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듣고 있기에 너무 지루해, 채널을 돌려 종편의 트롯대결 프로를 보다가 이제는 끝나가나 다시 돌리면 아직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몇 번 그렇게 채널을 왔다갔다 했다. 그럴 때마다 윤 대통령은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알고보니 그의 헌재 최후진술은 67분간 계속됐던 것이다(A4용지 77쪽).

이 중대한 최후진술 시간에, 윤 대통령은 재판관들 앞에서 야당의 험담을 시시콜콜하게 고자질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는지 그  업적을 쉼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대통령의 크기'가 마지막까지 이런 수준인가 싶었다.

나는 TV 채널을 잠깐 잠깐 돌릴 수 있었지만, 재판관들과 국회측 변호인들, 방청객들은 꼼짝없이 그의 장광설을 '대체 언제 끝나나' 하면서 들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 귓전으로 흘리면서 듣는 척만 했을 것이다. 심지어 윤측 변호인들도 내심 하품이 나왔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혼자 다 떠드는 '장광설'로 알려져있지만, 대통령직이 날아가느냐 마느냐 중대 순간에, 어쩌면 대통령 직을 갖고서 하는 마지막 대국민 공개 연설인데, 남들이 듣든말든 이렇게 시시콜콜 지루하게 떠들고 있었다.

이 모든 말들이 그에게서 너무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였고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지난 1월 15일 체포돼 공수처에서 첫 조사받을때 '윤석열 페이스북'에 올라온 장문의 편지(약 9천자 분량) 내용을 다시 육성으로 듣는 것 같았다. 헌재 심판정에 부지런히 출석해 발언 기회를 얻어서 줄줄줄 읊어대던 내용과도 비슷했다. 

그는 왜 이 중요한 순간에 과거에 했던 말을 또 하고,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 했던 말을 또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듣는 사람들이 설득될 것으로 여겨 이렇게 쉼없이 말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 말들은 이미 죽은 말이고 전혀 신선한 생명력이 없는 말들이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 상대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소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 소위 강박이나 망상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수한 말을 쏟아냈지만, 장황한데 꽂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가 살기 위해 제안한 것은 뉴스가 됐다.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 가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국정 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해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다."

이런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살기 위해 내놓은 저 말이 진심일까,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과연 저 말이 지켜질까 대부분 의심했을 것이다. 그가 그동안 무수한 말들을 쏟아냈지만 그 말들은 말의 합당한 무게를 잃고, 말의 정직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말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안된다는 걸 이재명과 다른 방식으로 그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