 아무런 경계경보를 발하지 않았다. 경찰의 직무 유기였다. 그래서 이 땅에 있어야 할 두 생명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필자주 : 이 사건은 1975년에 일어났다. 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제는 잡혀도 공소시효가 끝나 벌을 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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