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것도 우리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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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의 위원회>
  
  변호사를 하다 보면 때로는 본의 아니게 시대적 격류의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보는 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친일파 척결의 문제가 정치적 화두로 떠올랐다. 사람들이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 종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우파는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욕했고 좌파는 ‘친일파’라고 했다. 국회에서 진보세력이 친일파의 자손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환수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그 집행을 담당할 위원회가 작동했다. 주변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일제 강점기 동경에 가서 고등고시를 치르고 벼슬을 했다고 자랑하던 대학 시절 학장님이 떠올랐다. 그게 자랑이 아니고 치욕인 시절이 온 것이다. 그 시절 판사를 했던 할아버지를 둔 친구가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시절 있던 사람, 잘난 사람의 자손이 찬바람을 맞는 시대가 온 것 같았다.
  
  이천팔년 팔월 사일 오후 두시경이었다. 나는 지하철 충무로역 오번 출구를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서 타고 있었다. 거리의 빌딩들이 백색의 혼돈 속에서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걸어서 오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극동빌딩의 육층으로 올라갔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그 건물의 육층에 있었다. 장관급인 위원장실로 들어가 면담신청을 하고 그 옆에 붙은 접견실에서 기다렸다. 변협 회장을 했던 김창국 위원장은 전에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잠시 후 김창국 위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섬세한 느낌이 드는 선비 같은 인상이었다. 그가 나를 보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명예직을 맡았던 사업가의 사건을 맡으셨죠? 그런 사람들의 재산을 후손들에게서 환수해야 할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어요. 이 위원회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국사학자들이 여러 명 일하고 있어요. 또 위원들의 반은 국사학자에요. 그런데 이 국사학자들은 우리 같은 법률가와는 정신구조가 완전히 다른 것 같습디다.”
  
  우리들은 소급 입법에 의한 재산 박탈은 헌법위반이라고 배웠다. 그걸 등뼈같이 주체성 같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국회에서 그런 법이 통과된 것이다. 이념과 대중의 여론이 헌법을 이긴 것이다.
  
  “법 제정 자체도 문제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
  
  “그렇죠. 문제가 있죠. 법원도 헷갈리고 있어요.”
  
  이미 법원도 그들의 시녀가 된 것 같았다. 위원회가 친일파로 찍으면 거기에 동조하는 판결들이 거의 예외 없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위원회에서 보낸 통지서를 옆에 있는 가방에서 꺼내 위원장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통지서를 보면 너는 친일반민족 행위자다. 그렇게 해버리고는 끝이란 말입니다. 위원회에서 찍으면 그냥 친일파가 되는 겁니까?”
  
  “법은 그게 아니면 아니라는 증명을 후손에게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든 법조문이 위원회의 임무를 상당히 유리하게 해 주고 있는 거죠. 위원회가 일단 친일파로 찍으면 친일파가 되죠. 위원회에서 친일파인 걸 증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게 아니라는 걸 친일파의 후손들이 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집안의 재산도 친일재산으로 변해 위원회가 환수할 수 있는 거죠. 우리 위원회는 편하죠.”
  
  “그게 우리 법률가가 배운 법치입니까? 법원이 위원회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는 게 맞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국회의 입법은 혁명수단이었다. 혁명위원회와 혁명재판소가 그 법을 집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법률상담을 해 보면 억울한 사람들이 줄줄이 친일로 낙인이 찍히는 것 같기도 했다. 친일로 낙인 찍힌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됐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모든 공문서들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자손들이 그게 아니라고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변호사인 내게 시대의 그런 모순이 보였다. 잠시 후 나는 위원회의 조사책임자를 만났다. 박사학위를 가진 국사학자라고 했다.
  
  “저희들의 적(敵)이신 입장이군요.”
  그가 나를 보고 한 첫 마디였다. 그의 머리 속에 법치주의 시스템 속의 변호사라는 전문직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법은 우리가 일단 친일재산으로 찍으면 그렇다고 추정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쪽에서 아니라는 걸 증명하셔야죠”
  
  그가 말하는 법은 이미 법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역사라는 게 뭡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역사라는 것도 우리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역사의 현장에서 귀중한 현실을 목격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수의 권력자가 정의와 명분을 독점하는 것 같았다. 친일청산이 명분일 때도 있고 적폐청산이 구호일 때도 있었다. 법을 기둥으로 중심을 잡아야 하는 법원은 혁명의 물결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지 못했다. 김창국 위원장이 저 세상으로 간 지 오래됐다. 내가 보았던 그 시절의 편린을 적어둔다.
  
[ 2021-01-14, 14: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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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1-01-14 오후 3:06
원리 원칙이 실종된 사회 대한민국 답습니다
힘있는자가 정의가 된 조폭들의 사회 같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들도 조폭에서 인간으로 진화 되야 할탠대
갈수록 어려워 지는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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