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거부하는 개결한 자존심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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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칠십이 다 된 친구가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강가의 퇴락한 집에 혼자 사는 것이 안쓰러웠다. 더구나 그는 몸이 불편했다.
  
  몇 년 전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내 나이 또래의 강태기 시인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폐암에 걸려 혼자 살고 있던 그를 도우미들이 이따금씩 들러 몸을 씻어주기도 하고 이웃 학교에서 남은 밥을 주기도 하고 성당에서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죽어가던 시인은 세상이 너무 고맙고 좋다고 내게 말했었다. 시인은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동차수리공을 하면서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의 천재였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평생 책을 읽고 인도여행을 많이 했었다.
  
  시인의 삶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면서 다리가 불편한 친구에게 말했다.
  
  “도움을 청하면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받을 텐데?”
  “아직은 아니야.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내가 모든 걸 직접 하게 했어. 일부러 하나도 도와주지 않은 거야. 그래서 굼벵이가 기어가듯이라도 천천히 내가 할 일은 내가 했지. 어머니는 내가 힘들더라도 혼자 살아가라고 교육을 시킨 거야.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어려서 어머니 옆에 항상 앉아서 살림하는 걸 어깨 너머로 봤어. 그래서 내가 김치도 담글 줄 알고 청소도 세탁도 변기 청소까지 못하는 게 없어. 앉아서 해도 난 다 해낼 수 있어. 도움이 필요 없어.
  그런데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남은 한쪽 다리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한 다리로 서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제는 양 팔꿈치를 싱크대에 받쳐야 돼. 나도 몰랐는데 요전에 집에 들렀던 한 사람이 싱크대에 팔을 받치고 밥을 하는 나를 보고 자기가 대신 해 주겠다고 나서더라구. 그제서야 내가 그렇게 했구나 하는 걸 자각했지.”
  그가 티 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노인이 이렇게 혼자 사는 걸 알면 복지담당들이 와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내가 문 앞에 비싼 독일차 아우디를 세워놨잖아? 이만큼 아직은 잘사니까 들어오지 말라는 나의 의사 표시지.”
  
  신세지지 않고 혼자 살아내겠다는 그의 개결한 자존심을 보고 나는 가슴이 섬뜩했다. 그가 씩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말이야, 도서관을 왔다가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 토큰조차 하나 없는 거야.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난했어. 등록금이 없어 대학도 휴학을 한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차비가 없던 날 목발을 짚고 거의 스무 정거장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니까. 그런 날이 여러 번 있었지.”
  
  그의 말은 나의 느슨해진 영혼에 찬물이 되어 부어진 것 같았다. 얼마간 그의 손발이 되어주면서 일을 배우고 가야하겠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내가 쉬운 청소부터 해 보면 어떨까?”
  내가 그에게 제의했다. 파출부와 아내가 청소를 했지 내가 직접 해 본적이 없었다. 그걸 눈치챈 듯 친구가 말했다.
  
  “내가 먼저 청소기 사용법이랑 시범을 보이지. 나도 다 할 수 있어. 다만 앉아서 궁둥이를 끌고 다니면서 하는 청소니까 먼지 묻은 바지를 따로 빨아야 하는 불편한 점은 있지.”
  
  그는 옆에 있던 진공청소기를 끌어다 놓고 군대 생활 시절 훈련된 조교같이 세밀하게 작동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둥이를 끌고 다니면서 손이 닿는 영역을 청소하고 다시 움직여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진공청소기에서 먼지통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 먼지들도 따로 잘 싸서 쓰레기 봉지에 넣어 처리해야지. 남보다 몇 배 시간이 들고 힘이 들어서 그렇지 난 모든 걸 다 직접 할 수 있어.”
  
  그를 보면서 나는 건강한 두 다리가 얼마나 축복인가를 느꼈다. 동시에 노인이 되어서도 혼자 버티는 그의 강인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 2021-01-04, 13: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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